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지옥' 불법번식장서 겨우 구조된 600마리…새 '견생' 찾았다
"회의도 하고 손님도 맞이하던 큰 책상을 치우고 아이들을 데려왔어요. 이 녀석들이 사무실을 모두 차지해 완전히 '개판'이 됐죠"
동물보호단체 '라이프' 심인섭 대표는 부산 연제구에 있는 사무실에 들어가며 이렇게 말했다. 취재진에게 경고라도 하듯 고개를 내저었지만, 얼굴은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사무실 문이 열리고 심 대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각양각색의 강아지들이 일제히 환영의 인사를 건넸다. 사람이 무섭고 낯설만도 한데, 하나같이 열심히 꼬리를 흔들며 환영했고 몇 마리는 한걸음에 달려와 취재진을 반겼다.
큰 귀를 펄럭이며 달려오던 비비는 불과 석 달 전만 해도 배에 제 머리만 한 큰 혹을 단 채로 방치돼 있었다. 혹의 정체는 불행 중 다행으로 탈장으로 확인됐지만 유선에서는 종양도 발견돼 결국 응급 수술을 받아야 했다.
건강을 회복하고 이곳으로 온 비비는 먹는 걸 과하게 좋아했다. 결국 뱃살이 늘어나 지금은 다이어트 중이다. 갑자기 밥이 줄어들어 불만이라는 듯, 전용 방석에 누워서 졸다가도 간식 소리만 들으면 눈을 빤짝이며 누구보다 빨리 달려온다.
많은 방석을 두고도 굳이 좁은 방석에 비비와 함께 누워있는 꿈이는 이 곳의 청일점이다. 눈동자가 하얗게 변한 채 두 눈의 시력을 모두 잃은 상태로 발견된 꿈이는 구조되자마자 안구적출과 슬개골 등 큰 수술을 연이어 받았다. 다행히 무사히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한 뒤 한 달 만에 퇴원해 이곳으로 왔다.
햇빛이 잘 드는 창가를 유독 좋아하는 꿈이를 위해 창가 바로 앞에는 꿈이 전용 방석도 마련됐다. 두 눈이 보이지 않아 조심스럽지만 산책 시간에는 누구보다 활발하다. 겁이 많을 거라는 우려와 달리 꿈이는 자신만의 속도로 공원 이곳저곳의 냄새를 맡으며 활발하게 자기 세계를 찾아가고 있다.
입에 파란색 인형을 내내 물고 절대 놓지 않던 코볼이는 한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각막에 생긴 상처가 오래 방치돼 각막궤양까지 이어진 상태로, 지금도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야 한다.
경과에 따라 안구 적출까지 해야 하지만, 코볼이는 장난감 하나면 행복한 해맑은 모습이다. 구조 후 한동안 좋아하는 것조차 없었지만, 점차 활기를 되찾았고, 한때 공에 집착하다가 지금은 인형에 푹 빠져 인형을 물고 그대로 잠들기도 한다.
적극적으로 다가와 취재진을 반긴 포포는 이곳 강아지 중에 가장 나이가 어리다. 추정 나이는 3살. 활발하고 밝은 모습과 달리 불법 번식장에서는 임신과 출산을 몇 번 반복했는지도 모르는 어두운 형편이었다.
구조 당시에도 만삭이었던 포포는 끝내 뱃속의 새끼를 잃고 이곳 임시보호소로 오게 됐다. 하루가 다르게 밝아지는 모습을 보였고, 지금은 먼저 다가와 몸을 비비고 벌러덩 누워 배를 보이는 애교쟁이가 됐다.
평생 함께할 가족을 찾은 강아지들도 있다. 구조 당시 번식장 가장 안쪽에 숨겨진 방에서 홀로 출산 중이었던 츄츄는 결국 사산된 한 아이를 떠나보냈지만, 응급 수술을 받고 4마리를 무사히 낳았다.
지난 연말 새끼 한 마리와 함께 한 가정으로 입양돼 '보리'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며 번식견으로만 평생을 살아온 츄츄는 이제는 가족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반려견 '보리'로서, 새끼 '율무'와 꼭 붙어 지내고 있다.
비비와 친구들은 이곳에 오기 전까지 부산 강서구에 있는 불법번식장에서 번식만을 위해 갇혀 살아왔다. 지난해 10월 다른 600여 마리와 함께 동물보호단체에 의해 구조된 후 이전과는 180도 다른 새로운 '견생'을 찾았다.
라이프는 당시 불법번식장 구조 활동에 참여해 갓 태어난 츄츄의 자견 4마리를 포함해 모두 15마리를 데려왔다. 사무실 인근에 건물을 별도로 임대해 임시보호소를 운영했지만, 대다수를 입양 보낸 후 이달부터는 사무실에서 나머지 4마리를 보호 중이다.
현재 라이프에서 보호 중인 4마리는 모두 3살에서 10살로 추정되는 성견으로, 라이프 측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다방면으로 홍보 중이지만 입양이나 임시 보호 문의는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지옥 같은 불법번식장에서 겨우 벗어나 학대받은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새 삶에 적응해나가고 있는 만큼, 따뜻한 가족의 품이 필요한 상황이다.라이프뿐 아니라 당시 구조에 참여한 수많은 동불보호단체들이 수십 마리씩 나눠 데려가 치료와 보호를 책임졌고, 새로운 가족을 찾아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
동물단체들은 "구조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구조 이후 치료와 회복, 보호 등에 더욱 적극적인 지자체의 지원과 책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심인섭 대표는 "지자체가 불법을 방관해서 생긴 피해를 회복하는데 민간단체가 막대한 자원과 인력을 투입해 책임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부와 지자체는 동물 학대 등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행위를 나 몰라라 외면하지 말고 회복시키기 위해 제도를 개선하고, 적극적으로 재원과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5.01.28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