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동자 고(故) 양회동씨(왼쪽)와 국토교통부 원희룡 장관. 연합뉴스건설노동자 고(故) 양회동씨가 '건폭몰이'에 억울함을 주장하며 분신으로 극단적 선택을 택했는데도, 윤석열 정부는 건설현장에 특사경(특별사법경찰) 추가 투입을 추진하는 등 '노조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이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전국건설노조(건설노조)는 다음주 윤석열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총력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노동부' 아닌 '국토부 특사경'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근절대책 후속조치 관련 민·당·정 협의회에서 참석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윤창원 기자당정이 지난 11일 밝힌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대책' 후속 조치는 '건설현장 정상화 5법' 개정이다.
건설현장 정상화 5대 법안은 △건설산업 기본법 개정안 △건설기계 관리법 개정안 △사법경찰 직무법 개정안 △채용 절차법 개정안 △노동조합법 개정안으로, 건설현장의 불법 행위 규정 범위를 확대하고 건설현장에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을 투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등이 골자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당정 발표에 맞춰 같은날 건설현장 특사경 도입의 근거와 수사 범위 등을 규정하는 '사법경찰 직무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특사경은 검찰·경찰 이외에도 제한적인 분야에서 수사권을 갖는 공무원으로, 국토교통부와 5개 지방국토관리청 공무원 중 일부가 건설현장 특사경이 될 전망이다.
국토부는 지난 11일 보도자료를 통해 "전국 건설현장은 연간 17만개이지만, 국토부 단속 인력은 10명에 불과하다"면서 특사경 도입 추진의 취지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과도한 월례비 수수, 건설기계를 이용한 공사방해 등 그동안 모호한 처벌 근거로 제재가 어려웠던 불법행위에 대한 실질적 제재 기반이 마련되고, 정당한 사유 없이 레미콘 등 건설기계의 임대차 계약 이행을 거부하는 경우 사업자 등록 취소 등의 제재가 신설된다"고 부연했다.
경찰은 이미 정부의 기조에 궤를 같이해 노동조합원들에 대한 수사와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3개월 동안 건설현장 불법행위 특별단속을 통해 2863명을 단속하고 29명을 구속하기도 했다.
특히 윤희근 경찰청장은 건설현장 불법행위 단속에 힘을 싣기 위해 50명 특진을 약속했는데, 전세사기 특별단속(30명)이나 보이스피싱 수사(20명)에 배당된 특진자 수보다 훨씬 많다. 건설현장 불법행위가 이런 민생범죄보다 더욱 심각한 범죄로 판단하는 모양새다.
"사용자 불법 눈감고 노동자만 문제 삼나"
전문가들은 이번 후속대책 논의 과정에서 노동계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노동 전문 부처가 아닌 국토부가 건설현장 내 불법행위를 수사한다면 편향적인 수사가 이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고려대 김성희 노동대학원 교수는 "건설현장의 과도한 불법행위 기준을 다루려면 노동조합도 함께 논의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며 건설·부동산 업계와 밀접한 국토부가 이번 대책의 주관부처인 점을 우려했다.
그러면서 "노동현장에 투입되는 특사경들은 노사 간 단체교섭의 틀 안에서 노동 현안들을 해석할 수 있어야 하고, 근로감독 경험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영국 노동인권변호사는 "고용노동부 소속의 근로감독관이라는 특사경이 있는데, 왜 다른 특사경을 두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사용자의 불법 다단계 하도급 문제는 눈 감고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행동만 문제 삼겠다는 취지가 아닌가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근로감독관은 근로기준법과 기타 노동관계법령 위반 혐의 등에 대해 사법경찰관의 직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을 뜻한다.
"강압수사 사과 없이 특사경 웬 말"…민주노총 '1박2일' 투쟁 준비
지난 4일 서울역 인근 한강대로에서 민주노총 건설노조원들이 용산 대통령실 방향으로 결의대회 전 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노총은 당장 '총력 투쟁'을 예고하며 오는 16일부터 1박2일 집회 투쟁 나서 윤석열 정권을 규탄할 계획이다. 또 1박2일 투쟁이 끝나는 17일에는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윤석열 정권 퇴진' 운동도 벌일 예정이다.
건설노조 이윤재 정책기획실장은 지난 12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건설노조는) 다음주 투쟁에서 정부가 양회동 열사의 죽음에 대해 사과해야 된다는 것, 강압수사와 건설노조 자체를 불법화하는 정부 TF는 해산해야 한다는 것, 강압수사의 총책임자인 윤희근 경찰청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것, 국회에서 건설노동자들의 고용을 개선할 수 있는 법안들을 처리하라는 것, 사회적 대화기구를 구성하는 것 등 5가지를 요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발표한 후속대책에 대해서는 "고용구조를 근본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불법 다단계 생산 구조를 근본적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철학과 비전이 없다"면서 "건산법(건설산업 기본법), 건기법(건설기계 관리법), 노조법(노동조합법) 등을 개정해서 노조를 잡겠다는 것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오는 15일까지 우리의 요구안에 대해 정부에서 답을 주지 않으면 2차 파업, 3차 파업을 추진하겠다"며 "노조와 정부의 갈등은 계속 고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건설노조 장옥기 위원장도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가 양회동 열사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책임자를 처벌하고 사과하지 않는다면 더욱 높은 수위의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