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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

    "죽을까봐 무섭다" 이주노동자들의 절규

    [고용허가제에 갇힌 코리아드림①]
    햇빛도 창문도 없는 '비닐하우스 가건물'서 거주
    얼음장 같은 방바닥, 수돗가는 빙판…방 옆엔 가스통
    재래식 공용화장실·농약 악취 노출…무정자증 걸리기도
    문만 열면 일터, 임금·노동시간은 고용주 마음대로

    최근 경기도 포천에서 한파 속 비닐하우스에서 지내던 캄보디아 여성이 세상을 떠났다. 이와 관련해 국내 이주노동자들의 부당한 노동 조건과 거주시설이 집중 조명되고 있다. 노동계와 시민단체들은 이 같은 현실의 원인으로 '고용허가제'를 지목한다. CBS노컷뉴스는 2차례에 걸쳐 고용주의 막강한 권한 아래 있는 이주노동자의 생활 실태를 살피고, 그들의 삶을 옥죄는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죽을까봐 무섭다" 이주노동자들의 절규
    (계속)

    지난 6일 경기도 외곽의 한 농장에 있는 비닐하우스에 눈발이 날리고 있다. 차양막으로 덮인 이곳에 이주노동자들이 산다. 이날 수도권 지역에는 한파와 폭설이 몰아쳤다.(사진=박창주 기자)

     

    "추워요. 화장실도 없어요. 일은 너무 힘든데 사장님은 무서워요. 제발 도와주세요."

    ◇햇빛도 창문도 없는 '비닐하우스 가건물' 거주

    캄보디아 스무살 청년 A씨는 2년 전 홀로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한국에 왔다. 그는 고용센터에서 지정해 준 경기도의 한 채소농장에서 일하고 있다. 비닐하우스 50여동 규모다.

    영하의 날씨가 맹위를 떨치던 지난 6일 일을 마친 A씨는 장비를 실은 수레를 끌고 숙소로 향했다. 검은 차양막으로 덮인 비닐하우스다. 일터에서 숙소까지의 거리는 단 30초. 숙소 입구에는 CCTV가 달려 있다. 농장주가 언제든지 A씨의 출입을 확인할 수 있는 구조다.

    A씨 숙소에 먹을 것이라고는 김밥 두줄과 먹다 남은 빵조각, 음료수와 우유가 전부다. 냉장고 옆에 있는 전열기는 스위치 등 하체가 완전히 부서졌는데도 전원이 켜져 있다.(사진=박창주 기자)

     

    비닐하우스 안 3평 남짓한 샌드위치패널 가건물에 그의 방이 있다. 창문도 없는 이 가건물에는 A씨를 비롯해 남녀 이주노동자들이 방을 쪼개 산다.

    숙소인 동시에 창고여서 비닐하우스는 농기구와 잡동사니, 버려진 기름통들로 어지럽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탓에 가건물 밖에 널어놓은 빨래는 늘 눅눅하다. 하얀 옷에 거뭇한 곰팡이도 보인다.

    A씨 방에는 샤워실이 없다. 대신 방 입구에 지하수가 나오는 수돗가가 유일한 세면대다. 수도꼭지 주위엔 얼음이 꽁꽁 얼어붙었다. 비닐하우스 안의 온도계가 영하 3도를 가리킨다. 찬물 세수를 피하려면 옆방 여성노동자들이 사용하는 샤워실을 써야 한다.

    방문 앞에는 지하수가 나오는 수전이 설치돼 있다. 영하의 날씨에 수도꼭지 주변은 꽁꽁 얼어붙은 상태다. 이곳에서 매일 아침 찬물 세수를 한다.(사진=박창주 기자)

     

    보일러도 없다. A씨는 오래된 전기장판과 찢어지고 얼룩진 이불, 다 부서진 온열기로 겨울을 버틴다. 지난달 차디찬 비닐하우스 안에서 세상을 떠난 캄보디아 여성 속헹(Sokkeng)씨가 지냈던 비닐하우스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임금·노동시간은 고용주 마음대로

    A씨의 일과는 여름엔 아침 7시에 시작해 오후 7시에 끝난다. 겨울에는 2시간 일찍 퇴근한다. 때때로 농장주가 잔업을 요구하면 두서너 시간 더 일하기도 한다. 그래도 A씨의 월급은 늘 160만원 남짓. 최저임금에도 못 미친다.

