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정부가 수십 년간 미아를 '고아'로 조작하고, 신원을 바꿔 해외에 입양 보내는 입양알선기관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은 사실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진실화해위는 26일 해외입양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국가의 입법 미비와 관리 감독 부실로 헌법과 국제협약이 보장한 기본 인권이 침해됐다"고 발표했다.
이날 진실화해위는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대회의실에서 '해외입양 과정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제102차 위원회에서 해당 안건의 신청자 56명에 대해 '진실규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해외입양 과정 인권침해 사건은 1964년부터 1999년까지 미국·덴마크·스웨덴 등 11개국에 입양된 한인 367명이 해외입양 과정에서 서류가 조작돼 '정체성을 알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조사를 신청한 것이다.
앞서 진실화해위는 2022년 12월 해외입양 과정 인권 침해 사건에 대해 조사 개시를 결정했다. 해외 입양은 고아입양특례법(1961), 입양특례법(1977) 등에 따라 보건사회부 장관이 허가·감독한 입양알선기관이 실시해왔다.
진실화해위 조사에 따르면, 신청자 대부분은 출생 당시 버려진 아이란 뜻의 '기아(棄兒)' 또는 홀로 남겨진 '고아(孤兒)'로 기록됐으나, 실제로는 미아이거나 부모가 입양을 동의하지 않았던 경우도 있었다. 입양 대상 아동 다수가 허위로 작성된 '기아발견신고'와 '고아호적'에 따라 신원이 변경됐다. 일부는 이미 사망한 아동의 신원을 다른 아동에게 넘겨주는 '신원 바꿔치기'까지 이뤄졌다.
실제로 덴마크로 입양된 권모씨는 당초 엄모라는 이름의 아동으로 입양됐으나,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엄모는 출국 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그 신원을 권씨가 이어받아 출국한 것으로 확인됐다. 진실화해위는 "이는 아동을 타인의 명의로 만들어진 서류로 출국시킨 것으로서 입양 아동의 출신과 신원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불법적 행위였다"고 지적했다.
입양 과정에서 친부모의 동의조차 받지 않은 사례도 다수 확인됐다. 일부는 친모가 출산한 다음 날 바로 입양이 결정되거나, 혈연관계가 없는 제3자가 후견인을 자처해 입양을 의뢰한 경우도 있었다. 당시 입양특례법상 친권자의 동의가 필요했지만, 법적 요건은 지켜지지 않았다.
입양 후 보호 조치도 사실상 없었다. 한국 입양기관은 입양이 완료되기 전까지 아동의 후견인 역할을 하도록 법에 명시돼 있지만, 실제로는 아동이 출국하기도 전에 후견권을 해외기관에 임의로 넘긴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일부 아동은 입양 후 장애가 확인되자 '반품'되기도 했다.
진실화해위는 당시 한국 정부가 입양 수수료를 규제하지 않고, 입양알선기관의 기부금 징수에 대해서도 관리·감독 책임을 방기했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입양기관들은 양부모나 외국 입양기관으로부터 수수료 외에 '기부금'을 의무적으로 받아 아동 확보 시설에 투자하는 등 입양을 지속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해외입양이 인도주의가 아니라 경제적 동기에 의해 작동되는 산업으로 변질됐다는 게 진실화해위 지적이다. 진실화해위는 "88서울올림픽 전후로 고아 수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정부가 해외입양 규모를 대폭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덴마크 입양센터는 한국사회봉사회에 상당한 액수의 기부금이 중단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며 "이를 보면 기부금의 성격이 인도주의와 무관한 아동 거래였음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정부에 △공식 사과 △입양인 시민권 실태조사 및 후속 대책 마련 △신원정보 조작 등 피해자 구제 조치 △입양정보 제공 시스템 개선 △가족 상봉 지원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 조속 비준 등을 권고했다.
박선영 진실화해위원장은 "이 자리가 지나간 아픔만 들춰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14만 명 이상의 해외 입양인들과 입양국들이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입양인들이 겪는 정체성 혼란 문제를 해결하고,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질 수 있는 후속 조치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새로운 자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