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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북한

    연락사무소 폭파 이전에 신뢰가 무너졌다

    북한, 쌓인 불만 험한 말폭탄과 개성 연락사무소 폭파, 군사합의 파기로 표출
    영변 핵시설 폐기 약속.미군 유해 송환.풍계리 폭파 등에도 상응조치 못얻어
    "남한 믿고 영변 내놨는데 미국서 문전박대"...한미워킹그룹, 남북협력사업 통제
    판문점 선언 첫항은 '민족 자주 원칙' 文대통령도 뒤늦게 "남북이 한반도 주인"

    폭파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사진=연합뉴스)

     

    남북화해의 상징이, 폭파라는 상징적인 방법으로 무너졌다.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지난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의 성과를 압축한 상징이었는데, 북한이 2008년 영변 원자로 냉각탑, 10년 후 풍계리 실험장 등 국제 사회에 비핵화 노력을 각인시킬 때 썼던 것과 같은 방법인 '폭파'를 통해 파괴했다.

    북한이 내부 핵시설 폭파로 과감한 결단과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면, 남북 정상 간 합의로 만들어낸 상징물을 폭파하면서는 내면의 깊숙한 분노를 과격하게 표출했다.

    북한은 이어 비무장지대 GP(감시초소)를 복원하고, 서해북방한계선(NLL) 일대 등에서 군사훈련을 제재하겠다고 밝히면서 사실상 9.19 군사합의 파기를 선언했다.

    북한은 도발을 예고하고 바로 실행하면서 군사적 행동 등 갈수록 수위를 높일 수 있다는 우려다.

    남북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한 지난 2년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졌다. 북한은 왜 갑자기 입에 담기 어려운 험담을 쏟아내는 '몰상식'하고 '예의 없는' 모습으로 돌아섰을까.

    ◇김정은 전례 없는 파격행보…기대만큼 컸던 실망감

    평양정상회담 사흘째인 2018년 9월 20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 정상인 장군봉에 올라 손을 맞잡아 들어올리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지난 2018년 남북 정상은 4.27 남북정상회담을 시작으로 4번(남북미 정상 판문점회동 포함)이나, 북미 정상은 3번을 만났다.

    어느 때보다 한반도 평화분위기는 무르익었고, 남북은 적대적 행위 전면 중지를 선언하고, 강원도철원 지역의 GP를 철거하는 등 군사적 긴장감을 낮추려는 애를 써왔다.

    2년 전 핵실험을 진행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5형을 발사하는 등 군사력 강화에 집중했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이 연출된 것이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3차 정상회담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시민 15만명을 향해 연설을 하도록 자리를 마련해주는 파격행보를 보였다.

    이를 놓고 "북한이 안방을 개방했다", "남북 관계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만났다"며 한껏 고무된 평가가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북한이 그동안 고수해온 '경제-핵 병진'에서 '경제-비핵화'로 획기적으로 노선 전환을 한 행보였기 때문이다. 북한 '최고존엄'의 결정이기 때문에 북한이 행적을 쉽게 되돌릴수 없을 것이라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북한은 여기에 더해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이뤄진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영변 핵 시설의 영구적 폐기 의사를 밝혔다. 전문가들은 '북한 핵개발의 심장'으로 불리는 영변 핵시설이 북핵 전체에서 5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앞서 같은 해 5월 24일 북한이 풍계리 실험장을 시범폭파한 것도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국제사회에 보여주려는 노력이었다.

    아울러 북한은 미국인 전쟁 포로 유골을 송환하겠다는 약속을 지켜 실제 유해 50여구를 미국에 보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하지만 지난해 2월27일 2차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회담이 아무런 합의없이 끝나면서 기류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한 달도 안 돼 북한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철수를 통보하고, 신형전술 유도 무기를 발사했고, 10여 차례의 단거리 탄도 미사일을 발사 시험을 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대한 경고가 아니고 그것들은 단거리 미사일이며 매우 일반적인 미사일"이라며 의미를 축소했다. 북한이 보낸 불만의 신호를 애써 무시한 셈이다.

    북한은 모험에 가까운 노선 변화에도 아무 경제제재도 풀지 못했다. 정상국가에 합류해 경제를 살리려 했던 김 위원장의 목표는 사실상 실패하고 만 것이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의 대가로 2017년 이후 추가된 유엔 대북제재 5건의 해제를 미국에 요구지만 거절당했다. 특히 마지막으로 이뤄진 유엔 결의 2397호는 북한산 식품과 농산물 등 수출을 금지해 경제적으로 적지 않은 타격을 줬다.

    ◇다시 흔들리는 '한반도 평화'...누구의 잘못인가

    남북화해라는 공든 탑이 뿌리째 흔들리게 된 책임은 어디에 있을까. 북한은 지금의 상황악화를 남한 탓으로 돌리고 있다.

    북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17일 담화를 통해 "지난 2년간 남조선 당국은 민족자주가 아니라 북남 관계와 조미(북-미) 관계의 '선순환' 이라는 엉뚱한 정책에 매진해 왔고 뒤늦게나마 '운신의 폭을 넓히겠다'고 흰목을 뽑아들 때에조차 '제재의 틀 안에서'라는 전제조건을 절대적으로 덧붙여 왔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대북제재와 관련한 한미 협의기구인 '한미워킹그룹'을 꼭 집어 "사사건건 북남 관계의 모든 문제를 백악관에 섬겨 바쳐 온 것이 오늘의 참혹한 후과"고 날선 비판을 했다.

    (사진=연합뉴스)

     

    북한의 이런 주장은 4.27판문점 선언의 1조1항을 근거로 한 것이다. 여기에는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6.15선언 20주년을 맞아 "한반도 운명을 주인답게 남과 북이 스스로 결정하고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찾고 실천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한 것도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 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대북사업마다 미국은 번번이 속도조절론을 내세웠고, 대북제재와 남북협력 등을 조율하기 위한 한미워킹그룹을 통해 이를 관철시켰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이 미국이 장착한 내비게이션을 보고 방향을 따라가는 그야말로 운전만 하는 '운전기사론'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북미 정상도 1차 회담에서 새로운 양국 관계 수립, 판문점 선언 재확인 등을 담은 합의문을 도출했지만, 실질적인 실천은 담보하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진지한 대화보다는 이를 국내 정치에 활용한 측면이 강했다.

    존 볼턴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23일 발간 예정인 '그 일이 있었던 방: 백악관 회고록'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내게 실질적 내용은 없는 공동성명에 서명할 준비가 됐다고 했고, 기자회견에서 승리를 선언한 뒤 도시를 떠났다"라고 밝혔다.

    작년 6월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 장면 (사진=연합뉴스)

     

    한반도 정세가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다시 접어들면서 대북정책의 틀을 다시 짜야 할 상황이 왔다.

    참여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동영 전 의원은 "북한이 남한의 설득으로 9.19군사합의 때 영변핵 시설폐기를 내놨지만, 우리가 미국을 설득해서 상응조치를 만들어 냈어야 했는데 못했다"면서 "한미워킹그룹을 수용하도록 조언한 참모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남북 관계는 주권 사항인데 지금은 너무 미국 눈치를 본다"라며 "참여정부때 정상회담을 하거나 개성공단을 추진하면서 미리 미국의 결재를 받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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