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셀틱스에서 브루클린 네츠로 이적한 케빈 가넷(사진 왼쪽에서 2번째)이 차기 시즌자신의 등번호를 2번으로 결정했다 (사진/NBA 브루클린 네츠 구단 홈페이지)
23번은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을 상징하는 일종의 고유 숫자다. 국내 팬들에게 9번은 현역 시절 '농구 9단'으로 불렸던 허재 전주 KCC 감독의 등번호로 익숙하다. 이처럼 유니폼 뒷면에 적힌 등번호 만으로도 강한 연상 작용을 불러 일으켜 선수 이름이 떠오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1990년대 후반 들어 미국프로농구(NBA)에 '21'의 시대가 열렸다. 1995년에 데뷔한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의 케빈 가넷, 1997년에 등장한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팀 던컨은 각자 등번호 21번을 달고 리그를 대표하는 빅맨으로 군림했다.
최근 들어 던컨이 21번을 상징하는 대표 선수로 굳어지고 있다. 가넷이 2007년 보스턴 셀틱스로 이적하면서 등번호 21번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가넷은 보스턴에서 5번을 달았다. 어쩔 수 없는 선택. 21번은 1960년대의 전설적인 가드 빌 셔먼의 등번호다. 보스턴은 그의 업적을 높게 평가해 훗날 그 어떤 선수도 21번을 달 수 없도록 영구결번으로 남겼다.
가넷은 등번호 5번을 선택한 것은 자신이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5순위로 뽑혔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가넷은 다가오는 2013-2014시즌 새로운 등번호를 달고 자신의 프로 19번째 시즌을 맞이한다. 폴 피어스, 제이슨 테리 등과 묶여 브루클린 네츠로 트레이드된 가넷은 다시 21번을 달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생소한 등번호 2번을 선택했다.
가넷은 어쩌면 보스턴 이적 때부터 등번호 5번 대신 2번을 선택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번 역시 영구결번 돼 선택할 수 없었다. 2번은 1950년부터 1966년까지 보스턴을 지도해 9차례 우승으로 이끈 아놀드 '레드' 아워벅 감독에게 바친 숫자다.
가넷에게 등번호 2번은 어떤 의미에서 특별한 숫자일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멘토'를 추억하다2000년 5월19일, 가넷은 자신의 24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지인과 동료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파티를 열었다.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여기에는 가넷의 팀 선배인 말릭 실리도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파티가 끝나고 비극적인 사고가 벌어졌다. 실리는 자동차를 몰고 귀가하는 길에 역주행하던 트럭과 충돌해 3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트럭 운전기사는 만취 상태였다.
가넷은 큰 충격을 받았고 깊은 슬픔에 잠겼다.
가넷에게 실리는 매우 특별한 존재였다. 가넷이 어린 시절 가장 존경하는 선수였다. 가넷은 프로 데뷔 당시 등번호 21번을 선택한 이유는 실리의 대학 시절 등번호였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실리가 1998년 미네소타로 이적하면서 마침내 둘이 만났다. 다정다감한 라커룸 리더로 후배들에게 따뜻한 조언을 해주기로 유명했던 실리를 가넷은 멘토로 삼았다. 둘은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친형제 이상의 사이였다.
가넷은 생일파티가 끝난 뒤 실리와 함께 휴가를 떠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왔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했으니 가넷의 비통한 심정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다.
가넷은 그해 여름에 개최된 시드니올림픽에서 미국 남자농구 국가대표로 나서 "반드시 금메달을 따 실리의 영전에 바치겠다"며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그리고 목표를 이뤘다.
실리는 1992년 NBA에 데뷔한 뒤 줄곧 21번을 달다가 미네소타로 이적하면서 등번호를 바꿨다. 가넷과 겹친다는 이유로 등번호 2번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