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에서 1964년 3월31일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장고'(Jango)라는 별명으로 불린 좌파 성향의 조앙 고울라르 당시 대통령이 실각하고, 군부는 대통령 직선제를 폐지해 버렸다. 1985년까지 21년간 군사독재정권이 계속되는 동안 수천 명의 민주 인사들이 사망·실종되거나 외국으로 추방된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질은 1970년대 중반부터 조금씩 민주화의 길을 갔다. 1974년 출범한 에르네스토 가이셀 정권은 1978년 사전검열을 폐지했다. 1979년에 취임한 조앙 피게이레도 대통령은 정당 결성을 자유화했다.
1982년부터는 군사독재정권에 본격적으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해 주지사 선거에서 야권 진영은 10명의 당선자를 배출했다. 이어 1983년부터 '지레타스 자'(Diretas ja, '지금 당장 직접선거를'이라는 뜻)로 불리는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민주화 운동이 전개됐다. 상파울루 시 탄생 430주년이던 1984년 1월25일 시내 가톨릭 세(Se) 성당 광장에 모인 20여만 명의 시민은 한목소리로 민주화를 요구했다.
국민의 민주화 열망에 밀린 군사독재정권은 민정 이양을 약속했고, 정치권은 제헌 의회를 구성해 민주 헌법을 제정했다. 1985년 3월15일 대통령에 당선된 탄크레도 네베스의 갑작스러운 병사로 임시대통령에 취임한 조제 사르네이가 민주주의 회복을 선언하면서 군사정권은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이후 사르네이 대통령 정부(1985∼1990년)와 페르난도 콜로르 데 멜로 대통령 정부(1990∼1992년), 이타마르 프랑코 대통령 정부(1992∼1994년)를 거쳐 페르난도 엔히케 카르도조 대통령이 사상 처음으로 연임에 성공하며 1995∼2002년 8년간 집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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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노동운동 지도자 출신의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가 노동자당(PT) 후보로 대선에 출마해 당선됐고, 연임에 성공하며 역시 8년간(2003∼2010년) 집권했다. 노동자당은 2010년 말 대선에서 지우마 호세프를 후보로 내세워 승리하며 정권 재창출에도 성공했다.
브라질 헌정 사상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으로 꼽히는 룰라는 '지레타스 자'를 "브라질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위대한 시민운동"이라고 평가했다.
군사 쿠데타가 발생한 지 50년이 지난 현재 브라질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은 어떨까.
이와 관련, 브라질 여론조사업체 다타폴랴(Datafolha)가 30일(현지시간) 발표한 조사 결과에서 "민주정부가 그 어떤 형태의 정권보다 낫다"는 응답이 62%로 나왔다. "민주정부나 군사독재정권이나 마찬가지"는 16%, "군사독재정권이 나을 때도 있다"는 14%, "모르겠다"는 8%였다.
민주정부가 최선이라는 응답은 다타폴랴가 1989년 9월부터 같은 방식으로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높은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만족도는 '매우 만족' 9%, '만족' 59%, '불만' 28%, '모르겠다' 4%로 나타났다.
군사독재정권이 재등장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51%가 '없다', 24%가 '조금 있다', 15%가 '많다', 10%가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브라질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이 그만큼 공고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군사독재정권이 일부 분야에서 비교우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난 사실은 민주정부가 깊이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응답자들은 군사독재정권과 비교해 민주정부에서 더 악화한 점으로 부패(68%)와 공공치안(51%), 보건(45%), 정치안정(39%)을 들었다.
군사독재정권 인권범죄자들에 대한 처벌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브라질에서는 1979년 사면법이 제정되면서 1961년부터 1979년 사이에 벌어진 정치적 사건에 대한 처벌이 금지됐다. 이 때문에 군사정권의 인권범죄자들은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2012년 5월 국가진실위원회 출범을 계기로 사면법을 개정하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AI)도 최근 브라질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인권범죄 연루자들에 대한 처벌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