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흥국생명과 GS칼텍스 경기에서 팬들이 선수들을 응원하고 지지한다는 것과 함께 행복배구를 원하는 메시지 카드를 선보이고 있다. 한국배구연맹갈림길에 선 흥국생명. 2년 전에는 학교 폭력, 이번에는 감독 경질 이슈다. 당시 구단의 대응은 상식 밖이었고, 이번에도 비슷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흥국생명이 권순찬 전 감독 경질 이슈로 위기를 맞았다. 구단은 지난 2일 보도자료를 통해 권 전 감독을 경질했다고 밝혔다. 또한 김여일 단장도 동반 사퇴했다고 전했다.
감독 경질을 두고 자세한 내막을 공개하진 않았다. 다만 "구단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부합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궁금증은 커졌다. 흥국생명은 최근 상승세로 분위기가 좋았다. 특히 2022년 12월 마지막 경기에서 선두 현대건설까지 격파했다. 2연승을 달린 흥국생명은 승점 차를 좁혔고 올해 우승 싸움에 다가서는 중이었다.경질 후 구단은 권 전 감독에게 특정 선수를 기용할 것을 지시했고 이 때문에 마찰이 있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좋은 성적을 내던 중 경질된 권순찬 전 흥국생명 감독. 한국배구연맹감독 경질 후 맞는 첫 경기. 지난 5일 GS칼텍스전에서 흥국생명 신용준 신임 단장이 취재진 앞에 섰다. 그는 "(권 전 감독과 김 전 단장이) 선수 기용에 관해서 이야기한 것은 아니고 운용에 관해서 갈등이 이었다"고 밝혔다. 신 단장은 여러 차례 선수 기용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로테이션에서 의견이 안 맞았다"고 설명했다. 신 단장은 "팬들이 원하는 것은 '전위에 김연경과 옐레나가 같이 있는 것은 아니고 전위와 후위에 나뉘어 있었으면 좋겠다'였다"면서 "그런 부분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의견이 대립했다"고 말했다.
신 단장은 "우리가 배구단을 운영하는 것은 우승이 목적"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흥국생명이 우승을 위해 운영하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지시하지 않는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상황은 반대였다. '배구 여제' 김연경의 복귀로 흥국생명은 우승으로 다가가는 중이었다. 지난 시즌 6위에 그쳤지만 이번에는 2위로 순항했다. 선수들은 김연경을 중심으로 권 전 감독과 한 팀이 되고 있었다.
최근 현대건설 외국인 선수 야스민의 부상도 호재였다. 상대의 전력이 약해진 시점에서 1위까지 도약할 수도 있었다.
로테이션 전략도 적중했다. 이영수 감독 대행은 권 전 감독처럼 키가 큰 김연경과 옐레나를 전위에 세워 높이로 상대를 압박했다. 이날 경기를 치른 GS칼텍스 차상현 감독도 두 선수가 전위에 나서는 것에 대해 "부담스럽다"면서 '벽'이라고 평가했다.
김연경과 옐레나. 한국배구연맹흥국생명(승점44)은 GS칼텍스를 꺾고 3연승을 달렸다. 선두 현대건설(승점48)과 격차는 승점 4가 됐다.
그러나 이 감독 대행은 승리 후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권 전 감독과 의견이 같다는 설명과 함께 "제가 여기 있어서 똑 같은 상황"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 감독 대행의 사의 소식을 들은 김연경은 많이 당황했다. 그는 " 어디까지 감당해야 할 지도 잘 모르겠고 (마음이) 복잡하다"면서 혼란스러워 했다.
김연경은 구단이 특정 선수를 기용하는 문제로 권 전 감독과 충돌했다고 밝혔다. 그렇게 해서 패한 경기도 있다고 시인했다. 김연경은 자신과 옐레나를 전위와 후위로 분리하는 로테이션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팀의 리더는 구단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다. 김연경은 "다음 감독님이 온다고 해도 신뢰할 수 없다"며 "구단이 원하는 감독님은 구단 말을 잘 듣는 감독을 선호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게 누구를 위해 감독을 선임하고, 경질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김연경은 "이야기하기도 좀 부끄럽다. 흥국생명에 소속돼 있는데 일어나는 일이 부끄럽다"고 고개 숙였다.
흥국생명 김연경. 한국배구연맹적절하지 않은 대응, 상식과 맞지 않는 구단의 행보, 이미지 추락. 2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일까.
흥국생명은 2020-2021시즌을 앞두고 '배구 여제' 김연경을 전격 영입했다. 11년 만에 국내 배구 코트로 돌아온 김연경과 함께 흥국생명은 강력한 우승 후보로 급부상했다.
팀은 압도적인 성적으로 1위를 달렸다. 하지만 시즌 막판이던 2021년 2월 학교 폭력 논란이 터졌다. 주전 세터 이다영과 토종 공격수 이재영이 학창 시절 학교 폭력 가해자였다는 폭로 글이 인터넷에 게시판에 올라왔다.
비난이 거세지자 흥국생명은 '소속 선수 학교 폭력 관련 입장'을 보도자료 형식으로 배포했다. 이재영, 이다영이 자필로 쓴 사과문도 이어졌다.
하지만 가해자들의 일방적인 사과에 가까운 내용에 논란은 확대됐다. 한 언론을 통해 흥국생명 관계자가 징계보다는 선수들의 안정이 먼저라고 발언한 것도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됐다.
2021년 흥국생명 논란의 중심이었던 이재영(왼쪽)과 이다영. 연합뉴스여론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그제야 흥국생명은 두 선수를 무기한 출전 금지했다. 하지만 구단 이미지는 이미 떨어진 상황. 흥국생명은 정규 리그 1위도, 챔피언 결정전 우승도 놓쳤다.
2년 동안 흥국생명은 간신히 학교 폭력 이미지에서 벗어났다. 중국으로 갔던 김연경도 돌아왔다. 올해는 2018-2019시즌 이후 4년 만에 정규 리그 1위 탈환도 가능해졌다.
이번 논란을 만든 것도, 해결하는 것도 흥국생명이다. 구단은 6일 현 선명여고 김기중 감독을 차기 사령탑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김 감독과 구단이 2년 전을 되풀이할지, 위기를 이겨낼지 모두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