    혹시 월급에서 숙박비와 건강보험료 등이 공제되는 건지 알고 싶지만, 농장주는 알려주지 않는다. 농장주는 캄보디아 말을 아예 못하고 A씨는 한국말에 서툴러서다.

    그는 늘 식사를 숙소에서 한다. 농장주가 식사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A씨는 따로 음식을 조리 하진 않는다. 식사시간은 고된 일을 한 뒤 찾아오는 유일한 쉬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A씨의 냉장고에는 며칠 전 이주노동자 인권운동단체가 주고 간 김밥 두 줄과 먹다 남은 빵 조각이 있다. 그의 주된 식사 메뉴다. 간혹 컵라면을 먹기도 한다.

    방에 있는 가스레인지는 물을 끓이는 것 외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일에 지치고 요리를 할 여유가 없거니와 좁은 방에서는 냄새가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의 방 안에 설치된 가스레인지 밸브에 전기코드를 꽂은 콘센트들이 위태롭게 걸려 있다. 가스밸브는 열린 상태였다.(사진=박창주 기자)

     

    가스통이 가건물 바로 옆에 붙어 위험한 것도 A씨가 자주 요리를 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다. 찌든 때가 잔뜩 낀 가스레인지 주변에 붙은 끈끈이에는 바퀴벌레 수십마리가 매달려 있다.

    쉼 없는 밭일에 여유가 없었던 탓인지 A씨의 달력은 '2020년 1월'에 멈춰있다.

    그럼에도 그는 "괜찮다"고 했다. 한 달에 이틀의 휴일이 있을 거라는 약속과 달리 농장주가 정해주는 대로 쉬어도 괜찮다는 A씨. 아파서 병원에 가고 싶지만 말이 안 통하는 데다 치료비도 부담돼 고향에서 갖고 온 비상약으로 겨우 버틴다고 하면서도 "괜찮다"고 말했다.

    지난달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잠을 자다 숨진 캄보디아 여성 속헹씨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A씨는 자신 역시 가족들도 없는 한국에서 죽게될까봐 "무섭다"고 했다. 그의 세평 남짓한 방엔 낡은 온열기구와 얼룩지고 찢어진 전기장판이 놓여 있다. 해가 바뀌었지만 벽에 붙은 달력은 아직 2020년 1월에 멈춰있다.(사진=박창주 기자)

     

    그러나 속헹씨 얘기를 꺼내자 처음으로 "무섭다"는 말이 나왔다. 그는 타국에서 혼자 살면서 힘들게 일하다가 가족도 없는 이곳에서 죽게 될까봐 두렵다고 했다. A씨는 잠시 후 "사장이 이런 말을 한 걸 알면 안 된다"면서도 "농장을 옮길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재래식 공용화장실·농약 악취 노출…무정자증 걸리기도

    다른 농장에서 일하는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B씨도 비닐하우스 안 컨테이너에서 산다. 다행히 B씨의 숙소에는 보일러와 에어컨이 작동하지만, 비나 눈이 오면 천장에서 물이 샌다.

    B씨가 사는 비닐하우스 안 컨테이너 방 가운데 한곳에는 농약들이 보관돼 있다. 문 앞에도 농약병들이 방치돼 있었다. 특히 무더위에 문을 자주 여는 여름에는 독한 농약 냄새가 진동을 한다고 했다. 그는 악취 때문에 두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동료 중엔 장기간 농약에 노출돼 무정자증에 걸린 경우도 있다.(사진=박창주 기자)

     

    B씨의 숙소에는 특유의 냄새가 난다. 이날도 저녁 식사인 카레 냄새를 뚫고 매캐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B씨는 농약보관함과 화장실을 가리켰다.

