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5촌 조카 조범동씨는 신용불량 상태에서 자기 돈도 들이지 않고 시가총액 300억원대 코스닥 상장사의 총괄대표가 됐다. 검찰은 조씨가 조 전 장관의 조카라는 점을 여러 측면에서 활용한 것은 물론이고, 실제로 조 전 장관 가족의 투자금이 이러한 무자본 M&A의 밑바탕이 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지난 6일 조씨 재판에 나온 증인들의 법정 증언을 토대로 조씨가 어떻게 이러한 일을 벌일 수 있었는지 짚어봤다.
◇ 신용불량 조범동, 명의 빌리고 전문가 동원해 회사 설립보험회사 영업사원인 A씨는 친구인 이모씨(익성 부사장)의 소개로 2015년 조씨를 처음 만났다. 조씨는 자신이 소송에 연루된 건이 있어 본인 이름으로 사업을 하기 어렵다며 A씨에게 새로 만들 회사의 최대주주 자리를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A씨는 "조씨가 '나중에 잘 되면 챙겨주겠다고 했다'"며 "저도 영업을 하고 있으니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해서 이름을 빌려주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게 설립된 회사가 자본금 1억원의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PE)다.
2016년 2월 조씨는 자신의 부인 계좌를 이용해 A씨의 부인 계좌로 8500만원을 송금했다. 자신들의 계좌를 사용하면 "보인다(드러난다)"는 이유에서다. A씨는 조씨에게 받은 돈으로 코링크PE 자본금 중 85%를 댄 최대주주가 됐다.
실제 회사 설립 작업을 진행한 것은 이씨가 소개한 또 다른 지인 성모씨였다. 성씨는 중형 증권사에서 부동산PF 부문 임원을 맡아왔다. 성씨는 조씨가 중국에서 큰 투자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나 다른 사업적 아이디어들을 들은 후 코링크PE에 합류했다.
금융업계에서는 신분이 안정된 셈이었던 성씨가 코링크PE 법인 설립이나 통장 개설 등 초기 실무를 도맡았다. 성씨 역시 조씨가 신용불량이라서가 아니라 소송에 걸려 있어 직접 회사 등기부등본에 등재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들었다.
코링크PE의 공식 서류 어디에서도 조씨를 찾아볼 수 없었지만 A씨와 성씨 모두 조씨가 코링크PE의 대표라고 증언했다. 조씨는 실제 코링크PE 사무실에서도 가장 넓고 좋은 방을 썼고 직원들 사이에서도 '총괄대표'로 통했다.
◇ 사채돈으로 지분 사고 회사 건물 담보로 현금 마련코링크PE를 세운 후 조씨는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로부터 약 14억원의 투자금을 받았다. 그리고 이 돈과 '조국 일가의 투자'라는 타이틀을 기반 삼아 상장사 인수를 위한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그 중 성공한 사례인 코스닥 상장사 더블유에프엠(WFM) 인수를 보면, 2017년 10월 코링크PE는 자기자금 50억원으로 WFM 주식 100만주를 장외매수했다는 공시를 한다. 그러나 50억원 중 25억원은 익성에서 임의로 인출해온 돈이었고 나머지는 사채 빚이었다.
증인으로 나온 WFM 재무이사 배모씨(당시 재무팀장)는 "코링크PE가 자체적으로 보유한 돈으로 산 것이라고만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새로운 인수자가 차입금 없이 자기자금으로만 회사의 지분을 매입하는 것은 주가에 호재로 작용한다. 실제 2017년 10월 4800원 선이었던 WFM 주가는 코링크PE가 지분 매입을 완료한 2018년 1월 6450원까지 올랐다.
또 조씨는 WFM이 현금 마련을 위한 전환사채 발행에 어려움을 겪자 사채업자들에게 회사의 부동산을 담보로 내어주기도 했다. 이러한 정황도 공시에는 전혀 기재되지 않았고, 오히려 WFM의 이차전지 사업이 유망해 전환사채 발행에 투자자가 몰린 것으로 포장했다.
배씨 역시 "일반적인 자금과 관련한 보고는 코링크PE의 이상훈 대표에게 했지만 중요한 업무나 인수합병에 관한 부분은 조씨에게 직접 보고하고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정 교수에게 투자금을 받을 때 원금과 이자까지 보장했던 조씨는 WFM에서 13억원을 마음대로 빌려 조 전 장관 일가에 대한 원금 변제에 사용한 혐의도 받는다. 배씨는 "회사에서 금전을 대여할 때 담보 확보 절차 등은 없었다"며 "담보가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따로 답변이 없었다"고 말했다.
◇ 조범동-익성의 합작인가, 조범동-정경심의 판인가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23일 사모펀드 의혹 등에 관한 혐의로 청구된 구속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조씨 측은 대부분의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과정을 조씨 혼자 주도한 것이 아니라 익성 부사장인 이씨 등과 함께한 것이어서 자신만 책임지는 것은 가혹하다는 취지로 변론하고 있다.
조씨 측 변호인은 "익성이 자금은 직접 사용하지 않으면서 사실상의 자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투자를 진행하려 것"이라며 "코링크PE 내 최종 의사결정권자도 조씨가 아니라 이씨"라고 주장했다.
반면 검찰은 2016년 코링크PE 설립 초기 정경심 교수와 조씨가 투자에 관한 대화를 나눈 메시지들을 공개하며 조씨와 정 교수가 각종 위법행위에 함께 가담했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2016년 8월 정 교수는 조씨에게 "혹시 좋은 투자상품이 또 있는지요? 만나서 상담을 좀 해야겠어요"라고 묻고, 9월에는 코링크PE가 있던 서울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날 약속을 잡기도 했다.
검찰은 "조씨와 이씨가 사업상 협력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실질적인 운영자는 조씨"라며 "조씨에 대한 공소사실 자체는 달라질 것이 없다"고 말했다. 조씨가 당시 민정수석이던 조 전 장관의 영향력을 동업자나 투자자들에게 과시하며 사업 참여를 회유한 점 등도 강조했다.
한편 이들의 '판'에 자발적으로 이용당한 A씨와 성씨 등은 증인신문 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A씨는 "정말 부끄럽지만 검찰 조사를 받고나서야 제가 외제차량 리스계약에 연대보증을 섰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며 "조씨와 이 대표가 사인을 하라고 해서 잘 보지도 않고 사인을 했었다"고 토로했다.
성씨 역시 코링크PE에서 일한 후 급격히 줄어든 보수와 투자금 손실 등으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