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사법농단' 재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1심 선고는 장장 4시간 26분 만에 피고인 전원 무죄로 끝이 났다. 비록 1심이지만, 양승태 대법원이 사법부의 이익을 위해 행정부와 각종 재판을 거래했다는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양 전 대법원장이 검찰 기소 1811일 만에 무죄를 선고받고 일단락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이종민·임정택·민소영 부장판사)는 26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직권 없이는 직권남용 혐의를 인정할 수 없고, 양 전 대법원장 등이 공모했다거나 개입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는 것이 이유다.
이날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358호 법정, 재판 시작과 함께 재판장은 피고인의 생년월일 등 인적사항을 묻는 인정신문을 진행했다. 그러자 양 전 대법원장은 "1948년, 1월 26일입니다"라고 예상과 달리 비교적 큰 소리로 답했다.
검찰이 그를 기소한 지 1811일 만인 이날은 주민등록상 양 전 대법원장의 생일이다. 결국 생일날 무죄 선고를 받은 셈이다.
재판 지연 논란 속 약 4년 11개월에 걸친 '마라톤 재판'이었던 만큼 이날 선고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이날 재판장은 본인의 어깨에 이를 만큼의 서류를 손에 든 채 법정에 들어섰고, 이를 법대 위에 올려 놓았다. 그 순간 법정에선 탄성이 흘러나왔다.
재판장은 "이 사건은 공소장만 300여 페이지에 달하고 공소사실도 많아 판결요지 설명에도 상당히 많은 시간이 예상된다"라며 "일과 중에 선고를 마칠지 미지수"라고 말하며 선고 절차를 시작했다.
양 전 대법원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은 양복과 넥타이 차림으로 마스크를 쓰고 피고인석에 나란히 앉았다.
재판장은 이마를 짚어가며 판결 요지를 빠르게 읽어내려갔다. 한 두 번 숨을 몰아쉬긴 했지만, 물도 마시지 않았다. 양 전 대법원장은 선고 내내 두 눈을 감는가 하면 허공을 응시했다가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다.
줄줄이 재판부 판단을 설명하던 재판장은 선고 절차가 시작된 지 약 2시간 10분여 만에 잠깐 쉬겠다며 휴정을 선언했다. 선고 중 휴정은 상당히 이례적인 장면이다. 10여 분에 걸친 짧은 휴정 시간 동안 양 전 대법원장은 변호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지인들과 인사를 주고받기도 했다.
다시 선고가 시작됐고 4시간 여가 훌쩍 지난 오후 6시 23분. 재판장은 유무죄를 판단하기 위해 3명의 피고인에게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말했다. 선고가 진행되는 내내 재판부가 검찰의 모든 공소사실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없다"라고 말했기에 어느 정도 무죄를 예상하는 분위기가 엿보였다.
잠시 숨을 고른 재판장은 "(피고인) 각 무죄"라고 주문을 읽었다. 양 전 대법원장과 두 전직 대법관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방청석에선 짧은 박수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이날 이번 의혹에 연루돼 기소됐지만 무죄가 확정된 신광렬·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와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도 법정을 찾아 재판을 지켜봤다.
이번 의혹의 최정점으로 꼽힌 양 전 대법원장은 무죄 선고 이후 "당연한 귀결이라고 본다"라며 "이런 당연한 귀결을 명쾌하게 판단 내려주신 재판부에게 경의를 표한다"라는 말을 남긴 채 법원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