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기자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이 제기된 검찰 관계자들을 기소하지 못한 공수처가 수사실패의 원인으로 검사들의 증거인멸을 탓했다. 전·현직 검사들이 조직적으로 관련 증거를 은폐하면서 수사가 차질을 빚었다는 주장이다. 앞서 공수처는 지난 4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현 대통령 당선인)의 핵심 참모인 손준성 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을 범여권 인사에 대한 고발 사주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기소하면서도 고발장 작성자가 누구인지 특정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수사 본류인 윤 당선인 등 윗선 개입 여부도 밝혀내지 못했다.
7일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사세행)이 공개한 '불기소 결정서'에서 공수처는 고발사주 의혹과 관련한 다양한 증거 인멸 정황을 상세히 제시했다.
고발사주 의혹 사건의 핵심 당사자로 지목된 손준성 검사. 이한형 기자고발 사주 의혹이 최초로 보도된 지난해 9월2일 공수처가 손준성 검사와 공모 관계가 있다고 본 김웅 의원은 휴대전화를 교체했다. 대검 수정관실 소속 A검사도 이날 열흘 전 교체한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재차 바꿨다. 닷새 뒤 9월7일에는 텔레그램과 카카오톡 대화 내역을 지웠다.
공수처는 9월10일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해 손준성 검사 휴대전화를 확보했지만 비밀번호 제공을 거부해 포렌식을 진행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손 검사는 사흘 뒤 9월13일 텔레그램 계정을 삭제했다. 공수처가 손 검사와 공모 관계가 있다고 본 김웅 의원도 9월 14일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삭제했다.
A검사도 9월 16일 텔레그램과 카카오톡 내역을 지우고 검찰 조사를 받기 전 대검 수정관실 소속 B검사와의 통화 내역과 텔레그램 대화방을 삭제했다. 삭제 정보를 복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휴대전화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하기도 했다. 공수처는 B검사 휴대전화도 비밀번호 제공을 거부한 탓에 포렌식을 못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A 검사 등은 "9월2일 하드디스크를 교체한 사실이 없고, 안티포렌식 어플도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설치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공수처는 이런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공수처는 11월15일 대검 수정관실 하드디스크를 확보해 조사를 진행했지만 이미 초기화 등 기록 삭제가 전부 진행된 상태였다고 밝혔다. 일련의 강제수사로도 핵심 증거 확보에 실패한 공수처는 의혹의 핵심인 직권남용 혐의를 불기소 처분했다. 손 검사가 고발장을 김 의원에게 전달한 것을 두고 선거법 위반 및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를 적용했다.
윤석열 당시 총장이 최강욱 열린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허위사실 유포 혐의에 대한 수사팀의 무혐의 보고에도 기소를 지시한 정황도 파악된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8월 25일 고발된 최강욱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관해,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는 대검에 2차례 불기소 처분 의견을 보고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대검 공안수사지원과장은 "총장님은 기소의견이고 사건 재검토를 지시했다"라고 수사팀에 전했고, 대검 공공수사부장도 재차 "총장님은 기소 지시"라고 연락했다. 이후 중앙지검은 검사장(현 이성윤 서울고검장) 지시로 그해 10월 15일 기소했다고 공수처는 밝혔다.
당시 대검 수정관실이 정치 유튜브 채널을 진보와 보수로 분류하고 모니터링한 사실도 파악됐다. 불기소 결정서를 보면, 수정관실 소속 수사관은 B검사 지시로 좌우 성향별 정치 유튜브 1~5위 방송을 정기적으로 모니터한 뒤 보고서를 작성해 보고했다고 한다. 공수처는 대검이 모니터링한 유튜브 방송 내용 일부가 손 검사가 전달한 고발장에도 반영된 것으로 조사됐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