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의 가온길 오목광장 원형 대리석 시설물에 쏟아진 커피가 말라가고 있는 모습. 최유진 기자내리쬐는 뙤약볕에 대리석이 달궈졌다. 언제 쏟아진 지 알 수 없는 커피가 대리석을 얼룩덜룩하게 물들이며 메말라가고 있었다. 15일 오전 11시 무렵 서울 양천구 목동의 가온길 오목광장 한가운데 소나무와 꽃들이 잘 조경된 원형 대리석의 공공시설물을 찾아갔다.
시민들이 앉았다 쉬어가기도 해 벤치처럼 쓰이는 이곳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이라고 적힌 건설교통부 비석도 함께 설치돼있다. 하지만 최근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풍경이 펼쳐졌다. 사람들은 떠나고 없는데, '일회용컵' 쓰레기만 남아 공공시설물을 차지해서다.
여기는 공공시설물…너도 나도 버리니 '쓰레기존'
지난 12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의 가온길 오목광장 원형 대리석 시설물에 일회용컵 쓰레기가 버려진 모습. 최유진 기자 언제인지, 누구인지 알긴 어렵지만 공공시설물에 일회용컵이 버려지자 줄줄이 행렬을 이뤘다. 원래부터 쓰레기를 버려도 되는 것처럼 '쓰레기존(zone)'이 되어 버렸다.
지난 12일 일회용컵이 가득 버려진 원형 대리석 위로 비둘기들까지 날아들었다. 일회용컵들이 원형군단을 이루는 듯했으나, 비둘기 한 마리가 컵을 쪼기 시작했다. 마침내 한 일회용컵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며 최후를 맞았다. 컵 안에 남아있던 음료까지 흐를 뻔했지만, 다행히 뚜껑이 잘 닫힌 덕에 아슬아슬하게 넘치지 않는 모습이었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의 가온길 오목광장 원형 대리석 시설물에 일회용컵 쓰레기가 버려진 모습. 최유진 기자다음날인 13일 오후에도 일회용컵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비가 내리면서 컵 안에 남아있던 음료들에는 빗물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몇몇 컵은 비바람에 쓰러지기도 했다.
누가 일회용컵을 옮겼을까…버리는 사람, 치우는 사람 '따로'
15일 오전 다시 찾은 '쓰레기존'엔 며칠 내내 버려져 있던 일회용컵들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간 걸까.
이곳 근처 벤치에서 일행 한 명과 음료를 마시고 있던 직장인 김유선(52)씨를 만났다. 김씨에게 공공시설물에 버려진 일회용컵들을 본 적 있는지 묻자 "컵 쌓인 것들 봤는데 버리는 게 이해가 안 간다"고 답했다. 김씨는 다 마신 음료 컵을 들고 어디론가 이동 중이었다. 그는
"(다 마신 일회용컵을) 사무실로 가져간다"고 말했다.
반면, 헤어진 김씨의 동행은 음료를 구매한 근처 카페로 다시 들어가 일회용컵을 버려달라고 했다. 해당 카페 점장 A씨는 손님이 다 마시고 가져온 일회용컵을 받아 버려주었다.
그러나 매장 앞에서는 폐지 수거를 위해 모아 놓은 박스 더미에 먹다 남은 음료잔을 버리고 가는 손님도 있었다. A씨는
"손님들이 많이들 일회용컵 쓰레기를 매장으로 가져오신다"면서도, 박스에 버려진 음료잔을 매장 안으로 가지고 들어오며 "사실 앞에 버리고 가는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 카페는 문제의 '쓰레기존'인 조경 시설물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있다. 최근 조경물 대리석 위에 일회용컵들이 버려진 모습을 봤는지 묻자, A씨는 봤다면서 "원래 인근 건물 관리자들이 해당 구역에 컵이 쌓이면 치우곤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지난주부터 아무도 치우지 않는 것 같았고 쌓이기 시작했다"며 "어제 구청 관계자가 큰 비닐을 들고 나와 한꺼번에 치우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인근 다른 카페 직원 B씨도 "손님들이 일회용컵 쓰레기를 많이 가져오신다"며 "저희 매장에서 구매한 음료잔에 대해서만 받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조경물과 가까우면서 다수 카페들이 입점해있는 한 빌딩의 관리자 C씨는 "원래부터 여름만 되면 쓰레기 문제가 생기는 곳"이라며 "(조경 시설물) 그 구역은 우리가 관리할 부분이 아니다"고 말했다. 덧붙여
"빌딩 근처에서 나오는 일회용컵 쓰레기가 감당이 안 돼서 한참을 쌓아뒀다가 시에서까지 나와서 처리한 적도 있다"고 했다.
