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에이스 명암' 6일(현지 시각)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여자배구 A조 1차전에서 승리를 이끈 한국 주장 김연경(왼쪽)과 패배를 맛봐야 했던 일본 주장 기무라 사오리.(자료사진=국제배구연맹)
6일(현지 시각) 브라질 마라카낭지뉴에서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여자배구가 막을 올렸습니다. 첫 경기답게 한국과 일본의 '영원한 라이벌' 매치였습니다.
경기 전 두 팀에 대한 응원의 규모는 차이가 컸습니다. 100만 명이 넘는 교민이 있는 일본은 브라질과 예전부터 가까운 나라. 일본에 거주하는 일본계 브라질인만 해도 30만 명이 넘는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반면 브라질 리우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은 채 100명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 만큼 경기장은 일본 팬들과 현지 브라질인의 응원이 주를 이뤘습니다. 하지만 우리 교민들도 태극기를 들고 열심히 응원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A조 1차전의 승자는 한국이었습니다. 짜릿한 역전승이었습니다. 1세트 한국은 몸이 무거운 듯 활발한 일본의 공격에 당했지만 2세트부터 내리 세 세트를 가져오며 3-1(19-25 25-15 25-17 25-21)로 이겼습니다. 4년 전 런던 대회 동메달 결정전에서 당한 패배를 깨끗하게 설욕한 셈입니다.
에이스이자 주장 대결에서 완승이었습니다. '배구 여제' 김연경(28 · 192cm)은 이날 양 팀 최다 30점을 퍼부으며 일본 수비진을 유린했습니다. 공격 성공률은 무려 58.3%에 달했습니다. 큰 키에 탄력 있는 점프에서 터지는 고공 강타에 열띤 응원을 펼치던 일본 팬들은 조용해졌습니다.
반면 일본 주장이자 최고 인기 선수 기무라 사오리(30 · 185cm)는 12점, 성공률 33.3%에 머물렀습니다. 김연경은 물론 일본의 새 에이스 나가오카 미유의 19점, 성공률 48.7%에도 크게 미치지 못했습니다. 사실 기무라가 서서히 전성기에서 벗어나고 있다고는 하나 이름값을 감안하면 적잖게 실망스러운 성적이었습니다.
여자배구 대표팀 김연경이 6일 오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나징유 배구 경기장에서 진행된 2016 리우올림픽 여자배구 조별예선 1차전 대한민국-일본의 경기에서 득점 후 환호하고 있다.(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특히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두 에이스의 명암은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김연경은 당당하게 취재진의 질문에 답한 반면 기무라는 인터뷰를 피하려는 자세를 보였던 겁니다.
경기 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는 한일 취재진이 자국 선수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한국 취재진은 일단 먼저 나온 이재영, 양효진 등 선수들을 인터뷰한 뒤 이정철 대표팀 감독까지 문답을 진행했습니다. 다들 통쾌한 승리에 뿌듯한 표정으로 후련한 답변을 내놨습니다.
수훈갑답게 김연경은 중계 인터뷰를 마친 뒤 가장 마지막에 믹스트존에 들어섰습니다. 그때 이 감독에 대한 인터뷰가 진행 중이어서 김연경은 잠시 기다렸습니다. 경기 후의 피곤함이 밀려왔지만 4년 전 눈물을 흘렸던 아픔을 설욕한 데다 40년 만의 올림픽 메달을 위한 중요한 첫 고비를 넘긴 만큼 기다리는 표정은 기꺼웠습니다.
승자의 여유였습니다. 잠시 기다린 김연경은 승리 소감과 함께 다음 경기인 러시아전에 대한 긴장감까지 밝혔습니다. 대표팀 주장이자 에이스다운 의젓한 인터뷰였습니다. 여기에 첫 경기에 만족하지 않고 메달을 위해 절실하게 나서겠다는 결연한 자세를 잊지 않았습니다.
'당당한 여제'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주장 김연경이 6일(현지 시각) 일본과 올림픽 A조 예선에서 승리한 뒤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리우데자네이루=노컷뉴스)
반면 기무라는 살짝 민망한 상황을 연출했습니다. 이 감독과 김연경이 인터뷰를 하는 동안 기무라도 경기장에서 믹스트존으로 들어섰습니다. 다만 기무라는 일본 취재진이 모여 있는 자리를 피해 펜스를 가로질러 출입구 쪽으로 빠져나가고 싶다는 의사를 관계자에게 타진했습니다.
하지만 믹스트존을 지나쳐야 한다는 관계자의 말을 듣고 기무라는 취재진 쪽으로 걸어가야 했습니다.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는 경기 후 모든 선수들이 중계 인터뷰에 이어 믹스트존에서 방송사, 신문 등 매체들과 인터뷰를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다만 도핑 테스트를 받아야 하는 선수는 예외인 경우가 있죠.
물론 경기에 졌어도 유효한 규정입니다. 국제대회 경험이 풍부한 기무라가 이를 모를 리는 만무하겠죠. 다만 숙적 한국에 진 데다 본인도 부진했던 까닭에 인터뷰가 꺼려졌을 심정은 이해가 갑니다.
그래서 이를 지나치려다 했지만 조직위 관계자의 제지를 받은 겁이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기무라는 이날 "시작은 좋았지만 실수가 많아 아쉬웠다"면서 "재정비해서 다음 경기에서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실 기무라는 한국전을 앞두고 손가락 부상으로 출전이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나왔죠. 그러나 기무라는 손가락에 테이프를 감고 선발 출전했습니다. 큰 부상이 아니었다는 뜻이겠죠. 이런 가운데 인터뷰까지 기피하려는 모습은 한 국가를 대표하는 주장이자 간판스타로서는 아쉬운 대목입니다.
결국 기무라는 경기에서도, 인터뷰 의무를 다해야 할 선수의 매너에서도 김연경에 완패를 안은 셈이라고 할까요? 김연경은 다소 피곤했지만 한국 취재진의 요청에 이 감독의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 뒤 질문을 받았습니다.
"4년 전 패배 뒤 눈물이 생각났고, 설욕을 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는 김연경의 당당한 인터뷰가 믹스트존에서 진행됐습니다. 경기에서 소리를 지르며 동료들을 독려하느라 목이 다 쉬었지만 제 귀에는 그 어느 누구보다 아름다운 소리로 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