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치파스가 13일(현지 시각) 프랑스오픈 남자 단식 결승에서 아쉬운 준우승에 그친 뒤 시상식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팬들에게 답례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생애 첫 메이저 대회 결승에 올랐지만 우승까지 이루지는 못한 '그리스 청년' 스테파노스 치치파스(4위·그리스). 하필이면 제 2의 전성기를 누리는 '무결점 사나이' 노박 조코비치(1위·세르비아)와 결승에서 만났다.
치치파스는 14일(한국 시각) 프랑스 파리의 스타드 롤랑가로스에서 열린 프랑스오픈 테니스 대회(총상금 3436만7215 유로·약 469억8000만 원) 남자 단식 결승에서 조코비치에 막혔다. 두 세트를 먼저 따내고도 내리 세 세트를 뺏기며 2 대 3(7-6<8-6> 6-2 3-6 2-6 4-6) 역전패를 안았다.
생애 첫 우승을 놓친 치치파스는 첫 그랜드슬램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지난해 이 대회 4강전에서도 치치파스는 조코비치에 2 대 3으로 분패한 바 있다.
경기 후 치치파스는 상심이 큰 듯했다. 벤치에 앉아 한동안 수건으로 얼굴을 푹 감싼 치치파스는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였다.
시상식에서도 치치파스는 잔뜩 화가 난 표정이었다. 코트에서 팬들에게 인사말을 할 때도 치치파스의 목소리는 의기소침했다.
꿈에 그리던 메이저 대회에서 준우승에 머문 실망감이야 크겠지만 치치파스는 그걸 넘어 절망적이기까지 했다. 다닐 메드베데프(2위·러시아)가 2019년 US오픈 결승에서 라파엘 나달(3위·스페인)에게 패한 뒤에도 유쾌하게 농담을 했던 것과는 판이한 모습이었다.
조코비치(오른쪽)가 프랑스오픈 남자 단식 결승을 마친 뒤 치치파스를 격려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치치파스가 왜 그랬는지는 나중에 밝혀졌다. 치치파스는 시상식 뒤 자신의 SNS에 "결승전 시작 5분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털어놨다.
비보를 접한 치치파스는 그럼에도 4시간 11분의 대접전을 펼쳤다. 치치파스는 "오늘 나의 모습은 할머니가 계셨기에 가능했다"면서 "우승 트로피를 들고 승리를 축하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고 슬픔을 드러냈다.
만약 치치파스가 정상에 올랐다면 우승컵을 할머니의 영전에 바쳤을 터. 이 대회 여자 단식 챔피언 바르보라 크레이치코바(33위·체코)는 우승 뒤 자신의 스승이던 전 세계 랭킹 단식 2위, 복식 1위 고(故) 야나 노보토나를 기렸다. 노보트나는 현역 은퇴 뒤 크레이치코바를 지도했는데 2017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비록 치치파스는 우승은 이루지 못했지만 자랑스러운 손자의 모습을 보였다. 치치파스는 이제 23살로 조코비치(34), 나달(35)과 불혹의 로저 페더러(8위·스위스) 등 '빅3'를 이을 차세대 1순위로 꼽힌다. 8강에서 메드베데프, 4강에서 알렉산더 즈베레프(6위·독일) 등 20대 초반 경쟁자들을 꺾었다.
치치파스는 "인생은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다"면서 "혼자 또는 누구와 함께 매 순간을 즐기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점에서 치치파스는 하늘의 할머니와 함께 프랑스오픈 결승을 한껏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