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기능 못하는 컨트롤타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홈페이지 캡처정부가 저출산·고령사회 대책에 380조 원을 쏟아붓고도 추락하는 출산율을 잡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컨트롤타워의
'부재'에 있었다.
명실공히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있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팩트다. 요샛말로 하면 이렇다.
"저출산 컨트롤타워가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지적한 보고서가 무려 두 군데에서 나왔다. 감사원과 국회예산정책처다. 먼저
감사원의
'저출산·고령화 대책 성과분석 감사 보고서'를 보자.
우리나라 인구정책의 컨트롤타워는
보건복지부와
저출산위다.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에 따르면 복지부 장관은 기본계획과 실행계획 수립, 평가지침 작성 등 저출산·고령사회 계획을
총괄한다.
저출산위는 복지부가 올린 계획안과 평가지침 등을
심의하는 역할을 맡는다. 성격상 자문기구에 가깝다. 여기까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업무 혼선에 사각지대 발생
문제는
법 따로, 현실 따로인 운영 체계다. 현재 실질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있는 주체는 복지부가 아닌 저출산위 사무처다. 2017년 저출산위 사무처가 신설된 이후 사무처가 실질적인 업무를 수행하기로 사무처와 복지부 양측이 협의했다고 한다.
그런데 법대로 하지 않다 보니
업무 사각지대가 생겨버렸다. 어떤 기관이 어느 범위까지 어떤 업무를 수행할지를 명확히 가르지 않은 탓이다.
감사원이 지적한 사례를 보자. 인구정책 컨트롤타워는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저출산위 심의를 거친 평가 결과를 통보해야 한다. 법이 그렇다. 그런데
복지부도, 저출산위 사무처도 서로 상대방의 업무라며 2016~2018년 시행계획 평가 결과를 지자체에 통보하지 않아 혼선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복지부와 사무처 간 역할 분담이 저출산기본법 내용과 달리 되어 있으므로 법령을 개정하는 등
양 기관 사이의 역할 분담을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15년간 380조 원 투입했는데 성과관리 미흡
문제는 또 있다. 지난 15년간 저출산·고령사회 대책에 380조 원이 투입됐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투자를 했으면 당연히 성과평가가 뒤따라야 한다. 실적이 부진했다면 그 원인을 찾고 정책을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컨트롤타워의 성과평가는 제대로 이뤄졌을까? 감사원의 판단은 일부 '아니오'였다.
중앙부처에 대한 성과관리가 미흡했다.감사원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간 성과평가 결과 보고서를 토대로
중앙부처의 부진사업 과제 수를 확인했더니 모두 241개였다. 그런데 그중 162개(67.2%)는 개선사항을 제출했지만, 79개(32.8%)는 평가결과에 따른 개선사항 등을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복지부나 저출산위는 각 부처가 다음 연도 시행계획을 수립할 때 부진사업에 대한 개선방안을 반영하고 있는지
점검하지 않았다. 2011년부터 2020년 8월까지 무려 9년간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감사원은 개선사항 등을 제출하지 않은 74개 과제에 대한 부진사업 계속 여부를 확인했다. 그랬더니 2년 이상 사업 부진에도 개선사항을 제출하지 않은 과제가 19개(25.7%)였고, 3년 연속 사업이 부진한데도 개선사항을 제출하지 않은 과제가 23개(31.1%)에 달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홈페이지 캡처심지어 사업이 계속 부진한데도 개선사항을 제출하지 않다가
슬그머니 폐기한 사례도 있었다. 출산·육아기 계약기간이 만료된 비정규직 근로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재고용하는 사업주를 지원하는
'비정규직에 대한 지원 강화' 과제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과제의 2016년 목표치 달성률은 76.3%로 부진했지만, 해당 부처는 개선사항을 제출하지 않았다. 이듬해 목표치 달성률이 64%로 더 떨어지자 해당 부처는 홍보를 강화하겠다는 개선사항을 제출했다. 하지만 2018년 달성률이 18.3%로 급감하자 개선방안 마련 없이 과제를 폐지해버렸다.
