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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이천 화재…TF개선안도 거둔 국토부 '헛발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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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독]이천 화재…TF개선안도 거둔 국토부 '헛발질' 있었다

    • 2020-05-15 05:10

    밀양 화재 이후 화재안전TF "샌드위치패널 시험규제 강화"
    국토부, 재행정예고로 돌연 규제 무산
    샌드위치패널 규제 때마다 번번이 뒷걸음칠
    이천화재 이후 대책도 2014년의 '도돌이표'

    2018년 1월 29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

    문재인 대통령을 중심으로 둘러앉은 참석자들의 표정은 무겁게 굳어있었다.

    의사와 간호사를 포함해 모두 47명이 숨지고 112명이 부상한 밀양 세종병원 화재 사건이 있던 지 사흘 후 개최된 회의였기 때문이다.

    이날 문 대통령은 "안전을 뒷전이나 낭비로 여겼던 안전불감증, 적당주의야말로 청산해야 할 적폐"라며 정부의 안전 강화 대책을 강력히 주문했다.

    청와대의 요구에 따라 며칠 후 '화재안전 특별TF'가 공식 출범했다.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등 안전 관련 부처 인력과 민간 자문위원 등이 참가한 TF는 다중이용시설 전반에 대한 점검에 나섰다.

    TF는 이듬해 샌드위치패널과 관련한 시험규제 강화방안도 제안했다.

    샌드위치패널에 불연‧준불연‧난연 등의 등급을 매기는 난연성능 시험의 평가기준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 화재안전TF "샌드위치패널 시험시 철판 제거하라"

    지난달 30일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의 화재가 발생한 물류창고 공사장이 처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샌드위치패널이란 지난달 48명의 사상자를 낸 이천 물류창고 화재의 확산 주범으로 지목된 건축자재다.

    얇은 철판 사이 우레탄폼이나 스티로폼을 넣은 형태로, 저렴하고 시공이 간편하지만 불에 취약해 화재 확산의 원인으로 꾸준히 지목돼 왔다.

    밀양 세종병원 화재를 계기로 만들어진 2018년의 화재안전 특별TF가 샌드위치패널의 난연성능을 높이려 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취지로 나온 개선안 중 하나는 샌드위치패널의 난연성능을 시험할 때 한쪽 철판면을 제거하도록 하자는 것.

    난연성능 시험 기준의 하나는 열을 가했을 때 '균열이나 구멍 등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지만 정작 샌드위치패널은 열로 인해 내부 단열재가 녹더라도 안팎의 철판 때문에 구멍이 제대로 확인되지 않는 맹점을 없애겠다는 취지다.

    TF 제안을 받아든 국토교통부는 2019년 10월에서야 이 내용을 행정예고 했다.

    ◇ 두 달 뒤 돌연 무산된 행정예고

    2019월 10월 국토부 행정예고(왼쪽)와 2019년 12월 재행정예고(오른쪽). 마감재료의 시험체는 '외기에 접하지 않는 면을 절단'하라는 규제가 재행정예고에서는 '중심부분을 절단'하라는 현행 방식으로 바뀌며 무산됐다. (사진=자료사진)

     

    하지만 두 달 후인 지난해 12월 마감재료의 시험기준을 강화한 이 문구는 돌연 삭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규정대로 문구가 원상 복구되며, 청와대에서 비롯된 규제계획이 무산된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전문가와 업계의 의견을 청취한 결과, 해당 시험 기준이 국제 기준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 한 관계자는 "당시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듣는 간담회에서 유기 단열업체들의 반발이 상당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TF회의 결과로 규제강화를 행정예고까지 한 상황에서 그 내용을 번복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법무법인 민주의 서정욱 변호사는 "행정예고나 입법예고는 사전에 이미 의견수렴을 해서 최종안을 만들고 이것을 널리 알린다는 차원에서 예고하는 것"이라며 "행정예고 도중에 내용이 바뀌면 신뢰보호 원칙상 문제가 있기 때문에 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밝혔다.

    ◇ 샌드위치 패널 제도개선 때마다 번번이 뒷걸음질

    국토부의 샌드위치패널 관련 규제 난맥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6년 당시 건설교통부는 "샌드위치패널은 철판으로 표면이 구성되므로 불연재료로 인정한다"는 황당한 유권해석을 내놨다가 1999년 경기도 화성 씨랜드 수련원 화재 등 샌드위치패널 화재가 잇따르자 유권해석을 철회했다.

    이천 화재와 판박이 참사로 꼽히는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고 이후에도 국토부는 건축물 외벽의 마감재는 불에 잘 타지 않는 재료를 사용하도록 규정을 강화했지만, 샌드위치패널은 외벽 마감재가 아닌 내부 마감재라 강화된 규정에서 제외됐다.

    국토부는 이어 2014년 12월 "건축물에 사용하는 모든 샌드위치패널은 난연 성능을 확보해야 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건축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바닥 면적이 600㎡를 넘지 않는 창고건물에 대해서는 여전히 가연성 샌드위치 패널 사용을 허용하고 있다.

    ◇ 또다시 TF만든 청와대, 똑같은 대책 내놓은 국토부

    2020년 5월 4일의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문재인 대통령은 이천 화재 5일 후 열린 회의에서 "2008년 냉동창고 화재사고 이후 유사한 사고를 막기 위한 안전 대책을 마련했고 정부도 화재 안전 대책을 강화해 왔는데도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년 전의 질책을 다시 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답답함의 토로다.

    2014년 국토부 '건축물 안전강화 종합대책'(왼쪽)과 2020년 국토부 '건설현장 화재사고 제도개선'(오른쪽). (사진=자료사진)

     

    범정부 TF가 다시 만들어졌고, 5월 8일 국토부가 대책을 내놓았다.

    창고와 공장에 가연성 샌드위치 패널 사용을 전면 금지한다는 게 주내용이다.

    하지만 이미 2014년 국토부에서 발표한 '건축물에 사용하는 모든 샌드위치패널은 난연 성능을 확보해야 한다'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이영주 교수는 "2014년 당시에도 샌드위치패널을 전면 금지하겠다고 했지만, 소규모 사업장의 현실적인 문제로 샌드위치패널이 쓰이는 곳이 있었다"며 "이번 대책으로 샌드위치패널의 사용뿐 아니라 유기단열재에 대한 규제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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