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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률의 삿포로 레터]韓 쇼트트랙, 세계 최강을 지켜온 '그들만의 속사정'

스포츠일반

    [임종률의 삿포로 레터]韓 쇼트트랙, 세계 최강을 지켜온 '그들만의 속사정'

    • 2017-02-23 09:32
    한국 쇼트트랙은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에서 라이벌 중국에 개인전 금메달에서 4-2로 압승을 거뒀다. 사진은 지난 20일 1500m 시상식 모습.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부터 심석희, 최민정, 궈이한, 이정수, 박세영, 우다징.(자료사진=대한체육회)

     

    한국 쇼트트랙이 일본 삿포로에서도 아시아 최강임을 확인했습니다. 제 8회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은 쇼트트랙에 걸린 금메달 8개 중 5개를 휩쓸었습니다. 이른바 '나쁜 손'까지 써가며 한국을 막으려 했던 중국을 실력으로 뿌리치며 이번 대회 종합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번 대회 한국 쇼트트랙은 남녀 1000m와 1500m를 동반 석권했고, 여자 3000m 계주에서도 정상에 올랐습니다. 중국도 사력을 다해 금메달 3개를 따냈지만 한국을 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2003년 아오모리 대회 때 최다 금메달 6개에는 살짝 모자랐지만 1996년 하얼빈 대회와 1990년 삿포로 대회 때와 같은 금메달 5개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냈습니다.

    한국 쇼트트랙은 이번 대회에서 금 5개, 은 5개, 3개로 모두 12개의 메달을 수확했습니다. 이번 대회에 걸린 24개의 메달 중 절반을 차지했습니다. 동일 국가의 메달 독식을 막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규정에 의해 1~3위까지 싹쓸이를 하고도 일본에 선물한 남자 1000m의 동메달까지 더한다면 절반이 넘습니다. 중국은 금 3개, 은 1개, 동 2개로 메달 수확이 한국의 꼭 절반에 그쳤습니다.

    사실 한국 쇼트트랙은 세계에서도 최강인지라 아시안게임 제패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세계 제일의 한국 쇼트트랙도 나름의 속사정이 있습니다. 역시 세계 극강의 양궁처럼 내부 경쟁이 국제대회보다 더 치열한 미묘한 분위기가 분명히 있는 겁니다.

    '2관왕 듀오' 한국 여자 쇼트트랙대표팀의 '쌍두마차' 최민정과 심석희는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1000m, 1500m 우승을 나누고 3000m 계주에서는 금메달을 합작했다. (사진=대한체육회 제공)

     

    한국 여자 대표팀은 심석희(20 · 한체대)와 최민정(19 · 성남시청)이 쌍두마차로 이끌고 있습니다. 둘 다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갖춘 선수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서로 경쟁해야 하는 딜레마에 놓여 있습니다.

    심석희는 알려진 대로 2014 소치동계올림픽의 영웅입니다. 여자 3000m 계주에서 마지막 주자로 나서 막판 눈부신 스퍼트로 중국을 따돌리고 한국에 짜릿한 역전 우승을 안긴 주역입니다. 최민정도 마찬가지. 이번 대회 계주에서 최민정은 심석희의 역할을 이어받고 마지막 폭발적인 역주로 중국 궈이한을 제치고 금메달을 안겼습니다.

    하늘 위에 두 개의 태양은 없다고 에이스가 양립하기는 무척 어려운 노릇입니다. 심석희는 소치올림픽을 전후해 한국 대표팀의 에이스로 군림했지만 최근 최민정이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온 상황입니다. 둘은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에서 주거니 받거니 우승을 번갈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번 대회 1500m에서도 둘의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습니다. 심석희가 막판까지 1위를 달려 우승을 눈앞에 뒀지만 최근 근력을 키운 최민정의 폭발적 스퍼트에 금메달을 내줬습니다.

    물론 라이벌 중국을 제치고 한국 선수가 1, 2위를 차지하는 목표는 이뤘지만 심석희는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개인적으로 막판 레이스가 아쉬웠다"는 심석희의 주종목이었기 때문입니다. 173cm의 큰 키에 상대적으로 부족한 순발력 대신 긴 다리로 시원한 질주를 펼치는 심석희의 장점이 돋보이는 종목이었습니다.

