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15일 오전 송파구 방이동 서울올핌픽파크텔에서 열린 이사회에 참석해 최근 불거진 체육계 (성)폭력 문제에 고개를 숙여 사과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방송 : CBS라디오 <임미현의 아침뉴스="">
■ 채널 : 표준 FM 98.1 (07:00~07:30)
■ 진행 : 임미현 앵커
■ 코너 : CBS 체육부의 <쓰담쓰담>
◇ 임미현 > 매주 금요일에는 스포츠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눠보는 스담쓰담 코너가 진행됩니다. 체육부 박세운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박 기자.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 임미현 > 체육계의 성폭력 실태가 이 정도였나, 충격적인 소식이 한주동안 계속 쏟아졌습니다.
네. 심석희 선수의 용기있는 고백으로 조재범 전 코치의 성폭행 의혹이 알려지면서 체육계 미투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전직 유도선수 신유용 씨가 고교 시절 지도자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구요. 태권도협회 전직 임원과 고등학교 정구 종목의 지도자가 선수를 성폭행했다는 의혹도 불거졌습니다.
◇ 임미현 > 스승과 제자로 불리는 지도자와 선수 관계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데요.
체육계에서는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이 주를 이룹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고 심지어 일부는 알고 있었지만 '쉬쉬' 하고 넘어가다가 피해자들만 늘었습니다. 우리나라 체육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쌓인 심각한 폐단인데요.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첫 수석 보좌관 회의에서 체육계의 구조를 개선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시스템에서 비롯된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했습니다. 직접 들어보시죠.
( 문재인 대통령 "체육 분야의 성적 지상주의와 엘리트 체육 위주의 육성 방식에 대해서도 전면적으로 재검토되고 개선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 임미현 > 성적 지상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은 예전부터 있었잖아요?
올림픽 기간에 꼭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금메달 결정전에서 패한 선수가, 혹은 아깝게 메달을 놓친 선수가 국민을 언급하며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는 장면을 본 적 있으실 겁니다.
◇ 임미현 > 많이 봤습니다. 너무 열심히 했고 잘했는데 왜 사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세계 2등이잖아요? 올림픽에 아무나 나갑니까? 그런데 선수들은 미안해 합니다. 엘리트 체육과 성적 지상주의에 사로잡혔던 옛 세대로부터 그렇게 배운 겁니다.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그건 잘못된 것이라고 배운 겁니다.
◇ 임미현 > 구체적으로 엘리트 체육의 육성 방식은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나요
오랜 합숙 그리고 특정 지도자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도제식의 훈련 시스템, 여기서 파생되는 부작용이 너무 많습니다. 합숙 시설은 지나치게 폐쇄적입니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밖에서 알기가 어렵습니다. 선수들은 지도자의 부당한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일반적으로 엘리트 체육 구조 아래에서는 어린 나이에 스케이트화를 신으면 평생 스케이트 선수로 삽니다. 성공을 위해 온갖 억압을 참고 버팁니다. 협회 임원이나 지도자들은 그런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나쁜 짓을 해도 침묵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렇게 선수 생활을 해왔거든요.
◇ 임미현 > 그래서 침묵의 카르텔을 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지요?
우리 체육계는 그동안 너무 덮으려고만 했어요. 전직 유도선수 신유용 씨가 미투 폭로에 나선 건 작년이었습니다. SNS에 폭로 글을 올렸고 주위 동료들이 그 글을 공유했는데, 유도계 선배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신유용 씨의 말을 직접 들어보시죠.
(전직 유도선수 신유용 "너 그걸 왜 공유해. 그게 유도계 이미지를 다 훼손시키는 일이다라고 이야기를 해서 글을 내렸다고")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위로하는 게 아니라, 종목과 단체의 이미지에 더 신경을 쓴다는 겁니다. 이건 분명 정상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 임미현 > 구조적인 문제점이 심각해 보이는데요. 체육계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 모두 대책안을 내놓았는데요. 특히 대한체육회의 입장에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지난 15일 이사회에 앞서 공식 입장을 밝혔습니다. 합숙소에 CCTV를 늘리겠다, 선수촌에 여성 부촌장을 고용하겠다, 성폭력 조사를 전적으로 외부 기관에 맡기겠다 등등 다양한 쇄신안을 발표했습니다.
◇ 임미현 > 대책의 실효성 여부도 중요하지만 실행 의지가 더 중요하잖아요.
이사회가 열린 날, 고개를 갸우뚱 거리게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기흥 회장을 회의장 앞 복도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취재진은 100명 가까이 됐고 이기흥 회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민단체는 앞에서 침묵 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 임미현 > 일종의 포토라인이었군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기흥 회장이 일반적인 루트가 아닌, 밖으로 연결된 출입구 방향에서 갑자기 등장했습니다. 포토라인을 피해 회의장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순간 복도가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굳이 그렇게까지 피해서 등장할 필요가 있었나?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이기흥 회장은 현장을 찾은 시민단체에 눈길 한번 주지 않았습니다. 이사회 이후 쏟아지는 질문에도 일절 응답하지 않고 황급히 자리를 떠났습니다. 책임을 지고 이번 사태를 해결해야 할 체육회의 수장이, 사안이 중대한데도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 임미현 > 체육계의 폭력과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대한체육회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체육계 내부 깊숙한 곳부터 변해야 합니다. 대한체육회가 그 역할을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릇된 온정주의를 타파해야만 합니다. 성적 지상주의와 온정주의가 결합된 대표적 사례가 전명규 전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을 둘러싼 논란일 것입니다. 대표팀을 맡으면 성적만큼은 확실히 내니까 강력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고, 최근에는 선수들의 폭로를 막기 위해 관계자들을 압박했다는 의혹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대책안은 이미 마련됐습니다. 아까 말씀해주신 것처럼, 지금부터는 얼마나 강한 실행 의지를 보이느냐가 관건입니다.
젊은빙상인연대는 다음주 2명의 성폭행 피해 사실을 추가 폭로한다고 밝혔습니다. 외부 기관을 통해 철저히 파헤쳐서 가해자가 드러날 경우 엄중 처벌해야 합니다. 더 이상 제 식구 감싸기는 안됩니다.
더 나아가 이제는 지도자와 선수부터 모두가 성적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스포츠를 즐기는 문화가 정착돼야 할 것입니다. 올림픽만 되면 나오는 예상 메달수, 예상 순위, 이런 것도 그만 보게 되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