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지난해 10월 경기에 출전한 이다영(왼쪽)과 이재영. 연합뉴스
프로 배구계에 '학폭 미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여자 프로배구 흥국생명의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에 이어 남자 프로배구 OK 금융그룹 송명근, 심경섭.
이번에는 KB 손해보험 이상열 감독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한국전력 박철우가 12년 전 폭행 가해자였던 이 감독을 작심한 듯 공개 비판하면서다.
박철우는 이 감독의 폭행으로 기절하고 심지어 고막이 나간 선수도 있다고 폭로했다.
어릴 적 부모님 앞에서 맞은 적이 있을 정도로 운동선수가 맞는 것은 당연했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지금 배구 선수 중 안 맞은 선수는 없을 것"이라는 박철우의 고백은 폭력을 당연시 여기는 체육계의 부끄러운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체육계에서 폭력이 암묵적으로 용인돼 왔다지만 고막이 나가고 심지어 기절할 때까지 때릴 정도였다면 훈육이나 단순 체벌이 아니라 명백한 중범죄다.
문제가 있음을 알면서도 폐쇄적인 엘리트 체육, 성적 지상주의에 사로잡힌 우리 사회가 그런 범죄를 또 암묵적으로 용인해 왔다는 얘기다.
단기간에 성적을 올리기 위해선 폭력이 가장 효율적이고 성적만 좋다면 폭력도 용인되는 그릇된 인식과 관행이 고질병을 키워 온 것이다.
체육계 폭력은 비단 배구계 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트라이애슬론 최숙현 선수가 수년간의 걸친 코치진의 폭행으로 생을 마감한 것을 비롯해 쇼트트랙, 남자핸드볼, 프로야구, 역도 등 거의 모든 분야에 만연해 있다.
오죽 답답하면 대통령까지 나서 폭력 등 체육 분야 부조리를 근절할 특단의 노력을 기울일 것을 지시했겠나.
그래픽=고경민 기자
지난해 국민체육진흥법을 세 차례나 개정해 스포츠 인권 보호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 강화됐지만 폭력 근절 등 뚜렷한 해결책은 되지 못하고 있다.
폭력과 성폭력 가해자 영구제명, 사건 은폐 시 처벌 강화, 합숙훈련 점진적 폐지 등 방안이 제시됐으나 사후 처벌에 방점이 찍혀 있다.
선수와 지도자, 선.후배간 위계질서가 뚜렷한 체육계 특성상 예방은 물론 개선책 마련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오랜 기간 숙소생활을 하며 함께 훈련하는 관행도 체육계가 과거의 악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폭력을 대물림하는 원인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그러나 '피해자 신고센터'등 예방기구를 설치하고 학폭 전수 조사와 인권교육 강화 등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행대책을 마련하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법을 정해 강제하는 방법은 단기적 반짝 효과에 그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성적을 거둬도 학폭 가해자는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없을 뿐더러 체육계에 서 영원히 퇴출될 수 있다는 인식을 분명하게 심어줘야 한다.
학생 선수를 오직 성적으로만 평가하는 현재 방식에서 벗어나 기량 향상과 학업 성취 등 다양한 기준으로 바꾸는 방안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운동선수이기 이전에 사회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체육인의 의식개선이 선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내가 배운 운동의 가치는 평등이며 해외에서 폭력은 교육옵션이 아니다"라는 이탈리아 출신의 프로배구 대한항공 산틸리 감독의 말을 곰곰이 되새길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