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 캐릭터 포스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서울의 봄 후기: 엔딩 직후 심박수 178bpm"(*참고: 성인의 정상 심박수는 60~100bpm이다) "'서울의 봄' 후기. 화가 나서 맥박이 미친듯이 뛰어요." _이상 X(구 트위터) 발췌
12·12 군사반란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을 관람한 관객, 특히 MZ(1980~1994년생까지를 일컫는 밀레니얼(M) 세대와 1995~2000년 출생자를 뜻하는 Z세대를 합쳐 일컫는 말)라 불리는 2030세대들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이른바 '심박수 챌린지'는 물론 분노의 글을 올리며 '공분'하고 있다. MZ세대는 왜 12·12 군사반란과 전두광(실제 인물 전두환)에 공분하는 걸까.
한국 영화사상 처음으로 12·12 군사반란을 모티브로 한 영화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은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리고 있다.
영화는 개봉 이후 개봉 6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올해 최고 흥행작인 '범죄도시3' 이후 가장 빠른 흥행 속도로 질주 중이다. 또한 개봉 당일(관객 20만 3813명)보다 개봉 이후 월요일(23만 9677명)에 더 많은 관객이 관람하는 등 개봉 일주일 만에 '개싸라기 흥행'(개봉한 영화가 입소문을 타면서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많은 관객이 몰려 큰 수익을 거두는 현상)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영화 '서울의 봄' 성별 및 연령별 예매 분포. CJ CGV 제공MZ, '서울의 봄' 전체 관객의 '절반 이상'
이 같은 흥행에는 MZ로 불리는 2030 세대의 힘이 크다. 실제로 개봉일인 22일부터 28일까지 연령별 예매 분포(CJ CGV 제공)를 살펴보면 20대 26.2%, 30대 29.9%로 전체의 절반 이상인 56.1%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여성 관객이 50.4%, 남성 관객이 49.6%로 비슷한 수치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영화계와 평론가들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라고 입을 모았다. 황재현 CGV 전략지원담당은 29일 CBS노컷뉴스에 "보통 여성 관객이 많은데, 이례적으로 남성 관객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2030세대 관객이 많다는 것도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시사회 때 4050대 관객은 만족하겠지만 흥행의 척도라 할 수 있는 2030 젊은 관객의 관심까지 끌어낼 수 있을지 많은 의견이 오갔는데, 개봉 이후 반대가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관객 지표의 바로미터로 불리는 멀티플렉스 CGV 골든 에그 지수는 현재 99%를 기록 중이며, CGV에서 분석한 N차 관람 비중에서도 개봉 5일 만에 100명 중 6.1명이 N차 관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와 비슷한 '남산의 부장들'(감독 우민호, 2020년 1월 22일 개봉)은 100명 중 4명이 N차 관람한 바 있다.
골든 에그 지수 외에 CGV 내부에서 집계하는 '순 추천 지수'(영화를 본 후 주위에 영화 관람을 추천하는 걸 수치화한 지수)는 지난해 입소문을 통해 N차 관람 열풍을 일으켰던 '탑건: 매버릭'(감독 조셉 코신스키, 2022년 6월 22일 개봉) 이후 개봉 영화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황 담당은 "'탑건: 매버릭' 개봉 이후 개봉 영화 중 가장 높은 순 추천 지수를 나타낼 정도로 '서울의 봄'을 본 사람들의 만족도가 높고, 이러한 흐름에 따라 이번 주말에 더 많은 관객이 극장 찾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관객들이 주위에 입소문을 내면서 흥행 중"이라고 말했다.
