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원주에서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3연패를 달성한 뒤 그물 커팅식을 마치고 팬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비스 양동근 (사진 제공/KBL)
양동근은 화려하지 않다. 그런데 은근히 화려하다. 과감한 플레이보다는 실수를 줄이는 농구에 주력하는 심심한 선수다. 그런데 과감해야 할 때는 누구보다 과감해진다.
2014년 10월3일 인천삼산체육관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이란과의 남자농구 결승전.
한국이 70-75로 뒤진 채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실점하지 않았지만 득점도 없었다. 답답하던 공격의 활로를 뚫은 선수가 등장했다. 양동근(34·울산 모비스)이었다. 종료 1분9초 전, 천금같은 3점슛을 넣었다.
이어지는 공격에서 골밑으로 쇄도하는 김종규(창원 LG)를 발견해 절묘한 어시스트를 했다. 자칫 실책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과감한 패스였다. 김종규의 3점 플레이가 나오면서 한국은 스코어를 뒤집었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5년 4월2일 원주종합체육관에서 열린 원주 동부와의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3차전.
양동근은 3점슛으로 묘기 대행진을 펼쳤다. 2쿼터 종료와 동시에 버저비터 3점슛을 넣었고 4쿼터 중반 시간에 쫓겨 던진 장거리 3점슛도 성공됐다. 4쿼터 막판에는 상대 수비수와 충돌해 이상한 자세로 던진 3점슛마저 림을 통과했다.
양동근은 어느 때보다 공격적인 농구를 펼쳤다. 승부처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해결사 기질도 엿보였다.
물 오른 양동근의 해결사 본능 앞에 동부는 해답이 없었다. 양동근은 4일 원주에서 열린 4차전에서도 팀이 3점 차로 추격당한 3쿼터 막판 결정적인 3점슛을 터뜨렸다.
결국 모비스가 81-73으로 승리, 파죽의 4연승으로 정상에 올랐다.
양동근은 챔피언결정전 4경기 동안 평균 20.0점, 4.8어시스트, 4.8리바운드, 야투 성공률 50.9%, 3점슛 성공률 57.1%(14개 시도 8개 성공), 자유투 성공률 80%라는 믿기 힘든 기록을 남기며 당당히 MVP를 거머쥐었다.
2014-2015시즌 흥행의 중요한 전초전으로 여겨진 인천 아시안게임을 포함해 올 시즌은 양동근으로 시작해 양동근으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패배 직전의 한국을 구해낸 것도, 모비스의 챔피언결정전을 화려하게 장식한 것도 모두 양동근이었다. 남자농구는 12년 만에 아시아 정상에 섰고 모비스는 챔피언결정전 사상 첫 3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특히 정규리그부터 돌아보면 모비스의 통합 우승은 양동근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재학 감독은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불안했던 요소를 묻는 질문에 "백업이 부족했다. 양동근 하나로 우승까지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다행히 양동근은 혼자서 불안했던 부분을 다 메워줬다"고 답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위기의 순간 자신의 틀을 깨고 나와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늘 그랬다. 자신이 서있는 무대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양동근은 '1분의 가치'를 아는 선수다.
(사진 제공/KBL)
2014-2015시즌의 모비스는 어느 때보다 주전 의존도가 높았다.
유재학 감독은 "정규리그 4~6위에 초점을 맞추고 리빌딩을 함께 하면서 시즌을 끌고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초반 성적이 좋아 '어? 한번 해볼까' 하다가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여기'는 정규리그 우승을 뜻한다.
이 때문에 양동근은 쉴 틈이 없었다. 정규리그 54경기에 모두 뛰었고 최근 3시즌 동안 가장 많은 평균 34분56초의 출전 시간을 기록했다.
그러나 불평 한 마디 없다.
다음은 모비스의 정규리그 우승을 결정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난 2월23일 동부와의 1-2위 맞대결에서 82-73으로 승리한 뒤 양동근이 기자회견실에서 남긴 말이다.
"선수는 1분이라도 더 뛸 때가 좋은 것 같다. 1분이든 30초든 뛰고 싶어도 못 뛰는 선수들도 있다. 많이 뛴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