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리그 접수할 수 있다고요' 올 시즌 V리그 최고 신인으로 각축전을 펼치고 있는 한국전력 전광인(왼쪽)과 러시앤캐시 송명근. 그러나 팀 성적과 맞물려 아직 리그 판도를 좌우할 만한 존재감은 보이지 못하고 있다.(자료사진)
지난 19일 일요일 오후. 주말 근무가 잦은 체육부 기자에게 모처럼 휴일은 꿀맛입니다. 이날 현장에서 뛰는 동료 기자들의 노고 덕에 오전 가족과 함께 눈꽃축제를 찾아 가장의 의무를 방어(?)한 뒤 홀가분한 마음으로 TV를 켰습니다.
프로배구 올스타전 중계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승부를 떠나 팬들을 위해 숨겨진 끼를 발산하는 선수들의 모습. 특히 전광인(한국전력)의 '빠빠빠 5기통 춤', 송명근(러시앤캐시)의 '섹시 댄스' 등 신인들의 세리머니가 돋보이더군요. 저 역시 기사 부담 없이 오랜만에 올스타전을 즐겼습니다.
올스타전이 끝나 채널을 돌려 보니 프로농구 경기도 한창이었습니다. 배구 담당이지만 구기 종목이라면 가리지 않고 다른 경기도 빠짐없이 보는 편인 데다 치열한 승부가 펼쳐져 더욱 집중해서 봤습니다.
SK와 KCC의 경기. 그렇잖아도 애런 헤인즈(SK)의 김민구(KCC) 가격 사건 이후 둘의 첫 재회라 관심이 갔던 승부였습니다.
▲김선형, KBL에 꽂은 최고 선수의 덩크김민구와 헤인즈를 떠나 이날 경기 주인공은 단연 김선형(SK)이더군요. 1점 차로 쫓긴 경기 후반 수비수를 앞에 두고 환상적인 덩크를 꽂아넣더니 3점 차로 뒤진 종료 직전 천금의 3점슛으로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 갔습니다. 4쿼터만 10점을 몰아넣은 김선형은 연장에서도 재치 있는 플로터로 팀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김선형이 성공시킨 이른바 '인 유어 페이스(In your face)' 덩크. 장신들이 즐비한 농구계에서 김선형은 187cm 비교적 단신입니다. 덩크조차 쉽지 않을 키인데 자신보다 큰 수비수를 앞에 두고 터뜨린 덩크라니. 중계를 보던 저도 벌떡 일어나 '우와~!' 하고 소리를 지를 정도였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인 유어 페이스' 덩크는 약 20년 전쯤입니다. 농구대잔치 시절 상무에서 뛰던 정재근 연세대 감독이 대학 후배 서장훈(은퇴)의 블로킹을 넘고 호쾌하게 터뜨린 덩크입니다. 193cm 정감독이 207cm에 이르는 장신을 앞에 두고 선보인 덩크. 당시 경기 후반 방송사가 중계를 끊기 직전이라 리플레이 슬로 화면도 없었지만 뇌리에 깊이 박힌 장면이었습니다.
'이것이 최고 선수의 덩크' SK 김선형이 19일 KCC와 경기에서 상대 선수를 앞에 두고 덩크를 꽂고 있다.(자료사진=KBL)
그때만큼은 아니어도 김선형의 덩크는 강렬했습니다. 특히 한국 프로농구에 큰 의미를 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KBL판 전체에 강력하게 꽂은 김선형의 덩크는 당금 최고 선수가 누구인지를 확실하게 각인시킨 하이라이트가 아니었을지.
더욱이 김선형은 앞선 경기에서도 개인 최다 12도움(20점)을 올리며 최고 가드로 꼽히는 양동근의 모비스를 격파하는 데 일등공신이 된 터였습니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 MVP의 기량이 더욱 만개한 모습이었습니다.
▲전광인-송명근, 부상 선배들 제치고 최고 노려김선형의 맹활약을 보면서 담당 종목인 프로배구에 과연 이런 선수가 있는지 돌아봤습니다. 외국인 선수들이 득세하는 KBL에서 경기를 지배하는 존재감을 가진 선수가 V리그에도 있을까.
현재 상황이라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V리그를 대표하는 국내 선수들은 올 시즌 나란히 부상으로 신음하다가 아직 제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문성민(현대캐피탈), 박철우(삼성화재), 김요한(LIG손해보험) 등입니다.
하지만 농구 경기에 앞서 봤던 V리그 올스타전이 오버랩되면서 한줄기 희망의 빛을 찾았습니다. 올스타전에서 풋풋한 세리머니를 펼치던 전광인, 송명근입니다. 이 둘은 올 시즌 신인답지 않은 활약으로 향후 10년 V리그를 이끌 기대주로 꼽히고 있습니다.
1순위 신인 전광인은 194cm의 키에 고무공 탄력으로 전반기 국내 선수 득점 1위(18경기 379점)에 올랐습니다. 전체 5위 웬만한 외국인 거포와 경쟁에서도 당당히 겨루고 있습니다. 공격 성공률도 3위(55.25)에 올라 순도도 높았습니다.
송명근 역시 공격 성공률 2위(56.95%)의 깜짝 활약을 보이며 신생팀 러시앤캐시의 선전을 이끌었습니다. 대학 3학년만 마치면서 미완의 대기로 예상됐지만 V리그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엄청난 점프력에서 내리꽂는 둘의 후위 공격은 성공률 수위를 다출 정도입니다.
아직까지 이들의 존재감은 김선형에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문성민, 박철우 등 선배들의 전성기에 다소 못 미치는 것도 사실입니다. 전광인은 용병급 활약에도 전력이 약한 팀이 최하위에 처져 있고, 송명근도 신생팀의 한계를 혼자 극복해내기에는 아직 힘에 부칩니다.
그러나 이들이 향후 V리그를 주름잡을 선수가 될 것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을 겁니다. 엄밀히 외국인 선수 의존도가 절대적인 V리그에서 국내 선수는 언제가 두 번째 공격 옵션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도 비슷한 환경의 KBL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맹렬하게 떨치고 있는 김선형처럼 자라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들의 올 시즌 후반기, 아니 향후 V리그 경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