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서울의 한 대형 서점에서 한 시민이 이날 출간한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저서 '국민이 먼저입니다'를 읽고 있다. 연합뉴스"(지난해 12월 3일) 밤 11시 24분경 주진우 의원을 통해 '즉시 계엄을 해제해야 합니다. 지금 민주당은 담을 넘어서라도 국회에 들어가는 상황입니다. 계엄 해제안에 반대하는 분 계시는지요? ㅡ한동훈 당 대표'라는 전언을 국민의힘 의원 텔레그램 단체방에 올렸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변론 종결 이튿날인 26일 출간된 첫 저서 <국민이 먼저입니다-한동훈의 선택>에서 계엄사태를 인지한 순간 집권여당을 이끄는 자신이 '해야 할 일'만은 분명히 알았다고 밝혔다.
국회서 "전기 끊기면 수기 표결이라도" 與 독려
해당 저서에 따르면, 계엄 선포 당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한 한 전 대표는 저녁뉴스를 챙겨보다가 '밤 10시 대통령 긴급 담화 예정'이라는 속보를 접했다. 기자들의 연락이 빗발쳤지만 '모른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용산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 전 대표는 그냥 넘어가자니 찜찜해 문자를 남겼다. 잠시 후 "비상사탭니다ㅠ."라는 답장이 왔다. 무슨 일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는 한 전 대표가 내용을 묻자, "최악"이라는 두 글자만 돌아왔다고 했다.
'싸한 느낌'을 안고 귀가한 한 전 대표 눈에 들어온 것은 윤 대통령의 '비장한 얼굴'이었다. 윤 대통령은 "민주당의 탄핵 반복과 방탄 정치, 예산 폭거 등을 열거"하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한 전 대표는 "오래되고 불쾌한, 역사책에서나 보일 것 같은 표현"이었다고 술회했다.
또
"법무부 장관 출신 여당 대표"인 자신의 '신속하고 강력한 반대'가 자당 소속 대통령의 계엄을 '유혈사태 없이' 저지할 수 있는 길이란 확신이 있었다고 했다. 언론에 공지한 첫 메시지("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입니다. 국민과 함께 막겠습니다. 국민의힘 당 대표 한동훈.")는 이같은 배경에서 나왔다.
입장을 내자마자 명망 있는 여권 인사의 전화가 걸려왔다고 했다. '신뢰할 만한 정보'라며 한 전 대표가 전해들은 얘기는 "체포되면 정말 죽을 수 있다. 국회로 가지 말고 즉시 은신처를 정해 숨어라", "가족들도 피신시켜라" 등이었다. 그는 "황당하고 허황됐지만 2024년에 계엄령을 내는 건 안 황당한가 싶었다"고 회고했다.
이내 '공포는 반응이고 용기는 결심'이라는 처칠의 말을 떠올리고는 먼저 국민의힘 당사로 향했다. 자신은 '지금 있는 의원들을 모아 당장 국회로 가자'고 한 반면, 당시 추경호 원내대표는 '중진 의원들이 오길 더 기다려보자'고 만류했다는 게 한 전 대표의 주장이다.
논란이 됐던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도 언급했다. 그는 헌법이 보호하는 입법부(국회)의 정치활동을 일체 금한 서두를 보며 그 자체로 "계엄의 위헌·위법성을 확신했다"고 적었다.
최소한 "법률가들이 모인 민정수석실에서 한 번이라도 살펴봤다면 나올 리가 없"는 포고령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경찰과의 실랑이 끝에 국회 담을 넘었다.
의·정 갈등에 기름을 부은 '전공의 포고령'에 대해서는 "국가권력이 국민을 '처단'하는 게 2024년 대한민국에서 가당키나 한가"라며, "불편하지만 불가피한 정치의 모든 과정을 '반(反)국가세력'이란 한 마디 말로 치워버리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헌법재판소 최후변론에서도 '계엄은 대국민 호소용'이란 취지로 강변한 윤 대통령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셈이다.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 일화도 실렸다. 방송을 통해 국민을 안심시킬 용의가 있는지 물은 김현정 앵커 문자에 한 전 대표는 "목숨 걸고 막겠습니다"란 짤막한 답신을 보냈다고 한다. 그는 "지금 생각해 보면 과하게 비장한 메시지였다"면서도 "그때 내 마음은 정말 그랬다"고 했다. 사전 녹음해 익일 방송된 이 인터뷰는 계엄이 날을 넘겨 이어질 경우를 대비해 이뤄졌다.
이른바 '밀덕'(밀리터리 덕후)인 자신이 알아볼 정도의 야간투시경을 착용한 계엄군이 국회 본관으로 들어선 광경을 보면서 '전기가 끊기면 수기로라도 표결 시도해야 한다'고 의원들을 독려했다고도 적었다.
'배신자 프레임' 두고 "누가 진짜 보수의 정신 배반했나"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지난해 12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대표직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탄핵소추안 의결 후 당 대표직에서 스스로 물러나게 만든
'배신자' 프레임에 대한 회한도 드러냈다. 한 전 대표는 계엄해제 표결을 위해 본회의장에 모였을 때 "여당인 우리가 야당과 같이 계엄을 막기 위해 투표하는 것을 지지자들이 어떻게 볼지, 오히려 배신자로 몰리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걱정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도 "국민의힘 의원 다수가 해제 요구 표결에 참여했다면 그 뒤 벌어진 정치·사회적 갈등은 훨씬 적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18명보다 더 많은' 의원들이 왔어야 했다는 취지다.
한 전 대표는 "이 계엄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에 대한 모욕이자 도전이었다"며 "나는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지키는 것을 진영의 이해관계보다 우선하는 책임감이 진짜 보수의 정신이라 생각해 왔다"고 밝혔다.
아울러 "만약 그때 계엄을 해제시키지 못했다면 우리나라, 우리 경제와 안보, 보수진영 그리고 우리 당이 어떤 처지에 처하게 됐을까?"라며 "누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진짜 보수의 정신을 배신한 것인가"라고도 반문했다.
'검사 선배'이자 상사였던 윤 대통령에 대해서는 "고마운 마음이 크고 대통령과의 사적 인연으로 괴로움이 컸지만 그건 공적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내색할 일이 아니었다"고 했다. 또 "특정인을 배신했냐 아니냐는 식으로 몰아가는 정치는 나라와 국민에 해롭다"고 못 박았다.
다만, '친한(한동훈)계'가 주축이 된 탄핵안 가결에 관해서는 "실망하는 국민의힘 의원들과 당원들, 지지자들이 많이 계신 것을 알고 있다. 마음 아픈 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민다"면서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판단했지만 매우 고통스러웠다. 비판은 감당하겠다"고 고백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도 거론했다.
"비상계엄만 없었다면 시간은 분명히 우리 국민의힘과 보수진영, 그리고 대한민국의 편이었다"는 게 한 전 대표의 생각이다. 곧 항소심 결론이 나오는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관련 재판이 1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가 선고된 사실 등을 지적한 것이다.
대권 잠룡으로 정계 복귀를 시사한 한 전 대표는 "나는 누구보다 이 대표와 맞서 싸웠다. 그리고 그걸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며 "그렇게 하려면 우리가 떳떳해야 한다.
우리가 고통스럽더라도 대통령의 잘못에 책임을 물으면 이 대표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더 확실하게 더 강도 높게 물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