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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뉴스

"손은 아프지만, 지구는 웃는다" 종이팩을 살리는 카페들

"손은 아프지만, 지구는 웃는다" 종이팩을 살리는 카페들

편집자 주

역대급 폭염과 폭우 앞에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기후위기'를 실감하는 것 밖에는. 다만 다행인 건 기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것 만큼 기후위기를 '네 일'이 아닌 '내 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는 외침 속에 지역 곳곳에서도 기후위기에 응답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발걸음이 늘어나고 있다. 전남CBS는 기후위기를 향한 냉소와 포기를 넘어, 한걸음의 작은 실천을 하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아 기후행동이 가진 가치를 전하고자 한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시민들⑩]
순천 원도심 카페들, '종이팩 정거장'으로 나서다
'옥천점빵', 카페 '삼월' 종이팩 재활용 철저한 실천
설거지에 우유팩 씻기도 포함… 말리고 잘라 배달
친환경 포장재 사용도 적극 도입 "환경을 위한 투자"

순천시청 인근 카페 '삼월' 신수현 대표가 가지런히 모아놓은 종이팩을 들고 있다. 박사라 기자 순천시청 인근 카페 '삼월' 신수현 대표가 가지런히 모아놓은 종이팩을 들고 있다. 박사라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 "올 여름 전기세 5만 원…지구를 위한 응답이에요"
② "기후위기, 혼자 아닌 함께"…순천생태학교 '첫 발'
③ "이렇게 하면 바뀌겠죠" 효천고 기후환경 동아리 '센트럴'
④  뚜벅이 환경공학자의 '자동차와 헤어질 결심'
⑤ "지구를 향한 작은 발걸음, 순천에서도 울리다"
⑥  냉난방 없이도 가능한 삶, 순천 사랑어린학교가 살아가는 법
⑦  기후위기 대응, 급식에서 시작하다
⑧  버려질 뻔한 병뚜껑, '플라스틱 대장간'에서 변신하다
⑨ "노플라스틱 육아, 가능해?" 환경 덕후 엄마의 실천법
⑩ "손은 아프지만, 지구는 웃는다" 종이팩을 살리는 카페들
(계속)

환경 보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일상 속 작은 실천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많은 종이팩을 사용하는 카페들 가운데 재활용을 철저히 실천하는 곳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국내 종이팩 재활용률이 13%에 불과한 현실에서, 순천 원도심의 일부 카페들은 '종이팩 정거장' 역할을 자처하며 적극적으로 분리배출을 실천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로 '옥천점빵'과 '삼월' 카페를 찾았다. 이들이 종이팩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그리고 그들의 환경에 대한 철학은 무엇인지 들어봤다.
 
순천부 읍성 옆 '옥천점빵'에서 모아놓은 종이팩들. 박사라 기자 순천부 읍성 옆 '옥천점빵'에서 모아놓은 종이팩들. 박사라 기자 

가위질은 힘들지만, 보람 있어

전남 순천시 순천부 읍성 옆 옥천변에 자리한 '옥천점빵'은 주다은(28)씨와 어머니 장조순(53)씨가 함께 운영하는 작은 카페다. 이곳에서는 종이팩을 따로 모아 순천YMCA의 '노플라스틱 카페'에 전달하고 있다. 중요한 건 바로 '씻는 과정'이다. "모아뒀다가 씻으면 더 큰 숙제가 돼요. 그래서 하루에 나온 우유팩은 그날 씻어서 정리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에요." 주 씨가 설명했다.

카페에서 배출되는 종이팩은 주로 우유팩과 생크림팩이다. 장 씨는 설거지를 하면서 곧바로 팩을 씻고 말린 뒤 가위로 정리하는 작업을 맡는다. 그러나 바쁜 날에는 이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

장 씨는 "솔직히 손님도 받아야 하고, 다른 일도 해야 하는데 매일 가위질을 하는 게 힘들 때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장 씨는 조금이라도 이물질이 남아 있으면 다시 씻을 정도로 철저한 분리배출을 고수한다. 그렇게 모아진 종이팩은 한 장 한 장 가지런히 쌓여 순천YMCA로 전달된다. 지난해에만 11.35kg의 종이팩을 모았다.
 
순천부 읍성 옆 '옥천점빵'은 종이팩뿐만 아니라, 딸기 스트로폼 상자도 재활용하기 위해 모아두고 있다. 옥천점빵 제공  순천부 읍성 옆 '옥천점빵'은 종이팩뿐만 아니라, 딸기 스트로폼 상자도 재활용하기 위해 모아두고 있다. 옥천점빵 제공 
'옥천점빵'은 로컬푸드 활용도 실천하고 있다. 카페의 대표 메뉴인 딸기 케이크에는 일주일에 14박스의 딸기가 사용되는데, 사용한 딸기 상자는 다시 농장으로 보내져 재사용된다.