    이후 심석희는 1000m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아쉬움을 털어냈습니다. 이번에는 최민정이 2위로 들어오며 심석희와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습니다. 1500m에서처럼 막판 둘의 접전은 사실상 없었다고 봐야 할 겁니다. 이미 금메달을 따낸 최민정이 굳이 경쟁할 필요는 없었겠지요.

    '남자 쇼트트랙의 자존심!' 서이라(가운데)와 신다운(왼쪽)이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쇼트트랙 남자 1000m 경기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나눠 가졌다. (사진=대한체육회 제공)

     

    남자 대표팀에도 미묘한 분위기는 감지됩니다. 특히 여자 선수들과 달리 국위 선양에 대한 병역 혜택이 있는 남자 선수들은 어쩌면 경쟁이 더 치열할 수 있습니다. 올림픽은 메달만 따면 되지만 아시안게임은 그 색깔이 금빛이어야 하는 까닭입니다.

    1000m가 그랬습니다. 서이라(25 · 화성시청)와 신다운(24 · 서울시청) 등 군 복무를 마치지 못한 두 선수는 결승에서 막판 뜨거운 경쟁을 펼쳤습니다. 결국 간발의 차로 서이라가 우승을 차지했지만 크게 기뻐하지는 못했습니다. 서이라는 경기 후 "워낙 접전이어서 사실 우승을 했는지 긴가민가 했다"면서 "병역 혜택을 받는 부분은 정말 감사하지만 옆에 신다운도 있었기 때문에 너무 좋아할 수는 없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신다운 역시 군 복무가 남은 선숩니다. 2014 소치올림픽 당시 대표팀 에이스로 활약했지만 불운이 겹치면서 메달을 수확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박세영(24 · 화성시청)이 1500m, 서이라가 1000m에서 금메달을 따냈지만 신다운은 아쉽게 그 대열에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남자 대표팀은 5000m 계주에서 사력을 다했지만 중국에 밀렸습니다.

    이런저런 속사정들이 있어도 대표팀의 팀 워크에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미묘한 분위기는 어쩔 수 없지만 '세계 최강 한국 쇼트트랙'이라는 대의에는 하나로 똘똘 뭉치는 대표팀입니다.

    심석희는 최민정과 경쟁에 대해 "민정이와 경기를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 경쟁하면서 발전이 될 수 있는 부분이라 서로 좋게 생각한다"면서 "계주에서도 마지막 주자를 맡은 민정이의 부담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해결을 항상 해주고 서로 고마워하고 있다"고 미소를 지었습니다. 3000m 계주에서 빛의 속도로 역전 우승을 이끈 최민정도 같은 마음입니다. "항상 얘기하는 부분이지만 우리 선수가 1, 2위를 하는 목표를 보고 경기를 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며 1000m 결과를 개의치 않았습니다.

    '2관왕의 밝은 웃음'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 여자 쇼트트랙 2관왕에 오른 심석희(왼쪽)와 최민정이 밝은 표정으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삿포로=노컷뉴스)

     

    남자 대표팀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장 이정수(28 · 고양시청)는 "나는 이미 (2관왕을 달성한) 밴쿠버올림픽에서 혜택을 받았지만 후배들의 간절한 마음을 알고 있다"면서 "나는 내년 평창올림픽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후배들을 돕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든든한 맏형의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이정수는 1500m와 1000m에서 중국 등 다른 선수들을 견제하며 후배들의 우승을 도왔습니다.

    서이라도 신다운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서이라는 "계주에서 우승했지만 가장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이어 "1000m 결승에 앞서 누가 우승을 해도 축하해주자고 얘기했다"면서 "내년 평창올림픽이 있기 때문에 가장 큰 대회에서 (신다운이) 큰 일을 해낼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힘을 실어줬습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그들만의 속사정은 있기 마련입니다. 하물며 서로 경쟁을 해야 하는 대표팀이라면 더할 겁니다. 특히 세계 최강이기에 경쟁의 강도는 더욱 뜨거울 겁니다. 쇼트트랙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종목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중요한 것은 이를 어떻게 슬기롭게 해결하느냐입니다. 한국 쇼트트랙은 그동안 '파벌 싸움' 등 갈등도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비 온 뒤에 땅이 굳듯이 한국 쇼트트랙은 우여곡절 끝에 더욱 단단하게 세계 최강의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심석희는 "이번 대회를 통해 내년 평창동계올림픽을 더욱 단단하게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쇼트트랙이 다시 한국 스포츠의 효자 종목임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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