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카불공항 테러 현장 모습. 연합뉴스처절한 동족상잔의 6.25 전쟁을 치렀고 7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종전선언조차 하지 못한 우리에게 아프가니스탄의 참상은 남의 일 같지 않다. 단군 이래 최대 번영과 평화를 누리고 있지만, 서울에서 불과 60km 거리의 휴전선은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한 군대가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미국은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 대북 선제공격을 계획했고 2017년에도 북한과 심각한 상황을 연출했다. 하지만 매우 슬프게도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이 좁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다시 발발한다면 아프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지옥도가 펼쳐질 게 분명하다. 끔찍한 가정이지만 만약 한국전이나 그와 유사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유일한 동맹인 미국의 우선 대피 순위는 어떻게 될까? 미국의 피터 버건은 책 '트럼프와 장군들: 혼돈의 비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에 한국 내 미국인 소개령을 지시하려 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유사시 자국민과 더불어 현지 협력자들의 철수 계획을 수시로 업데이트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정말 궁금한 것은 만에 하나 한반도 위기가 재발하고 미국의 철수 작전이 실행됐을 때 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이다. 중동전쟁 발발 시 속속 자진 귀국했다는 이스라엘 유학생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까지는 아니더라도 미군 수송기 꼬리에마저 매달리는 볼썽사나운 장면은 결단코 없을 것이라 과연 장담할 수 있을까?
15일(현지시간) 탈레반을 피해 현금을 챙겨 아프간을 떠난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연합뉴스물론 극도의 부패와 무능으로 민심이 떠나버린 아프간이나 베트남 패망 사례를 한국과 비교하긴 힘들다. IMF 외환위기 때의 금 모으기나 부패 권력을 갈아치운 촛불정신, 코로나 환난을 이겨내는 성숙한 시민의식은 그들과 차원이 다르다. 그 바탕에는 위기가 닥치면 오히려 더 강해지는 위대한 의병의 전통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강대한 외적의 침입에 맞서 빈부귀천을 떠나 한 몸으로 싸웠고 나라를 빼앗겼을 때조차 임시정부로서 줄기차게 항거해온 역사가 헌법 전문 맨 앞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다.
하지만 백성의 안위는 아랑곳 않고 그저 제 목숨 부지에 연연했던 지도층 군상도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임진왜란 때 선조는 의주로 몽진한 것도 모자라 만주로까지 도주하려 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인조는 이괄의 난에 이어 정묘, 병자호란 때도 연거푸 도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백성의 원성이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망국의 군주 고종은 궁궐조차 지키지 못하고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했고,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국민을 속이고 서울을 탈출한 뒤 한강 다리를 끊었다.
1950년 6월 28일 미 공군이 끊어지지 않은 한강 철교를 폭격한 모습. 미 국립항공우주박물관 제공유사시 미국 협력자 지위가 부여돼 철수 1순위가 될 가능성이 높은 지도층 인사들은 이런 흑역사와 정녕 단절했다고 자신할 수 있나? 지금은 다소 나아졌다지만 사회 지도층의 병역 기피 풍조만 보더라도 고개를 가로 젓게 된다. 뿐만 아니라 교육, 취업, 부동산 등 모든 생활 영역에서 사회적 책무보다는 특권과 반칙을 앞세우는 불공정은 사회 통합을 해치는 악성 종양이 된 지 오래다.
지나친 우려일지는 모르나 북한과의 일전불사를 외치는 일각의 호전성 이면에 미국이 자기는 구해주겠지 하는 알량한 계산이 숨겨져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해본다. 그게 아니라면 제2의 한국전쟁이 파멸적 결과를 부를 게 빤한데 그리 쉽게 전쟁을 입에 올릴 수는 없다. 상시적 전쟁 위험을 안고 있는 한반도에선 오히려 '비둘기파'가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매파'가 아무리 떠들어도 사태 정리는 결국 비둘기파의 몫이다. 자칫 일이 잘못돼도 책임은 비둘기파가 질 공산이 크다. 말로는 북진통일을 외쳤지만 가장 먼저 달아났던 이승만이 서울 수복 후 한 일이 부역자 처단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民無信不立." 공자는 경제(足食)와 군사(足兵), 백성의 신뢰(民信之) 중에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할 게 있다면 백성의 신뢰가 가장 마지막 순서라고 했다. 백성의 믿음을 잃어버리면 나라가 설 수 없다는 것이다. 로댕의 유명한 조각품인 '칼레의 시민'은 영국의 포위 끝에 항복한 프랑스 칼레의 시민을 대신해 스스로 처형대로 걸어간 상류층 인사 6명의 영웅적 행적을 묘사했다. 우리는 과연 어떤 비관적 상황이 오더라도 끝까지 남아 공동체의 안위를 지키겠다는 지도층 영웅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런 결연한 각오를 미리 밝힘으로써 사회의 기풍을 새롭게 하는 것은 어떤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