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검사장. 연합뉴스검찰이 '검언유착'에 대한 실체가 없다고 최종 판단을 내리면서 이 사건의 수사 지휘부에 대한 책임론도 대두되고 있다. 2년씩 수사할 사안이 아니었는데도 정치권 입김에 휘둘려 제대로 결론 짓지 못하다가 '정권 교체'가 되자마자 서둘러 처리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다. 무혐의를 받은 한동훈 검사장은 이 의혹을 확대 재생산하고 수사권을 남용한 이들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반격을 예고했다.
한동훈 검사장 불기소 결정문…"공모 증거 찾지 못해"
8일 CBS노컷뉴스가 입수한 한 검사장의 불기소 결정문에 따르면, 검찰은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와 한 검사장 등이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를 협박 내지 강요를 공모한 내용의 직접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강요 미수 혐의에 대해 증거 불충분으로 혐의 없음 처분했다. 검찰이 이처럼 판단한 이유는 강요미수 혐의의 주범으로 지목된 이동재 전 채널A 기자가 한 검사장과의 연관성을 부인했다는 점이다. 이 전 기자는 한 검사장과 친분을 과시한 사실이 있을 뿐 이 전 대표를 위협해 제보를 받기로 한 검사장과 공모한 사실이 없다는 줄곧 진술해왔다.
검찰은 한 검사장의 혐의를 입증할 핵심 증거로 지목됐던 2020년 2월 13일 부산고검 녹음 파일에도 강요나 협박을 공모한 대화 내용은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이 전 기자와 후배 백모 기자가 부산고검에서 한 검사장을 만나 '신라젠 사건'에 대한 대화를 나눈 사실 등은 인정했다. 하지만 면담 당시 녹취록 등에서 채널A 기자와 한 검사장이 이 전 대표를 위협해 제보를 받기로 한 대화는 발견되지 않았다. 한 검사장은 해당 대화에서 이 전 기자가 이 전 대표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언급하자 '그런 거 하다가 한 건 걸리면 되지'라고 답변한 것 외에 취재 관련 언급에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 전 기자가 지씨를 만나 제보를 유도하며 제시한 '검찰관계자와의 통화녹취록'도 한 검사장의 혐의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되지 못했다. 메모를 작성한 이 전 기자가 임의로 가공한 것이라고 주장해 증거 능력이 없는데다, 증거 능력 인정 여부와 무관하게 내용 자체도 강요나 협박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표현이 없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이밖에도 검찰은 이 전 기자가 이 전 대표에게 보낸 편지, 이 전 기자와 지씨의 대화 녹취록, 기타 문자 메시지, 카카오톡 메시지, 통화내역, 휴대전화기 등 디지털매체 압수자료 등을 두루 살폈지만 한 검사장이 이 전 기자와 범행을 공모한 구체적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결국 한 검사장(검)과 채널A 기자(언)의 유착됐다는 증거가 충분치 않아 혐의가 없다고 결론이 난 셈이다. 하지만 한 검사장의 휴대전화 잠금 해제 때문에 수사를 2년씩이나 끌어오고도 이에 대한 상황 변화 없이 수사를 마무리 지은 것은 검찰의 정치권 눈치 보기라는 비판이 거세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이 수사 상황에서 변한 건 '정권 교체' 뿐"이라면서 "휴대전화 잠금 해제를 핑계로 처분만 미루다가 이제야 결론을 지은 것에 대해 지휘부 책임도 크다"고 지적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윤창원 기자'무혐의' 한동훈, 허위사실 유포자·수사지휘권 남발 지휘부에 반격 예고
2년 만에 검언유착의 혐의를 벗은 한 검사장은 무혐의 결론 직후 허위 사실 유포와 수사지휘권을 남발한 지휘부에 대해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특히 △김어준씨와 최강욱씨 등의 '유시민 돈 준 사실 아니어도 좋다' 허위 사실 유포, △친정권검찰 간부와 KBS의 '부산 녹취록에 한동훈의 총선 관련 발언 있다' 허위 사실 유포, △유시민씨의 계좌추적 당했다는 허위 사실 유포, △친정권검찰의 독직폭행과 불법CCTV 사찰, △법무장관 추미애/박범계의 피의사실공표와 불법 수사상황 공개 및 마구잡이 수사지휘권 남발, △집권세력과 사기꾼과 MBC 등 특정언론들의 한몸같은 권언범유착 공작, △민언련 등 어용단체의 허위 선동과 무고 고발, △불법 수사 관여자들의 예외 없는 전원 포상 승진 과정 등을 열거했다.
실제로 한 검사장은 의혹 제기자와 유포자, 수사상황을 불법으로 공개한 대상에 대해 민·형사 소송 여러 건을 제기했다. 가장 먼저 2020년 8월 한 검사장과 이 전 기자의 대화 녹취록을 보도한 KBS를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명예훼손 혐의로 KBS 보도 관계자들을 고소한데 이어 보도본부장 등 8명을 상대로는 총 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제기했다. 전날 검찰이 실형을 구형한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대해서도 민사 소송을 낸 상태다. 유 전 이사장은 2019년 12월 유튜브 채널 '알릴레오'와 이후 언론 인터뷰 등에서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가 2019년 11월 말 또는 12월 초 본인과 노무현재단 계좌를 불법 추적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시민단체에 고발됐다. 한 검사장은 형사고발은 하지 않고 유 전 이사장에 대해 5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노무현 재단이나 유 전 이사장 계좌 추적을 했다고 주장한 황희석 열린민주당 최고위원과 TBS를 상대로도 총 2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지난해 9월에는 추미애 전 장관을 공무상비밀누설,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허위사실유포 등 혐의로 공수처에 고소·고발했다. 법무부장관 재직 중 공무상 알게된 비밀인 감찰 자료와 통신비밀보호법상 공개가 금지된 통신 비밀 등을 누설하고 '고발 사주'의혹에 관여했다는 등의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는 이유에서다. 공수처는 지난해 10월 이 사건을 대검찰청으로 이첩했고, 대검은 같은달 서울동부지검을 내려보냈다. 동부지검은 다시 경찰청으로 보냈고, 경찰청은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에 배당해 수사가 진행 중이다. 한 검사장 측은 '무혐의 결론 이후 추가적으로 법적 책임을 물을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현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특정인을 지목해 준비를 하고 있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한 검사장이 검언유착 꼬리표를 떼고 검찰 내 요직으로 중용이 되면 그가 제기했던 고소·고발 사건에 대한 수사는 더욱 가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검언유착 수사를 무리하게 강행했던 이전 지휘라인부터 제대로 된 결론을 내지 못하고 2년이나 처분을 끌어왔던 현 지휘부라인까지 사법적 진상 파악이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윤 당선인 측 관계자는 "한 검사장에 대해 중용한다기 보다는 정상적 업무로 복귀하게 할 것이라는 게 적절한 표현"이라면서 "일하던 사람을 현 정권에서 하지 못하게 '유배' 보내놨던 것을 되돌려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