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회 청룡봉사상 시상식 현장. (사진=자료사진)
청룡봉사상을 둘러싼 폐지 여론이 비등한 가운데서도 민갑룡 경찰청장이 고심 끝 '시상 강행' 방침을 세운 데에는 조선일보 측의 반발이 주요 원인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이 이 상을 유지할지 여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조선일보 측과 접촉했고, 이 때 전달받은 '폐지 반대' 입장이 이번 강행 결론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설명이 경찰 고위 간부의 입에서 나왔다.
조선일보가 수사기관인 경찰의 특진 인사를 심사·결정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각계 여론은 외면한 채 유력 언론의 눈치를 본 셈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검경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경찰을 신뢰할 수 있느냐는 물음표도 더욱 커질 전망이다.
◇ 경찰 간부가 밝힌 청룡봉사상 유지 배경…'조선일보 반발 외면 못해'경찰청은 최근 2주 동안 이 상의 존폐 여부를 놓고 내부 논의를 이어왔다. 당초 올해도 조선일보와 시상식을 강행하기로 했다가 CBS 연속보도로 각종 논란이 불거지자 민 청장에게 해당 사안이 보고됐고, 재검토에 착수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특진 후보자 추천 마감일인 지난 3일에서야 경찰이 뒤늦게 내린 잠정 결론은 '포상 강행'이었다. 일부 개선책을 마련하긴 했지만, 결국 최종 특진자를 선정하는 본 심사는 예전처럼 조선일보 인사들과 함께 진행하기로 해 '무늬만 개선'이라는 지적이다.
이 상을 유지할 경우 유력 언론사의 영향력 하에 경찰이 종속되길 자처하는 것이라는 비판까지 나왔지만, 폐지는커녕 유착 우려를 낳는 핵심 심사과정조차 거의 손을 못 댄 셈이다.
내부 논의 과정을 잘 아는 한 경찰 간부는 이런 결론이 도출된 이유를 묻자 "조선일보 측은 경찰이 아닌 다른 공무원도 언론사들과 함께 (승진 관련) 합동심사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왜 우리만 합동심사에서 배제하느냐는 입장이었다"고 밝혔다. 실무접촉 과정에서 있었던 조선일보의 반발을 외면할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경찰은 수사기관이기 때문에 언론사가 특진 심사를 할 경우 유착 우려가 특히 클 수밖에 없다는 각계 지적을 조선일보 측에 전달했느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협의 과정에 대한 부분은 말하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 민갑룡, 지난해 청룡봉사상 심사위원 활동…각계 비판여론 '봇물'경찰 자체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제도를 개선하는 과정에서조차 유력언론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취지의 내부 증언이 나온 가운데, 민 청장 본인의 이력도 이번 청룡봉사상 유지 결론을 내리는 데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민 청장은 작년 경찰청 차장이었을 때 조선일보 편집국장 등과 '제 52회 청룡봉사상'의 공동심사위원으로 활동했었다. 민 청장 본인이 참여했던 상인만큼, 문제점을 인정하고 적극 개선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민 청장은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뒤 약 4개월 만에 경찰청장 신분으로 참석한 국회 국정감사장에서도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으로부터 경찰특진제와 청룡봉사상은 분리돼야 한다는 취지의 지적을 들었다. 이에 민 청장은 "개선방안을 검토해 보고 하겠다"고 했었다.
그럼에도 '조선일보와 특진 공동심사'라는 큰 틀을 유지한 채 경찰이 포상 강행 쪽으로 가닥을 잡자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비판이 나왔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여당 간사인 홍 의원은 8일 통화에서 "이런 결론에 대해 국민이 얼마나 동의할지 경찰도 스스로 한 번 판단해 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같은 위원회 소속 민주당 강창일 의원도 "여론이 들끓는데도 불구하고 상을 지속한다는 민갑룡 청장의 결정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해 나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의당도 폐습 청산을 촉구했다. 최석 대변인은 지난 7일 브리핑에서 "경찰이 언론이 자행해온 경찰 길들이기가 좋다고 맞장구친 것이 아니라면, 경찰은 오해의 소지를 최소화하고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국민들은 청룡봉사상에서 말하는 봉사가 누구를 위한 봉사였는지 경찰에 묻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폐습은 과감히 청산해야지, 관례라는 이름으로 고집할 일이 아니다"라며 청룡봉사상 폐지 필요성을 강조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온 '청룡봉사상 시상에 따른 경찰 특진제 폐지' 청원글도 경찰의 내부 방침이 알려진 뒤 동의자 수가 3배 가까이 늘어 8일 현재 2만4600여 명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