양천구청 관계자는 15일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최근 해당 구역에 쓰레기 문제로 민원이 많이 접수됐다"며 "청결 유지를 위해 관리주체를 확인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환경직 공무원이 한 번씩 방문하지만 사실 작업 구간은 아니다"면서 "주요 간선도로나 인도가 청소 범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언제? 어디서? '예측불가'…공공시설물에 일회용컵 투척
공공시설물이 일회용컵에 점령당해 '쓰레기존'으로 변모하는 건 특정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다. 지하철 역사 내 혹은 출구 계단에도 배출 장소 이외의 곳에 일회용컵이 쌓인 모습이 목격되곤 한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15일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보통 정해진 시간에 주기적으로 역사 내 쓰레기통을 비우지만, 유동인구가 많은 특정 역의 경우 쓰레기통이 넘친다는 민원이 들어오기도 한다"며 "이런 때에는 직접 신고해주시면 바로 청소가 이루어지고, 배출 장소가 아닌 곳에 쓰레기가 쌓여있는 경우도 전화 혹은 또타지하철 앱으로 민원 제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쓰레기 배출 문제에 관해 "생활쓰레기 무단 투기라면 단속하지만, 사실 음료 한 잔을 역사 내에 가지고 와서 쓰레기 버리는 걸 제재할 순 없다"면서도, "모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지하철 공간을 위해 개인이 각자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일회용컵 쓰레기'를 아예 만들지 않는다면?
지난달 10일 서울 종로구 스타벅스 더종로R점 앞에서 진행된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장 앞에 쌓인 일회용컵. 연합뉴스지난달 10일 서울 종로구 스타벅스 건물 앞에는 수천 개의 일회용컵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시민단체 '컵가디언즈'와 전국카페사장협동조합이 정부와 프랜차이즈 본사에 '일회용컵 보증금제'의 차질 없는 시행을 촉구하며 벌인 '일회용컵 어택' 퍼포먼스다.
연간 28억 개 넘게 버려지는 일회용컵을 줄이기 위해 이날 시행 예정이던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올해 말로 연기됐다.
'컵어택'에 함께 참여한 서울환경연합 박정음 활동가는 15일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일회용컵은 길거리 무단 투기 양이 많은 품목 중 하나"라며
"일단 시민들이 무단 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하지만, 앞서 가장 큰 문제는 일회용컵을 분리수거로 잘 버려도 잘 재활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회용컵은 약 95%가 재활용되지 못하고 소각이나 매립되는 품목이라는 것이다.
박 활동가는
"공공장소에 쓰레기통을 늘리면 일회용컵 무단 투기 양을 줄일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그 컵들이 재활용되지 않고 우리 지구에 계속 플라스틱으로 남아있는 자체가 문제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회용컵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주체에게 책임을 지워 재활용이 잘 될 수 있도록 하고, 이후에 소비자들로부터 잘 회수되게끔 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번거로움을 느끼는 이들이 다회용기 사용으로 넘어가는 선순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무단투기를 막을 수 있는 주요 대응수단"이라면서도 "약 80% 수준을 커버할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전체 일회용컵 배출의 100%를 막을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종량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경제 수준에서 공공장소의 쓰레기통을 무작정 없애기 보다는 무단투기를 해소하기 위해 설치하는 방향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