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역적 오브제, 2016' 앞에 선 김숙자 작가.
보따리 작업의 작가 김수자(59)가 새롭고 보다 확장된 작품의 보따리를 풀었다.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6:김수자- 마음의 기하학'전에 출품된 그의 대형 설치 및 영상 작품 9점은 그 보따리의 깊이와 크기를 드러내며 관객의 인식을 우주로까지 확장시킨다.
이전 보따리 작업은 물질성을 통해 비물질성을 드러낸다. 즉 이삿짐 보따리에 담긴 헌옷 등을 통해 그 이삿짐 주인의 과거 흔적이 어떠했으리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이 보따리 작업은 작가에게 안과 밖, 삶과 죽음, 남성과 여성 등 모든 삶의 문제들을 숙고하게 하는 자극제 역할을 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숙고가 삶과 예술에서 얼마만큼 실제성을 갖느냐가 중요하다. 작가는 이러한 문제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지속적인 의문에 대한 명상의 결과를 작품의 보따리로 풀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줬고, 새롭게 시도하고 방향 전환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마음의 기하학, 2016'
작품 '마음의 기하학'은 80년대 초반에 의문을 가졌던 하늘과 땅, 인간의 관계성에 대한 연장선에 있다. 몸과 공간의 관계에 대한 조형적, 기하학적 표현을 다시 시도해 두 관계를 연결짓고 개념화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작가는 캔버스의 기능을 겸하는 19m 길이의 타원형 나무탁자 위에 관람객이 찰흙 덩어리를 구슬형으로 만들어 놓도록 요청한다. 이 찰흙 작업은 구도의 과정과 같다. 찰흙을 둥글게 한다는 것은 마음의 모서리를 깎는 행위로서, 마음 상태까지 변화시키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이다. 오호라 마음의 모서리를 깎다니. 그래서 이 작품 제목이 마음의 기하학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굳어진 찰흙 구슬은 나무 탁자 위에 놓이고, 그 구슬들은 수많은 원형 조각작품으로 이뤄진 회화가 된다. 그 하나 하나의 구슬은 영롱하게 빛나는 우주가 된다.
작품 '구의 궤적'은 '마음의 기하학'과 함께 설치된 사운드 퍼포먼스이다. 16채널로 구성된 15분 31초 분량의 사운드이다. 찰흙 구슬 굴리는 퍼포먼스가 주를 이루고 3분 가량 가글링 하는 소리가 포함되어 있다. 이 소리들은 마치 폭풍우와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소리, 번개치는 소리처럼 들려 우주의 충돌까지 연상시킨다. 영롱히 빛나는 찰흙 구슬들은 빅뱅 이후 우주 공간에 흩뿌려진 갤럭시(은하수)를 재현한 듯하다. 가글링하는 소리는 삶의 모든 경계에서 -정치적· 심리적 경계에서 - 생존을 위해 쟁투하는 아우성으로 들린다. 머금은 물을 내뱉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기에. 이 거친 소리들은 바로 옆 전시실에서 들었을 때 절묘한 느낌을 준다. 바로 옆 전시실의 영상 작품 '삶의 궤적'에서 고요하게 물 떨어지는 소리와 대조를 이루며 명상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연역적 오브제, 2016'
작품 '연역적 오브제'는 야외 조각이다. 우주의 알로 알려진 인도 브라만다의 검은 돌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것이다. 이 작품은 브라만다 형태를 보따리로 형상화해 오방색 띠를 두른 타원체로 나타난다. 이 작품 아래에는 거울이 설치되어 있다. 이 거울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빛의 방향과 강도에 영향을 받아 끊임 없이 변화하는 주변 환경을 반영한다. 끊임 없이 변화하는 자연환경과 그 중심에 자리잡은 우주의 알. 이 우주의 알은 주변의 변화를 받아들이면서도 변치 않는 중심을 유지하고 있다. 그것은 정서를 자극하는 자연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모든 것은 무상하다는 본성을 깨우치게 한다. 그래서 이 우주의 알은 앞의 작품 '삶의 궤적'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은하수의 반열에 들게 된다.
'연역적 오브제, 2016'
'연역적 오브제'라는 제목의 또 다른 작품은 작가의 양 팔과 손을 본떠 제작한 것이다. 두 팔은 서로 마주보고 있다. 각 손의 엄지와 검지 손가락은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맞닿아 있다. 이 원은 바늘의 연장선으로 표현되었다. 바늘의 역할은 양 극을 연결하는 것이다. 손으로 양 극을 연결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건 손 내밀기, 손 잡기, 악수하기, 감싸기일 것이다. 이러한 행위를 통해 둘의 관계, 타자와 관계를 원만히 하고, 공동체와 연대 의식을 높일 수 있다. 이전의 보따리 작품에서 헌옷과 같은 것들을 통해 존재성, 시간, 흔적, 기억 등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발견해냈다. 이 양 손 작품은 인식에만 그치지 말고, 만남이라는 보다 적극적인 행위에 나서라고 관객에게 말하는 듯하다.
작품 '몸의 기하학'은 10년 동안 작가 사용했던 요가 매트로 작가의 손과 발이 닿은 흔적들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그 고행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물질성과 비물질성은 김수자 작가의 오래된 문제의식이다. 앞서 보따리 작업은 물질성을 통해 비물질성을 드러낸다고 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는 "비물질과 물질은 하나"라고 정의한다. 이어 "둘의 관계는 동전의 앞뒤와 같고, 물질-비물질 세계가 공존하는 구조"라고 했다. 이러한 이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떠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