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발리뷰]는 배구(Volleyball)를 가까이서 지켜보는 CBS노컷뉴스의 시선(View)이라는 의미입니다. 동시에 발로 뛰었던 배구의 여러 현장을 다시 본다(Review)는 의미도 담았습니다. 코트 안팎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배구 이야기를 [노컷발리뷰]를 통해 전달하겠습니다.
지난 1월 1일 밤에 수신된 한국배구연맹 알림 문자. 노컷뉴스
새해 첫날 밤이었습니다.
핸드폰을 끄적이던 중 문자 메시지가 왔습니다. 한국배구연맹(KOVO)에서 보낸 것이었습니다. 공휴일 오후 10시 39분에 수신됐습니다. 이 시간에 문자 메시지가 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일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조심스레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늦은 시간 죄송합니다. 중계방송사 관계자가 금일(1월 1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내일 역학조사가 실시될 예정입니다. 이번 주말 펼쳐질 남녀부 4경기는 잠정 연기됩니다'바로 핸드폰 스케줄표를 봤습니다. 1월 3일은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리는 흥국생명-GS칼텍스 경기 취재가 있었습니다. '배구 여제' 김연경이 돌아온 흥국생명의 경기는 사전 취재 신청이 꼭 필요한 만큼 1주일 전에 신청을 했습니다. 일요일 근무가 취소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갔습니다.
무심코 지나쳤던 문자 메시지 마지막 부분이 떠올랐습니다. 지난 경기 중 확진자가 나왔다는 내용이었는데 언제인지 꼼꼼하게 읽지 않았습니다.
'*확진자 방문 경기 : 12월 26일(토) OK금융그룹 vs KB손해보험'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경기였습니다. KB손해보험이 원정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3 대 1 역전승을 거뒀고 리그 2위로 올라섰던 때였습니다. KB손해보험 쌍포 케이타(36득점)와 김정호(19득점)가 55득점으로 역전승을 일궈낸 흥미진진한 경기였습니다.
문제는 저도 그날 상록수체육관에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중계방송 관계자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저도 접촉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날 경기장을 회상해봤습니다. 중계팀이 어디에 있었는지, 제가 어느 동선으로 움직였는지, 누구랑 이야기했는지 돌이켜 봤습니다.
지난 12월 26일 OK금웅그룹과 KB손해보험 경기를 중계했던 중계팀. 경기장에는 여러 대의 중계 카메라가 V-리그를 생중계 한다. 한국배구연맹 제공
잠시 뒤 V-리그 관계자들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당시 현장에서 취재했으니 코로나19 검사를 받아 보라는 권유였습니다. 질병관리청 주관의 역학조사와 함께 KOVO 관계자, 선수단, 구단 사무국, 대행사 등 경기 관련자 전원이 코로나19 검사를 받는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확진자 수가 1000명대를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 심각성은 느끼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코로나19 검사를 한 번도 받아보지 않았는데 저에게도 검사가 찾아왔습니다. 증상은 없었지만 걱정은 됐습니다. 지난 26일부터 지금까지 누구를 만났는지 떠올려 봤습니다. 가족과 지인들이 저 때문에 추가 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했습니다. 무관중 경기로 팬들이 없었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습니다. 선배들께 보고하고 아침에 검사를 받기로 했습니다.
2일 오전 9시, 코로나19 검사를 받을 수 있는 보건소를 찾았습니다. '독감 검사보다 아프다'는 후기가 떠올랐습니다. 코에 긴 면봉이 들어오는 짜릿한 경험을 마치고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3일 아침 음성 결과 문자 메시지를 받을 때까지 꼼짝하지 않고 집에서 기다렸습니다.
수신 된 코로나19 음성 결과 메시지. 노컷뉴스
리그 재개 여부는 4일 오후에 발표됐습니다. 추가 확진자는 없고 프로배구 남녀 13개 구단 선수단, 임직원 전원도 음성 판정을 받았다고 KOVO가 알려왔습니다. 중계방송사 관계자들도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았습니다. 밀접 접촉자로 분류된 촬영팀 9명은 자가 격리에 들어갔습니다. 연기된 경기는 오는 23일부터 26일 사이에 재편성 하는 것으로 결정됐습니다.
KOVO 관계자는 "지난 26일 당시 해당 확진자가 무증상으로 경기장 방역을 통과했고 28일 가벼운 감기증상에 이어 29일부터 코로나19 증상이 나타나 31일 코로나19 검사를 받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방역 당국 조사 결과 체육관 CCTV 등을 확인해 촬영팀을 제외한 밀접 접촉자가 없다고 통보를 받았고 추가 확진자가 없어서 리그 재개를 결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2020년 2월 25일 경기 수원체육관에서 한국전력과 삼성화재의 무관중 경기가 열리고 있다. 노컷뉴스
2020년 2월이 생각납니다.
2019-2020 V-리그가 막바지로 접어들었을 때였습니다.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했고 V-리그는 2월 25일 무관중 경기로 전환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확산세는 꺾이지 않았고 불안감은 커져갔습니다. 선수단에서 발열 증상만 있으면 코로나19일까봐 노심초사 했습니다. KOVO는 안전을 고려해 지난해 3월 2일 정규리그 중단을 결정했습니다. 남자부 14경기, 여자부 10경기를 남겨두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외국인 선수들의 출국도 이어졌습니다. 남자부 삼성화재 산탄젤로(이탈리아), IBK기업은행 어나이(미국)는 국내 코로나19 상황에 불안해하며 소속팀을 떠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국내가 더 안전하지만 당시 미국과 유럽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지 않았던 시점이었습니다.
KOVO는 3월말 리그 재개를 목표로 했지만 4월초까지 재차 연기했습니다. 4월은 외국인 선수 계약 문제와 21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있어서 정상적으로 리그를 마치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컸습니다. 결국 KOVO는 3월 23일 리그 종기 종료를 결정했습니다.
V-리그 역사상 최초로 완주 없이 끝난 정규리그였습니다. 마지막 경기를 기준으로 남자부 우리카드, 여자부 현대건설이 2019-2010시즌 남녀부 1위가 됐습니다. 아쉬움은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지난해 11월 15일 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국도로공사와 흥국생명의 경기에서 마스크를 쓴 관중이 입장하고 있다. 한국배구연맹 제공
2021년은 사뭇 다릅니다.
확진자가 많지만 리그 완주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시행착오가 있었던 만큼 이번 시즌은 끝까지 가보자는 것이 V-리그 분위기입니다.
KOVO 관계자도 "이번 시즌은 완주가 목표"라며 남은 기간 안전하게 리그를 끌어가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다만 현재 상황을 고려해 오는 24일 열릴 올스타 경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변수는 있습니다. 거리 두기가 3단계로 격상되면 V-리그 관계자의 코로나19 확진 여부와 관계 없이 국내 체육 경기가 중단됩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언제든 리그가 중단될 수 있다는 경험을 했습니다. 제가 됐든, 다른 사람이든 단 1명의 확진으로 V-리그 전체가 멈출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덕분에 더 조심스러워 졌습니다. 더 안전하게 거리 두기를 해야겠다는 경각심이 선명해졌습니다. 저 때문에 리그가 중단되는 불행한 일은 없어야 합니다. 무관중으로 지친 팬이 코로나19에 경기마저 빼앗기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이번 시즌, 저도 V-리그 완주를 목표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