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박 모(30·여) 씨는 지난해 8월 서울 노량진의 한 고시원에서 총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다른 아르바이트를 놔두고 고시원 총무를 선택한 이유는 '먹여주고, 재워준다'는 말 때문이었다.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보니 당장 공부보다도 급한 게 돈이었다.
고시촌에 발을 들인 첫 한 달은 방세와 생활비는 물론, 온갖 학원비에 교재비까지 돈 나갈 구멍투성이였다.
학원과 가까운 고시원에서 기거하면 학원을 오가는 데 낭비하는 시간도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박 씨는 고시원 총무 일이 구인 글에 적힌 대로 반나절, 그러니까 오후 6시간 정도 근무하면서 간단한 청소 등을 하면 되는 줄 알았다.
◈ "공부는커녕 휴일도 없이 일주일 내내 근무…월급은 겨우 20만 원"하지만 박 씨는 휴일도 없이 일주일 내내 일하는 건 물론, 근무 시간이 아닌 새벽에도 온갖 민원 등 잡일에 시달려야 했다.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는 총무 일은 근무 시간도 근무 내용도 고시원 측 멋대로였다.
보일러가 고장 나 온수가 나오지 않아도, 인터넷이 불통 돼도 고시원 측은 '총무가 알아서 처리하라'는 말뿐이었다.
그런데도 월급은 겨우 20만 원.
방세 31만 원에 하루 3,000원 식대까지 더해도 최저임금의 반 토막 수준이었다.
고시원 측에 항의하는 박 씨에게 돌아온 건 "어차피 일할 고시생은 넘친다"는 조롱이었다.
그래도 박 씨는 어디에 제대로 하소연조차 할 수 없었다.
궁색한 자신의 처지를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 씨는 "친한 친구에게도 자존심이 상해서 '고시원 총무 한다'고 얘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모님께는 사정을 더 꼭꼭 숨겼다.
"안 그래도 타지에서 공부하는 딸에게 '용돈 많이 못 보내 미안하다'는 부모님께 이런 사정은 차마 말씀드릴 수 없었다"는 박 씨의 눈시울이 붉었다.
결국, 참다못한 박 씨가 노동청에 고시원을 신고하자 고시원 측의 협박이 쏟아졌다.
고시원 측은 '사기꾼', '양아치' 등 온갖 욕설이 담긴 문자메시지 수십 통을 박 씨에게 보냈다.
고시원 총무 구인광고글. (네이버 카페 캡처)
◈ 월 20~40만 원은 업계 상식? 명백한 최저임금법 위반이처럼 열악한 고시원 총무들의 처지는 너나없이 비슷했다.
박 씨 친구 역시 "근무 시간이 아닐 때도 5분 내로 고시원에 도착할 수 있게 대기하라"는 등 부당한 지시를 견디지 못하고 두 달 만에 총무 일을 그만뒀다.
공무원, 교사 등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의 인터넷 카페를 살펴보면 '6~8시간 근무에 20~40만 원 수준의 월급을 준다'는 구인 글이 가득하다.
기자가 몇몇 고시원을 무작위로 골라 직접 고시원 총무 자리에 지원해 보니 한 달 30여만 원 월급은 '업계의 상식'이라는 게 한결같은 얘기였다.
명백한 최저임금법 위반이다.
민주노총 서울본부의 김요한 노무사는 "숙소를 제공하는 식의 현물급여나 식대는 애초부터 최저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RELNEWS:right}
김요한 노무사는 "고시생에게 간단한 일을 시키고 용돈을 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명백한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당연히 처벌받게 된다"고 강조했다.
사상 최악의 청년 실업난 속에 비좁은 고시원에서 한 가닥 희망을 키우는 애처로운 청춘들이 일부 악덕 고시원의 횡포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