주 씨는 "스트로폼 상자가 환경에 좋지 않다는 걸 알고부터 이렇게 해오고 있다"며 "작은 습관이지만, 이런 노력이 쌓이면 더 큰 변화를 가져올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환경 보호는 우리가 투자해야 할 가치"

순천시청 인근에 위치한 '삼월' 카페는 친환경 운영을 실천하는 또 다른 공간이다. 지난해 3월 문을 연 이곳에는 "개인컵 사용 시 300원 할인" 등의 안내문이 걸려 있고, 모든 포장 용기는 생분해성 소재로 제작된 친환경 제품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는 일반 플라스틱보다 70~80% 비용이 더 드는 선택이다.

카페를 운영하는 신수현(42)씨는 이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신 씨는 "지금 우리가 플라스틱을 쉽게 쓰고 버리는 부담은 결국 미래 세대가 감당해야 할 비용으로 돌아온다"며 "그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다"고 강조했다.

신 씨는 코로나 이후 포장 용기 사용량이 급격히 늘어나는 것을 보며 위기감을 느꼈다고 한다. 신 씨는 "죄책감 없이 일회용품을 쓰는 분위기가 너무 당연해졌다"며 "그런데 이렇게 가다 보면 나중엔 어떻게 될까요?"라고 반문했다. 그는 환경에 대한 책임감을 실천하기 위해, 원두 기계를 고르는 것만큼이나 친환경 포장 용기 선택에도 신중을 기하고 있다.

카페 '삼월'은 생분해성 소재로 된 친환경 포장용기와 무라벨 탄산수를 사용하고 있다. 박사라 기자 카페 '삼월'은 생분해성 소재로 된 친환경 포장용기와 무라벨 탄산수를 사용하고 있다. 박사라 기자 
'삼월'은 종이팩 재활용 실적이 높은 카페 중 하나다. 1년 동안 모은 종이팩은 12.4kg에 달한다. 신 씨는 종이팩을 씻고 말린 후 곧바로 잘라 보관하는 일상이 습관이 됐다고 말한다.

신 씨는 "그냥 쌓아두면 일이 많아지니까 나올 때마다 씻는다. 자를 때는 큰 가위를 사용하면 수월하다. 특히 접합 부분부터 자르면 더 쉽게 펼칠 수 있다"며 작은 팁이지만,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알려주기도 했다.

그는 여행 중 서울의 한 구청에서 '종이팩을 가져오면 키친타월, 종량제 봉투로 교환해 준다'는 현수막을 보고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제도가 더 많아지면 분리배출 참여율이 훨씬 높아질 것이다"며 "또한 친환경 포장 용기의 내구성이 개선된다면 더 많은 카페들이 이를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고 제안했다.
 
순천시 한 아파트 단지에 설치돼 있는 우유팩 수거함. 박사라 기자 순천시 한 아파트 단지에 설치돼 있는 우유팩 수거함. 박사라 기자 

내 집 앞 '우유팩 수거함', 나부터 활용해볼까

종이팩은 우유, 두유, 주스 등의 포장재로 사용되며, 일반팩과 알루미늄이 덧씌워진 멸균팩으로 나뉜다. 최근 아파트 단지나 클린하우스에 종이팩 수거함이 설치되고 있지만, 여전히 분리배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순천시는 지난해 73개의 우유팩 수거함을 설치했으며, 광양시 역시 2022년부터 150개의 수거함을 마련하는 등 우유팩 재활용을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있다. 또한, 읍면동을 통해 우유팩 분리수거 봉투를 배부하며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특히, 올해 상반기에는 깡통 분리수거기인 '슈퍼빈'과 유사한 우유팩 수거기를 중마동과 광양읍에 설치할 계획이다.

그러나 우유팩과 멸균팩이 함께 버려지는 경우가 많아, 보다 세분화된 분리수거함 설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광양시 관계자는 "종이팩은 고품질 재활용이 가능한 자원이므로, 지자체에서도 이를 적극 활용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현재는 종이팩 분리수거 정착을 우선 목표로 하고, 향후 멸균팩까지 포함한 보다 체계적인 재활용 시스템을 구축해 나갈 계획이다"고 밝혔다.

지금도 수많은 종이팩이 버려지고, 우리의 선택에 따라 그들의 운명이 결정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순천 원도심의 작은 카페들은 단순한 재활용을 넘어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한 움직임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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