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 담배를 피워 폐암이 생겼다고 주장한 흡연자들이 제조사인 KT&G와 국가를 상대로 낸 국내 첫 '담배소송'에서 대법원은 10일 흡연자 측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15년간 이어진 이번 소송의 핵심 쟁점 중 하나인 '흡연과 암 발병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은 원고가 앓고 있는 폐암의 종류와 개별적 특성을 따져서 내린 '제한적 결론'의 성격을 갖고 있다.
따라서 향후 유사한 주장을 펴는 소송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를 인정할지 여부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결론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과 하급심에서 인과관계가 인정된 일부 유형에는 향후 동일한 결론이 내려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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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손해배상을 받는 것은 사실상 매우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다.
기존 소송에서 제시되지 않았던 KT&G의 고의·과실에 관한 새로운 증거가 나오지 않는다면 기존 판례대로 배상 책임은 인정되지 않을 전망이다.
대법원이 이날 선고에서 KT&G가 제조·판매 과정에서 불법행위를 했다고 볼 수 없고 담배에 제조물책임법상 결함이 있다고도 할 수 없다고 명확한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번 담배소송의 쟁점은 크게 3가지다.
흡연과 폐암 발병 사이에 개별적 인과관계가 있는지, 담배에 제조·설계·표시상의 결함이 존재하는지, KT&G 측이 담배가 해롭지 않다고 광고하거나 유해성을 은폐하는 등의 방법으로 흡연을 조장해 불법행위를 저질렀는지 여부다.
우선 대법원은 인과관계에 대해 대체로 의학계의 통설에 따라 결론을 내놓았다.
재판부는 "폐암은 흡연과 관련성이 높은 것부터 관련성에 대한 근거가 없는 것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다"며 상고심까지 온 원고들의 경우 "개별적인 인과관계를 입증할 만한 개연성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들의 발병이 흡연이 아닌 환경오염물질 등 다른 요인에 의한 것일 가능성도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의학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폐암은 조직형태에 따라 크게 소세포암과 비소세포암으로 나뉜다.
소세포암과 비소세포암 중 편평세포암은 흡연과 관련성이 매우 크지만 다른 비소세포암인 선암은 관련성이 현저히 낮다고 평가된다고 대법원은 전했다.
소송을 낸 흡연자 측 7명 중 4명은 서울고법 항소심에서 '흡연과 폐암 발병 사이에 개별적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판단을 받았다.
이들 4명의 폐암은 소세포암 3명, 편평세포암 1명이었다. 법원이 의학계의 통설을 받아들여 인과관계를 인정한 것이다.
나머지 3명의 경우 각각 세기관지 폐포세포암(선암의 일종), 선암 등이었다. 대법원은 이들 3명의 상고심에서 암 발병과 흡연 간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법원은 의학계의 견해대로 비소세포암 중 편평세포암과 소세포암에 대해서만 흡연과의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또 손해배상과 관련해선 KT&G 측의 제조·판매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없었고 제조물로서 담배의 결함도 인정할 수 없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통상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불법행위가 인정돼야 배상을 받을 수 있다.
대법원은 담배의 표시·설계 결함에 대해 "흡연이 폐를 포함한 각종 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사회 전반에 널리 인식돼 있다고 보이고, 흡연을 계속할지 여부는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의 문제"라며 과도한 흡연의 책임이 전적으로 담배회사에 있지는 않다고 봤다.
또 재판부는 "피고들이 제조한 담배에 이전부터 국내에서 소비된 담배와는 다른 특별한 위해성이 있다거나 피고들이 위해성을 증대시키는 행위를 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판시, KT&G가 담배 유해성을 은폐했다거나 흡연을 조장했다는 원고측 주장도 인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