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가린 복귀 전공의 명단작성 의사. 연합뉴스의·정갈등과 맞물린 집단 행동에 동참하지 않고 의료 현장에 복귀하거나 잔류한 의사 명단을 제작·유포하는 '블랙리스트 사건' 관련 사직 전공의가 최근 구속된 가운데, 의료계 일각에선 해당 전공의에 대한 후원금 전달 활동이 전개되는 기류다. 대체적으로 구속은 부당하다는 시각에 따른 것인데, 블랙리스트 피해자나 환자들의 불안은 반영하지 못한 움직임이라는 비판적 의견도 적지 않다.
24일 의료계에 따르면 메디스태프 등 온라인 의사 커뮤니티에는 구속된 사직 전공의 정모씨를 위한 '후원 인증글'이 잇따르고 있다. 50만 원을 후원했다는 한 가입자는 "월급 받은 돈으로 후원했다"며 "나도 생활고에 힘들지만 그래도 억울하신 분을 도왔다"고 밝혔다. 자신을 피부과 개원의라고 밝힌 다른 가입자는 해당 전공의를 위해 500만 원을 보냈다며 송금 인증 사진을 올렸다.
의대생 학부모들도 구속 전공의 후원에 동참한 것으로 파악됐다. 전국의대학부모연합(전의학연) 관계자는 지난 22일 정씨의 가족을 만나 변호사 선임에 보탤 1천만 원을 후원했다며 "명단을 유출하고 작성한 건 잘못이지만 20대 중반의 젊은이를 이렇게 악마화 시켜야 하는지 모르겠다. 구속까지 갈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해 모금했다"고 말했다.
전의학연은 정씨 구속 이튿날인 21일 "무엇이 옳고 그름인지를 따지기 전에, 왜 그들이 일터를 뛰쳐나갈 수밖에 없었는지, 왜 그들이 꿈을 버리고 사직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물어봐 주는 어른이 없었다"고 성명을 내기도 했다.
대한의사협회 임현택 회장도 같은 날 정씨를 면회한 뒤 "철장 안에 있는 전공의나 리스트에 올라 피해를 당한 전공의나 그 누구라도 돕겠다는 게 협회의 입장"이라며 "구속된 전공의와 리스트에 올라 피해를 본 모두가 정부가 만든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사직 전공의 정씨는 지난 7월 의사 커뮤니티와 텔레그램 채널 등을 통해 '감사한 의사'라는 제목의 복귀 전공의 등 명단을 최초로 작성하고 게시한 혐의를 받는다. 해당 명단에는 의료 현장에 남거나 복귀한 전공의 등의 근무 병원을 비롯한 개인 신상 정보가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중앙지법 남천규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를 받는 정씨에 대해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며 지난 20일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정씨의 대한 모금 움직임이나 비호 기류를 두고는 의료계 내부에서도 과하다는 시각이 감지된다. 의정 갈등 장기화 국면 속에서 정부 책임을 지적할 수는 있지만, 정씨의 행동을 정당화 할 순 없다는 의견이다.
한 의료단체 관계자는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개혁의 정당성이 결여돼있기 때문에 (의료계가) 비논리로 맞서는 것이다"라면서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공개하는 건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의료 현장에 남아 있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못 남아있게 하는 분위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윤리적 행태를 한 구성원이 나왔는데, 그를 조직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의료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엄정 대응 방침을 밝혀온 경찰은 지난 10일까지 총 42건을 수사해 32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최근에는 '감사한 의사 명단'이라는 제목의 '아카이브(정보기록소)' 사이트에서 전공의, 전임의, 의대생 뿐 아니라 응급실 근무 중인 의사 실명 등을 공개한 자료까지 나돌아 경찰이 관계자들을 추적 중이다.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은 전날 "아카이브 등에 복귀 전공의 명단을 게시한 사건과 관련해서는 접속 링크를 공유한 3명을 특정했고, 현재 추적 수사 중"이라며 "의료 정책과 전혀 관련 없이 명단을 게시하는 등 집단적 조리돌림 행위에 대해선 엄정하고 신속하게 수사하겠다는 것이 경찰 입장"이라고 거듭 밝혔다.
경찰은 의사 커뮤니티에 '매일 1천 명씩 죽어나갔으면 좋겠다'는 등의 글이 올라온 점에 대해서도 입건 전 조사(내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보건복지부로부터 수사 의뢰를 받아 법리 검토를 하면서 입건 전 조사 중"이라며 "관련 게시글은 30개 정도로 파악되는데, 현재 전부 삭제된 상태"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