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이미지 제공현직 부장검사의 교통사고 가해 사건에 대한 형사 처벌 여부를 둘러싸고 검찰과 경찰의 판단이 엇갈려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과거 이와 유사한 교통사고에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중과실에 해당해 가해자가 유죄를 받은 판결이 다수 확인됐다.
경찰은 피해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 및 진술 등을 바탕으로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 가해자의 '안전지대 침범'이라고 판단해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중과실에 해당한다고 봤다. 하지만 검찰은 사고 지점이 안전지대 바깥이었고, 이에 따라 안전지대 침범이 사고의 직접 원인이 아니라며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물론 검찰의 논리를 뒷받침할 만 한 판례도 있는 상황이다. 안전지대에 머물다가 벗어난 뒤 벌어진 사고에서 '안전지대 침범이 사고 원인이라고 볼 수 없다'며 무죄 선고를 내린 것이다.
유죄, 무죄 판례와 이번 사고를 비교하기 위해선 면밀한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 교통사고는 수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안전지대 침범'이 사고 원인 중 얼만큼의 비중을 차지하는 지에 따라 대부분 유무죄가 갈렸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 불기소 처분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의문점은 여전한 상태다.
'안전지대 침범' 사고 '중과실 해당'…판례 수두룩
7일 CBS노컷뉴스가 '안전지대 침범'과 관련한 교통사고로 기소된 사건의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중과실에 해당돼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우선 이번 사건은 수도권 검찰청 소속 A부장검사가 지난해 7월 8일 오후 6시 40분쯤 서울 여의도에서 잠실 방향 올림픽대로에서 차량 충돌사고를 내면서 벌어졌다. 경찰 조사 결과 A부장검사의 차량은 4차로에서 5차로로 진입하기 위해 차로 사이에 있는 백색 안전지대를 가로질렀고, 이 과정에서 5차로를 주행 중이던 피해자의 차량과 충돌했다. 경찰은 같은 해 8월 A부장검사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상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지만, 검찰은 다음 달인 9월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안전지대 침범 사고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12대 중과실 중 하나에 포함되는 행위다. 이 경우 종합보험 처리를 했더라도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스마트이미지 제공판례 중에는 이번 사건과 장소도 유사한 사건도 볼 수 있었다. A부장검사 교통사고 지점과 같은 곳인 올림픽대로 인근에서 지난해 5월 8일 발생한 안전지대 침범 사고다. 당시 올림픽대로로 진입하려던 차량이 안전지대를 가로질러 차선을 바꾸다 4차로를 주행하던 차량과 충돌했다. A부장검사 사건과 마찬가지로 충돌 지점은 안전지대 바깥이었다.
재판부는 "그 구간 4차로와 올림픽대로 진입 전 도로 사이는 안전지대 구간으로 진로변경을 할 수 없는 장소"라며 유죄 판결을 내렸다. 해당 피고인은 벌금 100만 원에 처했다.
또 다른 판례는 지난 2020년 12월 8일 송파구에서 발생한 사건 판결이다. 6차로를 따라 주행하다가 백색 안전지대를 가로질러 5차로로 진로를 변경하려던 과정에서 이미 5차로로 주행하던 차량과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도 "백색 안전지대를 가로질러 진로를 변경한 과실"을 짚으며 벌금 100만 원을 주문했다.
2020년 6월 23일 인천 서구 한 도로에서는 한 택시가 흰색 안전지대를 가로질러 차선을 바꾸다가 해당 차선에서 주행하던 차량과 부딪혔다. 재판부는 "안전지대를 침범해 끼어들기 한 과실"을 지적했다.
2018년 5월 15일 광주 북구 한 도로에서도 안전지대를 따라 주행하다가 도로를 횡단하던 자전거 운전자를 부딪힌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약 6주 치료가 필요한 상해를 입었고, 재판부는 500만 원의 벌금을 내렸다.
