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담배소송' 항소심 11차 변론기일에 출석한 건강보험공단 정기석 이사장. 건보공단 제공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 정기석 이사장이 10여 년 전 공단 측이 담배회사들에 대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 공판에 등판해 "담배는 폐암 등의 명확한 직접적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건보공단은 지난 2014년 4월, 흡연으로 인해 폐암 및 후두암을 진단받은 환자 3천여 명 관련 공단이 추가부담한 진료비를 물어내라며 KT&G·한국필립모리스·BAT코리아 등을 상대로 약 533억 원의 배상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6년 넘게 이어진 1심은 2020년 11월 공단의 패소로 끝났다.
당시 재판부는 "개개인의 생활습관과 유전, 주변 환경, 직업적 특성 등 흡연 이외에 다른 요인들에 의해 발병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흡연과 발병 사이 인과관계가 확실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환자들이 흡연에 노출된 시기와 정도, 생활태도와 가족력 등 다른 위험인자가 없다는 사실이 추가로 증명돼야 한다고도 봤다.
하지만
공단은 이에 굴하지 않고 즉각 항소해, 2021년 6월부터 재판을 이어오고 있다.
정 이사장은 15일 오후 서울고법 민사 6-1부(김제욱 이경훈 강경표 부장판사)가 연 11차 변론기일에 직접 출석해 변론에 나섰다.
호흡기내과 전문의로서 40년 이상의 임상경험을 쌓은 정 이사장은 이 자리에서 "흡연은 명백한 발암요인"이라며
"담배회사에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은 사회 전체의 건강권을 부정하는 중대한 오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담배소송' 관련 1심 각 쟁점별 판단. 건보공단 제공담배회사들의 원심 승소가 의료계에서 상당한 논란이 됐다는 점도 적극 부각시켰다. 그는 "호흡기질환을 연구하는 교수와 일반 의사들은 1심 결과에 모두 놀라워했다"며 "흡연이 폐암을 일으킨다는 것은 교과서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진실"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세계보건기구(WHO)는 간접흡연까지도 '1군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흡연은 명백하고 직접적이고, 가장 핵심적인 발암물질임이 분명하다"며 흡연과 암 사이 인과관계는 과학적으로, 이견의 여지없이 증명된 사실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특히 정 이사장은 이 과정에서 소송 대상자들의 의무기록상 폐질환 등 과거력·가족력, 음주 및 직업요인 보유 여부를 검토해 해당 위험인자가 없는 환자들은 흡연과 질환 간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발병 고리가 더 확실한 개별 대상자 1400여 명 위주의 집중 변론을 펼친 것이다.
이와 함께, 관련 최신 연구논문과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전문가의 의견서, 고도흡연자 질적 연구의 신뢰도 및 객관성 입증을 위한 연구자 진술서, 흡연피해자의 진술서 등도 증거로 제출했다.
정 이사장은 "죽어가는 환자도 니코틴 중독으로 담배를 끊지 못하고 병실에서 몰래 흡연한다"며
"담배회사들은 담배의 중독성을 은폐하고, 그 알림마저 지연시킨 데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또 만에 하나, 흡연이 질환을 직접적으로 촉발시킨 '100%'의 원인이 아니라 해도 담배는 충분한 기여인자로 질병의 발생과 악화를 촉진한다고 부연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제공정 이사장은 재판부를 향해 "담배가 일으킨 중독과 질병에 대해 담배회사에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은 피해자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건강권을 부정하는 중대한 오류가 될 것"이라며 "국가가 국민을 보호한다는 분명한 믿음을 달라"고 간곡히 호소하기도 했다.
이어 "만일 법원이 전과 같은 판결을 한다면
'흡연을 적당히 관리하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을 것"이라며 "이는
담배로 매년 국민이 6만 명 사망하고, 건보 재정이 3조 5천억 원 투입되는 나라에서 국민에게 전할 메시지는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정 이사장은 마지막으로 "담배소송은 흡연 관련 질환으로 인한 건보 재정누수를 방지하는 동시에 흡연폐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묻고 국민건강을 증진시키고자 제기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하는 소송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