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스틸컷. ㈜쇼박스 제공※ 스포일러 주의
모든 학문이, 모든 과정이 오로지 하나의 결과, 하나의 목적만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이상하고 이상한 나라에서 이에 저항하려는 사람은 그저 '이상한' 사람이 될 뿐이다. 이처럼 이상한 나라에 파문을 던지는 어른과 학생의 용기 있는 이야기가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 담겼다.
학문의 자유를 갈망하며 탈북한 천재 수학자 이학성(최민식)은 자신의 신분과 사연을 숨긴 채
상위 1% 영재들이 모인 자사고 경비원으로 살아간다. 차갑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학생들의 기피 대상 1호인 이학성은 어느 날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 뒤 수학을 가르쳐 달라 조르는, 수학을 포기한 고등학생 한지우(김동휘)를 만난다.
정답만을 찾는 세상에서 방황하던 한지우에게 수학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올바른 풀이 과정을 찾아 나가는 법을 가르치며 이학성 역시 뜻하지 않은 삶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스틸컷. ㈜쇼박스 제공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감독 박동훈)는 신분을 감추고 고등학교 경비원으로 일하는 탈북 천재 수학자가 수학을 포기한 학생을 만나며 벌어지는 감동 드라마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수학'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영화는,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동화 세계 같은 느낌으로 이야기를 열어나간다. 미스터리하면서도 엉뚱하고 발랄함을 가진 동화적인 재질을 유지하려 한 초반의 연출과 이야기 진행은 관객들을 이상한 나라로 자연스럽게 이끈다. 그리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영화는 현실로 돌아온다.
영화의 주인공 한지우는 이른바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라는 설정으로 나오는데, 사실 대한민국 상위 1%인 명문 자사고(자율형 사립 고등학교) 학생에게 '수포자'라는 말은 어폐가 있다. 한지우는 정확하게는 수포자라기보다는 이상한 입시 정책에 의한 피해자다.
같은 학년 학생들 대부분은 학원과 과외를 통해 선행학습을 하고, 학교도 이런 다수 학생의 진도와 수준에 맞춰 수업을 진행한다. 여기에서 학원도, 과외도 다닐 수 없는 형편의 지우는 자연스럽게 상위 1% 사이에서 도태되기 시작하며 수학 성적도 떨어지게 된다. 겉보기에 사람 좋은 선생님이지만 사실은 성적만 신경 쓰는 지우의 담임교사는 학교 안에서 '사배자'(사회적 배려 대상자)로 불리는 지우를 전학 보내기에만 급급하다.
이러한 이상하고 잘못된 교육 정책과 입시 경쟁의 정점에 있는 자사고에 온 고등학생 한지우와 탈북해 남한으로 온 수학자 이학성은 닮은꼴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이방인 취급을 받는 이상한 존재들, 이러한 이상한 존재들이 '수학'이라는 접점에서 만나 서로에게 위로를 주고 용기를 얻는 이상적인 존재로 바뀌게 된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스틸컷. ㈜쇼박스 제공이처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중심에 있는 사건은 '입시'다. 명문대에 가는 게 최고의 목표이자 최대의 목표가 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워야 할 모든 것을 학교 밖에서 미리 배워오고, 오로지 입시만을 위해 질주한다. 입시에 중요한 것은 학생의 의지도 있겠지만, 부모의 재력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부모의 재력이라는 중요 요소이자 기본 조건이 없는 지우에게 학교는 수학도, 꿈도 포기하길 강요받는 장소가 될 수밖에 없다.
입시 수단으로 전락한 수학에 괴로워하는 지우에게 이학성은 입시 수학이 아닌 수학을 가르쳐주면서 수학의 세계로 이끈다. 이학성의 말은 입시 지옥에서 본래의 의미를 잃은 수학의 기본을 알려주는 말이자, 잊지 말아야 할 기본을 잊은 사회를 향해 던지는 이상(理想)의 언어다.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지만 잊고 있던 어른의 모습을 한 이학성이 지우에게 던지는 말, 전교생 앞에서 하는 말은 우리가 잊고 있던 기본을 상기시켜 준다. 동시에 이 시대 어른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현재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이학성은 명문대 입학이라는 이상하게 변질한 입시 제도가 강제적으로 아이들을 향해 요구하는 정답이 아닌, 답을 찾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전에 잘못된 질문에서 제대로 된 답이 나올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입시제도에도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스틸컷. ㈜쇼박스 제공잘못된 입시제도 하에서 제대로 된 아이들의 꿈이 나올 수 없다는 점은 하나의 답만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사회에서 더 중요한 것은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길에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과 개인적인 슬픔을 견뎌 나가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용기'다. 영화가 이학성과 한지우의 만남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건 이상한 나라의 틀을 깨고 나올 이상한 사람의 용기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학교라는 사회 안에서 잘못된 입시 제도와 거짓을 강요하는 어른에 맞서 저항하는 용기, 수학의 아름다움도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로 큰 슬픔을 깨고 나와 다시 세상을 마주할 용기, 자신의 잘못과 실패를 인정하는 용기 말이다.
이를 말하는 과정에서 영화는 수학이 가진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려 하지만, 다른 이야기들에 묻혀서 크게 부각되지 못한다. 그리고 영화가 매우 착하고 친절하게 진행되는데, 결국 착한 사람들의 착한 이야기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를 답습하는 데 그친다. 진짜 '수포자'가 나와서 수학자를 만나 이상하지만 아름다운 수학의 세계로 들어가 그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면 제목에 더 부합했을 거라는 아쉬움이 생겨나는 이유다.
117분 상영, 3월 9일 개봉, 12세 관람가.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메인 포스터. ㈜쇼박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