전남 장성군 한 도로에서 안전지대로 직진해서 좌회전 및 유턴 차선으로 진입 주행하던 오토바이와 충돌한 사건도 비슷하다. 피고인 측은 사고가 안전지대를 벗어난 지점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안전지대 진입금지 의무 위반과 사고의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비록 충격지점이 안전지대를 벗어난 지점이라고 하더라도, 피고인이 안전지대를 침범한 행위가 이 사건 사고 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이라면 피고인은 해당 죄책을 진다고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이 안전지대 진입금지 위반행위를 한 행위 자체만으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의 업무상 과실치상죄에 있어서의 과실에 해당된다"고 판시했다.
이 같은 판례를 종합해보면 △안전지대를 침범해서 차선을 변경하려다 사고가 난 경우 △충격지점이 안전지대를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안전지대를 침범한 행위 자체가 사고 원인이 된 경우 등은 중과실에 해당돼 유죄 판결을 받는다고 해석할 수 있다.
4차로에서 5차로로 진입하기 위해 차로 사이에 있는 백색 안전지대를 가로질렀고, 이 과정에서 5차로를 주행 중이던 차량과 충돌한 이번 사건과 정확히 일치하는 셈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 A부장검사의 차량은 안전지대에 걸쳐 있는 상태에서 충돌은 안전지대 밖에서 발생했다. 검찰의 불기소 처분 핵심은 '사고 지점이 안전지대 바깥'에 있다는 것인데, 앞서의 판례와는 배치되는 판단으로 보인다.
안전지대 내에서 벌어진 사고만 유죄?…"장소가 아닌 원인을 따져 봐야"
다만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와중에 사고가 발생했지만 안전지대 침범이 사고 원인으로 볼 수 없다는 판례도 있다.
지난 2015년 4월 2일 춘천시의 한 도로에서 좌회전이나 유턴을 하기 위해 안전지대에 진입했다가 잘못을 깨닫고 안전지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1차로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차량과 충돌한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재판부는 "전후방 주시의무를 다하지 아니한 피고인의 과실에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봐야 하고, 피고인의 안전지대 진입 행위가 그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사고 역시 충돌은 안전지대 밖에서 벌어졌다. 검찰은 A부장검사 사건을 불기소 처분하면서 이 같은 대법원 판례의 취지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 같은 판례를 이번 사건에 대입할 수 있는지는 의문점이 따르고 있다. 해당 판례는 안전지대에 실수로 들어갔다가 벗어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로, 차선 변경을 위해 안전지대를 가로질렀던 이번 사건과는 결이 다소 다르기 때문이다. 안전지대 밖에서 충돌한 부분은 같지만 사고 과정 자체가 전자는 '빠져나가기 위해서', 후자는 '끼어들기 위해서' 이기에 의도나 책임 여부의 차이점이 있을 수 있다.
검찰은 안전지대의 취지가 안전지대 내에 보행자나 차를 보호하기 위한 것일 뿐, 피해자 운전 차량을 보호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논리도 들고 있다. 결국 안전지대 내에서 충돌 사고가 발생했을 때만 중과실에 해당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안전지대 사고에서 단순히 '충돌 지점'을 보고 따지기 보다는 안전지대 침범이 사고에 얼마큼에 원인 비중을 차지했는지가 핵심이라고 전문가들은 공통으로 지적하고 있다.
박무혁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백색 안전지대를 거쳐서 5차로로 바로 진입했다고 했을 때, 백색 안전지대에 의한 직접적인 인과관계의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판단이 드는 것"이라며 "사고 원인을 배제하고 장소만 놓고 판단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아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경찰 역시 비슷한 판단을 내리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불가피하게 (안전지대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례와 같은 판례는 이 사건의 경우와는 다르다"며 "이번 사건은 직접적으로 차선을 넘어가면서 충돌이 일어난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검찰의 판단이 사실상 '아전인수' 아니냐는 지적도 일고 있다. 정경일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는 "전형적인 안전지대 침범 사고로 보인다"며 "지금까지 이런 유죄 판례가 축적됐다는 말은 검찰에서 기소를 했다는 것인데 이제 와서 안전지대 침범 사고는 안전지대 내에서 일어난 사고 만을 말한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