최대 171일까지 심의 늦어져
느릿느릿한 심의 처리 속도도 문제점으로 거론됐다. 복지부는
매년 3월 말까지 각 부처로부터 전년도 추진실적을 제출받아 종합평가를 실시한 뒤
9월 저출산위 심의를 거쳐
10월에 평가 결과를 각 부처에 통보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연도 시행계획에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2년 이후부터는 복지부가 제출기한을 넘겨 평가지침을 내리는 바람에 저출산위 심의도 덩달아 늦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최대 171일까지 늦게 심의가 이뤄져
전년도 평가 결과가 다음 연도에 반영되기 어려웠다.지자체에 대한 성과관리도 미흡했다. 저출산위 사무처는 2018년 실시한 연구용역에서
"과제 수가 너무 많아 목표 달성 여부 확인이 어렵다"는 이유 등으로
지자체에서 자체 작성한 정성평가 등을 바탕으로 현황을 파악하는 수준에 그쳤다.
또 복지부와 저출산위는 2016~2018년 저출산위 심의를 받은
지자체 성과평가를 해당 지자체에 통보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지자체의 저출산 관련 기획 기능이 미흡하다는 문제가 제기되는 마당에 컨트롤타워가 지자체 실적 관리라는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것이다.
감사원은 "저출산위 사무처장과 복지부 장관은 저출산위 운영시 심의·의결 절차를 준수하고, 심의 내용에 충실하게 성과평가가 이뤄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자문기구, 그 태생적인 한계
그렇다면 저출산 컨트롤타워는 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을까.
국회예산정책처가 내놓은
'저출산 대응 사업 분석·평가' 보고서를 보면 그 태생적인 한계가 드러난다.
저출산위는 위원장인 대통령과 복지부 장관을 비롯한 7개 부처 장관, 민간위원 17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저출산위는 자문기구라
정책을 결정할 권한이 없다. 예산 편성 권한도 없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자문위가 정책을 효과적으로 조정하고 구상할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한편으론 "실질적인 정책 결정과 예산 편성 권한을 가진 행정부처는 그 책임과 권한을 회피할 수 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권한과 책임을 가진 복지부와 기획재정부, 국무총리실 등 행정부처 중심으로 저출산 대책을 마련하는 체계를 구축해 정책의 책무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것이 국회예산정책처의 판단이다.
연합뉴스사무처 파견자 평균 근속기간 '14개월'
파견자 중심으로 구성된 사무처의 인력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저출산위의 실질적인 사무를 지원하는 사무처는 상근위원인 사무처장 외에 정부 부처·지자체·공공기관 파견자, 전문임기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복지부로부터 운영 예산 47억 4900만 원(2021년도 예산)도 따로 지원받는다.
하지만 2017년 9월부터 2021년 5월까지 사무처에 근무했거나 근무 중인 인원은
모두 86명으로,
그중 51명은 지난 5월 기준 원래 부처로
돌아갔거나 퇴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평균 근속기간은 14개월에 불과했다. 기간별로는 전문임기제가 16.5개월, 부처 파견자 14개월, 지자체 파견자 12개월, 공공기관 파견자 5개월의 순이었다.
이렇게 되면
업무의 연속성과 전문성이 끊기는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로 제4차 기본계획 수립을 담당했던 담당자는 기본계획 추진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소속 부처로 돌아간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는 "사무처 인력이 파견자 중심으로 구성되는 것은
행정기구가 아니기에 발생하는 태생적인 한계"라며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복지부와 예산 편성을 총괄하는
기재부 중심으로
정책을 구상조정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한편 감사원의 권고에 대해 저출산위와 복지부는 "업무 분담과 관련한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평가 일정이 합리적으로 운영되도록 하는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감사원에 전달했다.
저출산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인구정책 컨트롤타워가 각계의 의견과 권고를 수렴해 하루빨리 제 기능을 되찾아야 할 시점인 건 분명하다.
※ 참고문헌
- 저출산 대응 사업 분석·평가 (국회예산정책처, 2021)
- 저출산·고령화 대책 성과분석 감사 보고서 (감사원,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