    그는 공동화장실을 사용한다. 커다란 통에 네모난 구멍을 뚫어놓은 재래식 화장실. 애초 가건물이 불법건축물이니 여느 화장실처럼 정화조를 설치할 수 없어 임시방편으로 만든 것이다.

    여기에 숙소 내 농약창고에서 나는 독한 냄새와 빗물이 샐 정도로 낡은 컨테이너 특유의 향까지 더해져 숙소에 잠시만 머물러도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다. B씨는 이곳에서 3년 넘게 살았다. 무엇보다 독한 농약에 노출되는 게 가장 두렵다. 실제 지난해 장기간 농약에 노출된 이주노동자가 병원에서 무정자증 판정을 받은 사례도 있다.

    B씨가 생활하는 숙소의 화장실은 비닐하우스 밖에 있다. 커다란 통에 구멍 뚫린 나무판자를 올려 화장실로 사용한다.(사진=박창주 기자)

     

    이런 숙소에 머물면서 B씨가 농장주에게 지불하는 숙박비는 월 20만원. 시간제로 일하는 B씨의 지난해 시급은 법정 최저임금인 8590원이었다. 일하는 시간만큼만 벌기 때문에 매달 급여가 다르다. B씨는 지난여름 농번기에는 최대 220만원을, 겨울에는 최소 120만원을 받았다.

    고용노동부의 '외국인 근로자 숙식정보 제공 및 비용징수 관련 업무지침'에 따라 이주노동자에게 식사 제공 없이 비닐하우스나 판넬, 컨테이너 등 임시 주거시설만 제공할 경우 농장주는 통상임금의 최대 8%까지만 숙소비를 징수할 수 있다. 결국 B씨의 숙박비는 농번기를 제외하고 과다 계산된 것이다.

    B씨는 "사장이 화를 자주 내고 주말 없이 계속 일만 시킨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지만 사장이 (고용 계약 만료) 서명을 안 해주면 옮길 수 없다"며 "사장의 서명 없이 농장을 옮기려면 불법 사람(체류자)이 될 수밖에 없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이주노동자 옥죄는 '고용허가제' 폐지해야"

    경기도 외곽의 한 채소농장 비닐하우스 안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밭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사진=박창주 기자)

     

    경기도 포천의 한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속헹씨의 사연이 알려지자 국내 농촌지역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주거환경과 불공정한 노동조건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하지만 제2의 속헹씨 사례는 다른 농장에서도 언제든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이러한 문제의 배경에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을 제한하는 '고용허가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현행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가 입국한 뒤 사업장을 옮기는 것을 엄격히 제한다. 이주노동자의 이직은 전적으로 사용자의 의사에 달렸다.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사업장을 옮길 수 있는 방법은 △사용자가 고용계약이 만료된 이주노동자와의 재고용을 원하지 않을 경우 △사업장이 휴·폐업하거나 고용허가가 취소된 경우 △사용자의 근로조건 위반이 있을 경우 등 세 가지 뿐이다.

    이 외에 사용자의 승인 없이 이주노동자의 이직은 불가능하다. 이를 어길 경우 즉각 불법체류자 신분이 되거나 국외로 추방된다. 이주노동자의 운명이 고용주 손에 달린 셈이다.

    이처럼 고용주의 권한이 막강하다보니 부당 노동이나 임금 체불, 열악한 거주시설 제공 등의 횡포를 당해도 이주노동자는 '사장 눈치'만 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정부가 침실·세면장·화장실·잠금장치·소방시설 등 12가지의 이주노동자 숙소시설 기준을 마련했지만 이를 지키려는 고용주가 드문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6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농·어업 외국인노동자 주거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9∼11월 국내 이주노동자의 70%가량이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나 조립식 건축물 등에서 지내고 있다고 응답했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김달성 대표(목사)는 "일손이 부족한 농가가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하면서 정작 그들의 기초적인 삶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고 있다"며 "제2의 속헹 사망사건이 나오지 않도록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현실에 맞는 제도를 마련해야 된다"고 말했다.

    [영상편집 박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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