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기자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에 부여된 수사 종결권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취지의 '수사준칙(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 개정을 추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수사에 미비점이 있으면 '원칙적으로' 검사가 직접 보완수사를 하고, 불송치 사건에 대한 검사의 송치 요구권을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23일 CBS노컷뉴스가 더불어민주당 이형석 의원을 통해 입수한 수사준칙 입법예고안 초안을 보면 법무부는 경찰 송치사건에 관한 보완수사를 원칙적으로 검찰이 직접 진행하도록 명시했다. 법무부는 수사준칙 제59조(보완수사 요구의 대상과 범위)에 송치 사건에 대해 보완수사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검사가 직접 보완수사하거나 사법경찰관에게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다"고 적었다.
현재는 검찰로 송치된 사건에 대해 추가 수사가 필요하면 경찰이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고, 검찰의 직접 수사가 필요할 경우 예외적으로 검찰이 진행한다. 하지만 법무부 개정안대로라면 해당 원칙은 정반대로 뒤바뀐다. 특히 검찰에 송치된 지 1개월이 지난 사건의 경우에는 검찰이 직접 보완수사하는 것을 원칙으로 못박았다.
송치 사건뿐 아니라 불송치 사건도 검찰의 사건 개입 여지가 커진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은 경찰의 불송치 사건에 대해 한 차례 재수사 요청만 할 수 있었다. 이마저도 경찰의 재수사가 한 번 이뤄지면 다시 2차, 3차 재수사를 요청할 수 없었다. 검사가 혐의를 밝힐 명백한 증거를 찾은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송치 요구를 할 수 있었다.
수사준칙 개정 초안에는 경찰의 불송치 사건 재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검찰이 사건을 넘겨받아 직접 보완수사할 길을 열어뒀다. '재수사 요청에 대한 수사가 전부 또는 일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제64조 2항 2호) 검찰이 사건송치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조항은 경찰의 1차 수사 종결권 핵심이 '불송치'인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경찰의 사건 종결권을 무력화한다.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은 무혐의로 판단되면 자체적으로 사건을 종결해 왔다. 법무부 안대로 수사준칙이 개정되면 경찰이 무혐의 판단한 사건도 검찰의 판단에 따라 언제든 재수사가 진행될 여지가 크다.
법무부의 검경 수사준칙 개정안 초안과 현행 준칙 비교.이밖에 공직선거법 관련 사건의 경우 경찰이 수사를 개시한 즉시(혹은 공소시효 종료 3개월 전까지) 검찰에 사건을 통보하도록 하는 조항도 법무부 초안에 포함됐다. 그간 선거법의 공소시효가 6개월로 제한된 데다 경찰이 시효가 임박해 사건을 송치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선거법을 위반한 정치인 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법무부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뒤인 지난해 6월부터 경찰과 검찰, 해양경찰청 및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책임수사시스템정비협의회를 열고 이런 내용의 수사준칙 개정 작업을 진행해 왔다. 법무부는 지난해 11월 말 이런 내용의 개정 초안을 각 관계기관에 보내 검토의견을 요청했다. 최근까지 행정안전부 등과 개정안 협의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법무부는 행안부 등과 협의를 마무리한 뒤 개정안을 입법예고할 방침이다. 이후 법제처 심사와 차관회의, 국무회의 등을 거쳐 공포·시행된다. 법무부 관계자는 "아직 관계기관 협의가 진행 중이라 입법예고 시기에 관해서는 정해진 것이 없다"라면서도 "기존 제도 시행 후 드러난 여러 문제점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개정을 추진하는 것으로 국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이형석 의원은 "법무부의 수사준칙 개정 초안은 검경 수사권 조정을 통해 검사의 직접수사 범위를 축소시킨 법의 취지를 역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