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한국형 확장억제는 '사실상 핵 공유'라는 대통령실 해석을 백악관이 일축하면서 정부 입장이 난감해졌다. 확장억제는 정부가 이번 방미외교의 최대 성과로 꼽은 것이었다.
사실 핵 공유는 애초 불가능한 목표였다. 미국은 핵 무력을 누구와도 나눌 생각이 없다. 이는 미국 고위 당국자가 "핵무기 사용에 대한 결정은 대통령의 독점적 권한(sole authority)"이라고 말한 데서 알 수 있다.
한국이 모델로 삼은 나토 방식도 무늬만 핵 공유다. 미국은 핵탄두(B-61 중력폭탄)를 제공하고 유럽은 항공기로 투하하는 식으로 역할 분담하지만 최종 결정권은 미국이 꽉 쥐고 있다.
이는 워싱턴에서 송신하는 발사코드가 입력돼야 핵탄두가 비로소 활성화되는 매커니즘 때문이다. 미국이 핵을 '대통령의 무기'라고 부르는 이유다.
연합뉴스설령 미국 대통령이 핵 권한을 사이좋게 나누고 싶어도 국내법상 불가능하다. 미국은 동맹국 유사시 핵우산을 펼지 말지를 시혜적으로 결정할 뿐이다.
그 의사결정에는 미국 내에서도 극소수만 참여할 수 있다. 미국 민주당 의원들이 대통령의 단독 핵공격 결정권 포기를 촉구했던 사실은 핵이 얼마나 배타적 권한인지를 잘 보여준다.
우리 정부는 바로 이런 불가능에 도전했다. 그러니 백악관이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이 끝나기도 전에 정색을 하고 '핵 공유'를 부인한 것은 무리가 아니다.
결국 윤 대통령의 귀국 보따리는 더욱 초라해질 공산이 커졌다. 정부는 '핵협의그룹'(NCG) 신설 등을 내세우며 질적으로 달라진 확장억제 실행력을 강조하지만 온전히 믿기 어렵게 됐다.
이런 난맥상은 윤 대통령이 전혀 다른 회담 전략을 세웠어야 했음을 말해준다. 어차피 핵 공유가 불가능한 목표였다면 다른 분야에서 양보를 얻어낼 지렛대로 활용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이번 한미회담에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반도체 과학법, 대중국 수출통제 등에 따른 우리 기업의 불이익을 줄여야 하는 중요한 숙제가 있었지만 결과는 실망스럽다.
연합뉴스확장억제 문제만 하더라도 불가능한 핵 공유 대신에 원자력협정 개정이나 핵추진잠수함 확보 같은 보다 실리적 우회전략을 시도할 생각은 왜 못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이 일본에는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허용하고 호주에는 아예 핵추진잠수함을 제공하면서 한국만 이도저도 못하게 묶어놓는 것은 동맹 차별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미국 핵억제에 대한 지속적 의존'을 약속하며 사실상 핵무장 포기를 선언한 것은 물론 한미원자력협정 준수까지 재확인했다. 그것도 워싱턴 선언의 본문에 해당되는 첫 문장에서였다.
이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21년 5월 한미정상회담에서 우리 항공우주‧방위산업의 족쇄였던 한미 미사일 지침을 철폐하는 등의 성과를 거둔 것과 크게 대비된다.
윤 대통령이 더 불리한 여건도 아니었다. 오히려 윤 대통령은 한일관계 개선 노력,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시사, 대만 문제 언급 등 바이든 정부의 희망사항에 최대한 부합했기에 미국을 설득하기가 더 유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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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가장 큰 대미 지렛대는 한국 내 비등하는 핵무장론이었다. 일부 여론조사에선 70% 이상의 찬성률을 나타내고, 제재를 무릅쓰고라도 핵을 가져야 한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기도 했다.
만약 윤 대통령이 이런 압도적 여론을 배경삼아 용의주도하게 미국을 상대했더라면 역대급 외교 성과도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올해는 한미동맹 70주년이었다.
그러나 노회한 바이든 대통령은 오히려 한국 핵무장론에 쐐기를 박는 기회로 역이용했다. 거의 립서비스 만으로 별다른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국익과 정치적 이익까지 듬뿍 챙긴 것이다.
우리가 힘들게 '아메리칸 파이'를 키워주고 받은 것은 기타 하나 동전 한 닢뿐이라는 세간의 농담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