영화 '서울의 봄'을 관람한 관객들이 X(구 트위터)에 올린 심박수 사진. X 화면 캡처MZ는 왜 '서울의 봄'을 찾고, 전두광에 '공분'할까
MZ는 '서울의 봄' 관람 이후 적극적이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후기를 공유하고 있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세대답게 영화 상영 내내 심박수를 기록한 '심박수 챌린지'부터 분노가 가득 담긴 생생한 감상을 가감 없이 SNS에 올리는 등 입소문에 앞장서며 영화의 흥행을 견인하고 있다. 이에 극장가에서도 최종 스코어를 당초 예상보다 더 높게 수정했다.
황재현 담당은 이런 '입소문' 흥행의 요인으로 '이야깃거리'를 들었다. 스토리텔링, 즉 영화를 본 후 이야깃거리가 많은 영화가 흥행한다는 것이다. 황 담당은 "영화를 보지 않고서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 정도로 주위에서 많은 이야깃거리가 회자하고 있고, 특히 배역의 삶 등을 검색하고 있다"며 "결국 관객들이 보고 싶어 하는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이게 콘텐츠의 힘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콘텐츠 자체가 가진 힘으로 '서울의 봄'을 찾지만 결국 현실과의 연결 고리를 찾아낸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분노'라는 감정으로까지 나아가게 된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일단 영화 자체가 상업적으로도 높은 가치가 있기에 보러 갔다가 영화가 갖고 있는 분노 게이지를 높이는 힘이 이 사건(12·12 군사반란)을 비교적 잘 아는 4050 세대뿐 아니라 2030 세대에게도 똑같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영화를 보면 좌우를 떠나 정치적으로 분열된 상황 등 현재 눈에 보이는 부분들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거슬러가면서 느끼는 바가 많은 거 같다. 이런 부분이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짚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먼저 '서울의 봄' 흥행 요인에 관해 "많은 사람이 기본적인 설정은 알지만 워낙 극화를 잘해서 굉장히 완성도 있고 몰입도 깊게 잘 만들었다"며 "기본적으로 전두환씨가 쿠데타를 했다는 설정은 알지만, 그날 아주 디테일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사람들은 공동체의 중요한 역사적인 사실을 알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데, '서울의 봄'이 새로운 앎에 대한 욕구도 충족시켜 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MZ가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며 공분하는 배경에 관해서는 "많은 누리꾼이 전두환씨가 추징금도 제대로 내지 않고 광주 학살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분노했는데, 그러한 분노가 영화로 투영됐다"며 "당시 전두환씨(극 중 전두광)가 쿠데타 하는 과정, 장태완(극 중 이태신)의 비장한 저항이 분노와 감동을 일으키면서 흥행 열풍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X(구 트위터) 이용자 수리(spo_suri)가 만든 12·12 군사반란을 정리한 PPT 내용. X 화면 캡처'서울의 봄' 공분, 스크린 밖 현실로 보폭 넓혀
이처럼 12·12 군사반란과 전두환씨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분노는 단순히 분노에서 그치지 않고 현대사에 대한 관심으로 넓어지고 있다. 즉, '이야깃거리'의 연장이자 다양화다.
실제로 SNS에는 '서울의 봄' 이후 현대사 공부를 한다고 한 후기는 물론 영화를 바탕으로 한 12·12 군사반란 인물계급도, 반란의 개요와 전개 등을 담은 PPT 자료를 만들어 공유하고 있다.
또한 실제 인물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거나 12·12 군사반란을 다룬 '역사저널 그날' 등 유튜브 조회 수도 늘어나는 등 영화에 대한 관심이 스크린 밖 현실로 이어지고 있다. '서울의 봄'이 낳은 긍정적인 효과 중 하나다.
하재근 평론가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기 공동체의 중요한 일에 대해 알고자 하고, 그래서 역사책도 많이 팔린다. '서울의 봄'의 경우 중요한 현대사의 역사적 사건인 만큼 젊은 사람도 몰입할 수밖에 없다"며 "젊은 층이 일반적으로는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서울의 봄'을 계기로 역사 특히 현대사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되고, 공동체에 관해 더 많이 고민하게 된다면 그 역시 바람직한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