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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에도 화재 원인 못 찾아‥솜방망이 처벌
전문가 "CCTV, 건설현장의 '블랙박스'로 활용해야"

48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의 물류창고 공사장.(사진=윤창원기자)

 

48명의 인명 피해를 낸 이천 물류창고 참사의 화재 원인이 '오리무중'이다. 화재 발생(4월29일) 50일이 다 돼 가지만 경찰과 소방당국은 불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아직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수사 중인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11개 공사업체 사무실 17곳을 압수수색해 원청인 시공사 ㈜건우와 발주처 한익프레스 등 관계자 17명을 입건했다.

이들의 혐의는 건축법 위반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 과실치사 등이지만 대부분 지위와 직책상 부여되는 간접적 책임에 불과하다. 정확한 화재원인을 특정할 수 있어야 직접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 12년 전에도 화재 원인 못 찾아‥솜방망이 처벌

경찰은 단서들이 모두 불에 타 훼손됐을 뿐만 아니라 당시 현장에 있던 공사 관계자들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어 화재 원인은 규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임의로 설계도 없이 시공을 하거나 공사기간 단축을 위해 용접과 배관을 병행하는 등 동시 시공한 정황이 확인돼 시공자의 책임이 일부 입증됐다"면서도 "공사 관계자의 진술만으로는 정확한 화재 원인을 찾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12년전 40명이 숨진 이천 냉동창고 참사 때도 수사당국은 정확한 화재 원인을 찾지 못했다.

당시에도 열흘 동안 정밀감식을 진행했고, 국과수도 61명을 동원해 7차례 감식을 벌였지만 화재 원인은 끝내 드러나지 않았다.

심한 연소로 대부분의 배선이 유실됐고 불꽃을 일으킬 만한 설비나 용구의 식별이 불가능해 정확한 발화원인을 규명할 수 없었다는 게 당시 경찰의 설명이다. 이번 물류창고 화재와 판박이다.

경찰은 결국 현장 소장과 방화 관리자 등 2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구속했고, 공사 관계자 12명을 불구속 입건하는 데 그쳤다.

재판 결과도 현장소장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의 실형이 선고됐고, 시공사 대표와 나머지 공사 관계자들은 대부분 벌금형을 받았다.

현재까지도 화재 원인은 인화성 증기가 불꽃을 만나 발생한 것으로 추정만 할 뿐 수십 명의 인명을 앗아간 대형 참사의 책임은 어느 누구에게도 묻지 못한 채 끝났다.

◇ "CCTV, 건설현장의 '블랙박스'로 활용해야"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 사망자를 위한 합동 분향소가 마련된 경기 이천시 창전동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서 유가족들이 눈물짓고 있다. (사진=윤창원기자)

 

화재원인이 밝혀져야 분명한 책임을 물을 수 있고, 더 나아가 재발 방지를 위한 정확한 대책을 세울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이천 물류창고 화재도 이대로라면 12년 전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확실한 원인 규명이 없이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칠 수밖에 없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 마땅한 처벌을 내리기 위해서라도 화재 원인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며 "이대로 흐지부지 사건이 종결된다면 형식적인 처벌이 이뤄져 제 2, 3의 참사가 발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 역시 섣부른 대책보다 화재 원인을 밝혀내는 데 최우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립대 이영주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원인 규명이 안 된 상황에서 대책을 내놓은 것은 어디가 아픈지 확인하지도 않고 약부터 제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화재 원인을 밝혀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선행돼야 할 절차"라고 주장했다.

이어 "블랙박스처럼 건설 현장에도 CCTV를 설치해 화재 발생 시 영상을 토대로 화재 원인을 찾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며 "CCTV는 기록 보관의 용도뿐 아니라 상시 모니터링을 통한 불법 행위를 감시하는 기능도 할 수 있을 것"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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