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주축 타자 송광민을 1군에서 제외하는 결단을 내린 한화 한용덕 감독.(사진=한화)
한용덕 한화 감독이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팀의 주축 타자인 송광민(35)을 1군에서 제외했다. 정규리그 3위 확정을 위해 1승이 아쉬운 가운데 내린 조치다.
한 감독은 3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에서 열린 2018 신한은행 마이카 KBO 리그 롯데와 홈 경기를 앞두고 송광민을 1군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송광민은 오는 13일 마무리되는 정규리에서 사실상 더 뛰지 못하고 시즌을 마감하게 됐다.
올해 송광민은 113경기 타율 2할9푼7리 18홈런 79타점을 기록 중이다. 주로 3번 타순을 맡으며 한화의 돌풍에 힘을 보태왔다. 특히 전반기 타율 3할7리 12홈런 57타점을 올리며 팀의 상위권에 큰 역할을 했다.
팀의 주장으로 시즌을 시작할 만큼 코칭스태프의 기대감도 컸다. 한 감독은 송광민이 부상으로 빠져 있던 지난 8월 "송광민 등 부상자들이 아시안게임 휴식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후반기 완전한 전력으로 가을야구에 도전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랬던 송광민을 중요한 시기에 1군에서 빼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한화는 11년 만의 가을야구는 확실하지만 순위는 확정되지 않았다. 3일 현재 2경기 차 4위인 넥센이 호시탐탐 3위를 노린다. 4위는 5위와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르는 까닭에 3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을야구에서 불리하다.
이런 가운데 팀 주축 타자를 뺀 것은 확실하게 팀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서다. 야구계에서는 그동안 한 감독과 송광민 사이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됐다. 팀을 위한 희생을 강조하는 한 감독의 철학 속에 주포지션인 3루 외에 1루도 맡아야 했던 송광민이 다소 힘겨워 했다는 후문이다. 열정을 다하지 않은 플레이에 한 감독이 송광민을 경기 중 다그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지난달 23일 KIA와 홈 경기에서 만루홈런으로 팀 승리를 이끈 송광민이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사진=한화)
송광민의 1군 제외는 비단 올해 가을야구만을 위해서는 아닌 조치다.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지만 향후 몇 년 동안은 확실하게 진행될 팀의 리빌딩을 위한 어쩌면 장기적인 전략일 수 있다. 한창 세대 교체 중인 한화의 고참들과 젊은 선수들에게 주는 강렬한 메시지다.
사실 한화에 올해 가을야구는 뜻밖의 선물이다. 앞선 김응용, 김성근 전 감독 등 명장들을 영입했음에도 포스트시즌(PS)에 나서지 못했던 한화는 한 감독을 후임으로 정하면서 내준 과제는 가을야구는 아니었다. 수백억 원을 들여 선수들을 사오면서 다지지 못한 내실을 탄탄하게 만들어달라는 주문이었다. 한 마디로 팀 재건의 중책을 맡긴 것.
이런 가운데 한화는 이전 감독들과는 다르게 스프링캠프를 활기차게 소화하면서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각성한 고참들과 패기로 뭉친 젊은 선수들이 활약했고, 비싼 몸값의 빅리거들과 달리 가능성을 보고 영입한 재러드 호잉, 키버스 샘슨 등 외인 선수들이 힘을 내주면서 한화는 전반기 2위의 돌풍을 일으켰다. 우승에 도전하는 SK에 살짝 밀려 2위는 어렵지만 3위는 충분히 가능해 2007년 이후 11년 만의 가을야구에 도전하게 됐다.
그렇다고 해도 한화는 현재 우승에 근접한 팀은 아니다. 물론 올해라도 기회가 온다면 잡아야 하지만 한화가 KBO 리그 정상에 걸맞는 전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젊은 선수들의 성장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회가 돌아가야 하는데 고참들과 이를 나눠야 하는 난제가 생긴다.
그동안 한화는 고참 선수들의 비중이 컸다. 당장의 성과를 내야 했던 전임 감독들로서는 검증된 선수들을 우선 기용했고, 상대적으로 젊은 선수들이 소외됐다. 사실 그 전부터도 고참들의 입김이 셌던 한화는 이런 기조가 더욱 공고해졌다. 리빌딩을 노리는 한화는 이런 분위기를 과감하게 바꾸는 작업이 필요했다.
올해 자신의 포지션인 2루를 떠나 외야, 1루수로 옮겨가면서도 제 역할을 해주고 있는 한화 정근우.(사진=한화)
물론 한 감독은 고참들을 존중하고 적소에 중용하려는 지도자다. 본인도 17시즌 동안 활약했던 만큼 김태균, 정근우, 이성열 등 베테랑들을 배려한다. 한 감독은 "팀내 야구 지능이 높은 선수는 정근우"라며 힘을 실어준다. 이성열 역시 한 감독의 배려 속에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고 있다.
자연스러운 세대 교체를 시도하고 있다. 국가대표 2루수 정근우를 외야, 1루로 돌리고 정은원 등 젊은 선수들을 기용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근우는 이를 받아들이고 맹타를 휘두르며 고참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고참을 존중하고 선수를 키우는 등 일석이조다.
그렇다고 고참들에 휘둘리는 한 감독은 또 아니다. 존중하지만 팀 분위기를 해친다면 내칠 수도 있다는 확고한 의지를 이번에 비쳤다. 송광민은 올해 가을야구 엔트리에서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감독은 이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올해만 승부를 건다면 결코 내릴 수 있는 결단은 아니다.
과연 한 감독과 한화의 결정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올해 가을야구는 물론 아니라 내년, 내후년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