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서울 태평로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열린 '사드배치 논란 긴급토론회 - 성주군민, 언론에게 묻는다'에 참석한 이재동 성주군 농민회장(왼쪽)과 성주군민 배윤호 씨가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노컷뉴스)
자신을 "성주군민"이라고 소개한 배윤호 씨가 들려 준 이야기는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발표 이후 경북 성주를 휘감고 있는 거대한 불안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21일 '사드 배치 논란 언론보도 긴급 토론회'가 열린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내 전국언론노동조합 회의실에는 그의 격앙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배 씨는 "어제 저희 집 옆에 북한을 찬양하는 내용의 삐라가 떨어졌다"는 말로 운을 뗐다.
"어제 아침 고추밭에 영양제를 뿌리고 풀을 베다가 말벌에 쏘였어요. 작업을 계속 할 수 없어서 집에 기계를 두고 고사리 밭을 돌아보는데, 배추종자 봉투 크기의 조각이 보이는 거예요. 최근 배추 씨앗을 뿌렸기에 '봉투가 바람에 날렸나' 싶어서 보는데 삐라더군요. 이곳에 60년 넘게 살면서 처음 봤습니다. '파출소에 갖다 줘야지'라는 생각에 주우려다보니 섬뜩하더군요. 산에서 일을 하다보면 독사를 많이 만나게 되는데, 그게 독사처럼 보였어요. 무서웠죠."
"몇몇 언론사에 제보한 뒤 파출소에 신고했는데, 파출소 사람들이 그걸 보더니 '북한에서 온 게 아니다. 여기까지 올 수 없다'고 말하고는 예비군 중대에 전화를 했다"며 배 씨는 말을 이었다.
"'내가 고정간첩 될 뻔 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1980년대 민주화운동, 농민운동을 하다가, 숨고 싶은 마음에 후배들에게는 '내공이 부족한 것 같다"며 1999년 가야산에 들어와 지금까지 살았는데, 잘못하다간 산에 숨어서 암약하던 고정간첩이 될 것만 같더군요. 저를 만나지 않은 몇몇 언론사에서 보도된 내용을 보니 '뒤숭숭한 성주에 북한을 찬양하는 삐라가 발견됐다'고만 나왔어요. 사람들이 성주에 불온세력이 와서 삐라를 뿌리고 선동질한 것으로 생각할 것 아닙니까. 그것이 왜 우리 집에 떨어졌는지는 (언론이) 분석하지 않고 말이죠."
배 씨는 성주군민들의 사드배치 반대 움직임을 '외부세력 개입' 등으로 몰아세우며 정부 입장만을 대변하고 있는 언론을 향한 깊은 불신을 감추지 않았다.
"외부세력을 말했는데, 며칠 지나면서 없었다는 게 드러났어요. (외부세력이) 있었으면 벌써 경찰 등에서 언론 플레이하고 난리 났을 겁니다. 결국 찾아도 없으니까 시들한 것 아니겠어요. 언론이 취재를 해서 성주의 아픔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치료해야 하는데, 상처난 곳에 소금을 뿌리고 있어요. 언론은 병든 사회를 치료할 수도 있지만, 병들기 전에 예방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오히려 병든 사회를 더 악화시키고 있어요."
그는 "지금까지 저는 사드를 몰랐는데, 이제서야 언론을 통해 알게 됐고, 성주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의 문제라는 것도 알게 됐다"며 "(사드가) 한반도에 들어오면 안 된다. 사드 문제는 정치권이 먼저 나서서 정말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전문가들을 모아, 많은 위험성과 손실을 고려한 뒤 국민 합의를 통해 새롭게 진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 "권력, 국민 무서운 줄 알아야 합니다"앞서 이날 토론회에서 첫 발언을 맡은 이재동 성주군 농민회장 역시 "찌라시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외부 불순세력, 시위전문가가 바로 저"라며 왜곡 보도 행태를 꼬집었다.
"외부 불순세력이 없어서 저를 지목했나 본데, 저는 성주에서 평생을 살아 온 사람입니다. '사드배치 철회 성주투쟁위원회'에서 군민들에게 언론 인터뷰 지침으로 내린 게 이야기한 것을 그대로 실어주면 인터뷰를 하라는 거예요. 종편은 특히 말꼬리 잡아서 소설 쓰는 곳이니 인터뷰도 될 수 있으면 하지 말도록 했죠. 그렇게 해도 마구잡이로 나가더군요. 오히려 우리가 생각하는 외부 불순세력은 5~10명이 모여 사드 배치 찬성 집회를 하는 이들입니다. 매일 저녁 촛불문화제를 할 때마다 뒤에서 분란을 일으키고, 그걸 그냥 못 보고 넘긴 군민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어요."
이 회장은 "일부 언론 보도를 보면 성주를 계속 고립시키려는, 군민들 사이에 분란을 조장하려는 의도가 보인다"며 "국회에서 이러한 언론을 막고 처벌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법을 만들 것을 강하게 요구한다"고 전했다.
"사드 반대에 앞장서는 군민들을 처벌하고, 분란을 만들고, 전자파에 대해서도 정부 말 잘 듣는 학자들을 동원하고, 그렇게 성주를 가둬가는 걸 이제는 군민들이 느끼고 있어요. '이렇게 당하는 거구나'라고요. 오늘 저녁 서울에서 성주군민 2000여 명이 상경 집회를 하는데, '내가 외면했던 세월호 천막에 가보고 내려가겠다"는 분들도 상당수예요. 사드 배치 반대 투쟁을 하면서 군민들이 세상 돌아가는 것을 제대로 알아가고 있어요. 권력이 국민 무서운 줄 알아야 합니다."
그 역시 "성주뿐 아니라 반도 땅 남쪽 어디에도 사드 배치는 안 된다"며 "사드 배치가 철회 되고 한반도, 동북아 정세가 평화로 옮겨갈 때까지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집회 등에서 파란 리본을 다는 성주군민들을 보고는 일부 언론이 '외부인과 구분짓기 위한 것'으로 보도를 했는데, 아닙니다. 노란 리본이 세월호를 상징한다면, 파란 리본은 평화와 희망의 의미로 군민들의 협의를 통해 만들어졌어요. 앞으로 이를 확산시켜 나갈 겁니다. 언론에서도 성주군민들의 사드 배치 철회 투쟁이 성주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한반도와 동북아, 지구촌이 행복해지는 길이라는 것을 널리 알려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