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사태로 촉발된 부동산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이 31일 오후 간부 공무원의 투기 의혹이 불거진 경기도 군포시청 압수수색을 마치고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참여연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의 3기 신도시 경기 광명·시흥 일대 '땅 투기' 의혹을 제기한 지 한 달이 흘렀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태 촉발 2주 만에 "성실하게 살아가는 국민들께 큰 허탈감과 실망감을 드렸다"며 사과했고, 정세균 국무총리는 "전국적으로 부동산 투기사범을 철저히 색출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1500여명의 매머드급 수사팀을 꾸렸고, 검찰도 500여명 이상의 인력을 뒤늦게 투입했다. 전례 없는 '양적 공세'지만, 문제는 성과다. 수사는 공직자는 물론 민간인까지 전방위로 뻗어나가는 중이지만, 600명에 육박하는 수사대상 중 구속된 인원은 아직 경기 포천시청 공무원 1명 뿐이다.
애초 전 국민의 공분을 자아낸 이번 사태가 LH로부터 시작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LH 전·현직 직원 중에는 왜 신병 처리된 피의자가 없는지 의문점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다.
3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30일 기준 정부 합동특별수사본부(특수본) 수사선상에 오른 576명(125건) 중 전·현직 공무원은 94명(고위공직자 2명 포함)으로 가장 많고 LH 전·현직 직원 35명, 지방의원 26명, 더불어민주당 서영석·양향자 의원 등 국회의원 본인 및 가족 10명 순으로 나타났다.
이 중 현재까지 구속된 피의자는 수십억원을 빌려 지하철 역사 예정지 인근의 토지와 건물을 사들인 포천시 공무원 박모씨 1명이다. 특수본 출범 후 첫 사례로, 수사 착수 20일 만인 지난달 29일 구속됐으며 몰수보전 처분도 내려졌다.
특수본의 2번째 구속 피의자도 공무원이 될 전망이다. 경기남부청은 지난 2일 부패방지법 위반 혐의로 전 경기도청 투자진흥과 기업투자유치담당 팀장 A씨에 대한 구속영장과 몰수보전을 신청했다.
A씨는 도 투자진흥과 팀장을 지내던 2018년 10월 아내가 대표인 회사를 통해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필지 1500여㎡를 5억원에 매입한 혐의를 받는다. 이후 반도체 클러스터 개발도면이 공개됐고, 해당 토지의 시세는 25억 이상으로 5배 가량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투기' 공무원들을 향한 연이은 구속수사 방침으로 수사 속도가 언뜻 붙는 듯 하지만, 정작 이번 사안의 핵심인 LH 전현직 직원들의 신병 처리는 아직까진 이뤄지지 않아 배경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선 수사가 빙빙 돌고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경찰은 LH를 향해 강제수사의 신호탄을 쏘면서 수사 속도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첫 의혹이 제기된 지 1주일 만인 지난달 9일 경남 진주 LH 본사와 LH 과천의왕사업본부·광명시흥사업본부 등을 압수수색했으며 직원 개인 휴대전화와 PC, 자택 내 토지개발 관련지도도 확보했다.
지난달 17일에는 LH 본사와 국토교통부, 투기의혹을 받는 LH 직원들에 대한 대출이 집중적으로 이뤄진 북시흥농협 등을 압수수색했다. 24일에는 2015년 이후 근무한 전·현직 직원의 인적사항을 확보하기 위해 LH 본사와 국토부 공공주택본부 등에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
지난 1일에는 대구경찰청이 연호공공주택지구 투기의혹과 관련해 LH 대구경북지역본부 대구보상사업단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LH 관련 건을 포함해 특수본이 현재까지 집행한 압수수색 영장은 '25회'에 이른다.
LH 관계자들에 대한 소환조사도 꾸준히 진행됐다. 지난달 19일 광범위한 투기로 일명 '강사장'으로 불린 LH 현직 직원 강모씨를 처음 불러 조사한 경기남부청은 1주일 만에 전·현직 직원 10명을 소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인 조사는 주말을 포함해 거의 날마다 이뤄지고 있는 상태다.
강제수사와 소환 시점, 투기 규모에 미뤄 강씨가 첫 신병 처리 대상이라는 관측이 유력하게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강씨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래픽=김성기 기자
LH로부터 촉발됐고 국민적 공분이 집중된 사안인만큼 경찰이 LH 수사에 대한 성과를 이제는 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경찰은 사안상 혐의 규명에 다소 시일이 걸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수사 자체는 '순항 중'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LH 직원들을 수사 중인 경찰 관계자는 "수사의 성패가 구속자 수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엄정 수사'를 말한 만큼 구속자가 좀 나와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신 국민들이 계실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LH 직원 수사는 단순히 개인비리나 부정으로 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며 "조직적인 부정이 있었는지 여부도 면밀히 살펴야 하다 보니 수사의뢰된 사안에 머무르지 않고 수사가 확대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진술조사 뿐 아니라 수차례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증거자료들에 대한 분석, 진술자 상호간의 비교분석 등도 필요하다"며 "해당지역 관서의 출장조사 등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수사를 하고 있다. 신속하면서도 엄정하게 수사하겠다"고 강조했다.
LH 수사에 더욱 속도를 내기 위해선 결국 내부자들의 관계와 '미공개 정보' 활용 규명 등이 관건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전현직 직원 및 가족, 친인척 등 관계와 정보 공유, 원정 투기 시점 등에 대한 '큰 그림'을 얼마나 빨리 그려내는지가 핵심인 셈이다. 특수본 고위 관계자는 "LH 수사는 어느 순간 한번에 빠르게 굴러갈 것으로 예상된다"며 "내부정보 이용 행위는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