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중국의 방공식별구역(CADIZ) 선포로 촉발된 갈등을 진정시키려는 쪽으로 선회하는 분위기다. 반대로 한국은 관련 문제를 안보논리 위주로 접근하면서 외교적 완충지대를 스스로 허물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중일을 순방 중인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지난 3일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의 회담에서 중국과 일본 간 대화채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중재자 역할에 방점을 뒀다. 중국은 4일 바이든 미 부통령의 방중 주요 의제를 '신형대국관계'로 꼽는 등 미중 전면 대결을 피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가운데 우리 정부는 오는 8일 새 KADIZ를 확정해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미중 갈등의 소강국면에서 한국이 KADIZ를 선포하기까지 방공식별구역 문제는 '이어도를 빼았겨 왔다'는 데 집중돼 논의가 진행됐다. 중국이 선포한 CADIZ에 이어도가 포함된 것도 모자라, 이 지역이 반 세기 가까이 일본의 항공식별구역(JADIZ)에 속해있었던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 그동안 '안보 침해'를 운운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CADIZ 선포 초반만 하더라도 "군사작전에는 그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하던 국방부는 여론의 지탄을 받고 갑자기 강경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국회에서 "확대 검토" 입장을 공식화했다.
여기서부터 수중암초인 이어도는 '사수해야 할 한국의 영토'라는 논리가 본격적으로 힘을 받기 시작했다. "어떤 경우에도 이어도를 지켜낼 것"이라는 군 관계자의 발언이 언론에 일제히 실리기도 했다.
여세를 몰아 군의 숙원사업들도 속속 '이어도 사수'의 간판을 걸고 추진되는 분위기다. 공군은 공중급유기 도입을 결정했고 해군은 이지스함을 3척에서 6척으로 늘리기로 했다.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도 속도를 탄력을 받게 됐다.
이 모든 과정이 안보논리 안에서 진행된 것이지만, 당초 국방부의 설명처럼 그동안 이 지역은 군사 작전을 펴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수십조원을 들여 대대적인 군사력을 투입하는 명분이 중국의 CADIZ 선포인데, 정작 중국은 한국과 이 문제에 대해 "협의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중국이 노린 상대는 일본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