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전북 부안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야영지에서 각국의 스카우트 대원들이 철수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숲은커녕 나무 한 그루 찾아보기 힘든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부지. 그늘이 부족하다 보니 온열 환자가 하루 1천명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 물웅덩이가 많아 모기 등 벌레가 기승을 부리고 응급차가 빠지기도 했다.
세계 각국에서 4만 명이 넘은 외국인이 찾는 국제행사를 왜 굳이 이런 곳에서 진행했을까.
8일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초반부터 파행을 겪었던 새만금 잼버리 대회를 위한 부지가 잼버리 행사보다는 새만금 개발을 목적으로 조성됐다는 비판은 일찌감치 제기됐다.
지난 2017년 8월 새만금의 해창 갯벌이 잼버리 부지로 지정되고 매립공사가 본격화하자 환경단체들은 '하나 남은 갯벌마저 매립하려 하냐'며 반발했다. 새만금에 이미 간척이 완료된 갯벌이 많은데도 유일하게 남아있는 갯벌을 잼버리 부지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환경단체의 지적이 잇따르자 2020년 8월 비공식 간담회가 열렸다. 이 간담회에는 새만금개발청장, 김윤덕 잼버리 공동위원장, 새만금살리기공동행동 시민단체 임원진이 참석했다.
새만금살리기공동행동 관계자는 "해창 갯벌 매립을 막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열렸다"고 이 간담회 취지를 설명했다. 이들은 '갯벌을 또 매립하지 말고 대신 노출지(당초 갯벌이 드러나 있는 지역)에 행사를 진행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새만금개발청장 김모 씨는 잼버리 부지 매립을 하는 이유가 잼버리 대회가 아닌 '새만금 사업'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김모 청장은 '그동안 해창 갯벌을 매립할 기회가 없어 진행이 더디게 추진되고 있었다'면서 "잼버리 핑계를 대고 겸사겸사 새만금 사업에 속도를 붙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당시 옆에 있던 김윤덕 공동위원장도 새만금개발청장의 발언에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는 것'이라면서 맞장구를 쳤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개막일인 1일 전북 부안군 하서면 행사장에서 한 참가자가 그늘에 들어가 쉬고 있다. 이날 부안군에는 폭염경보가 발표 중이다. 연합뉴스시민단체 관계자는 "갯벌 매립을 하지 말라고 제안하러 간 자리에서 새만금개발청장과 잼버리 공동위원장이 예상치도 못한 말을 꺼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새만금 예산을 따와서 잼버리 부지 유치 진행을 잘하고 있다는 듯 서슴없이 말하는 것이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강원도 고성에 이어 32년 만에 치른 세계잼버리 행사가 지역 개발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편법이 동원됐다고 시민단체들은 문제를 삼기도 했다. 명백한 관광레저용지 조성사업을 편의상 농지조성사업이라 둔갑시켰다는 것이다.
해당 용지는 농지관리기금 2150억 원을 당겨와 매립을 진행했을 뿐 아니라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라 관광레저용지에 적용되는 정식 환경영향평가도 피해갔다. 농업용지를 조성한다는 이유에서다.
텅빈 잼버리장 떠나는 대원들. 연합뉴스정부는 하지만 잼버리 부지를 관광레저 단지를 염두에 두고 개발했다. 2017년 12월 제19차 새만금위원회는 '속도감 있는 사업추진을 위해 현재 시행 중인 농생명용지 조성사업에 포함하여 계속사업으로 추진', '매립된 부지는 잼버리 부지로 활용 후 새만금개발공사 등에 양도하여 관광레저용지로 개발토록 근거마련'할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잼버리 부지는 민관 투자 유치를 통해 향후 리조트와 관광 체험지, 마리나 시설 등이 들어서는 관광용지로 활용한다는 계획이 세워졌다.
실제 매립된 면적(884헥타르)도 2016년 새만금개발청 용역이 계산한 매립 필요면적(389헥타르)에 2배가 넘는 수준에 달한다. 이를 두고도 "잼버리 행사에 필요해서가 아니라 새만금 개발을 위해 최대한 넓은 면적을 매립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잼버리 유치 이후 새만금 지역에는 신항만, 국제공항 등 다른 SOC 시설 조성도 추진되고 있다. 전북도는 2019년 잼버리를 명목으로 새만금 신공항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까지 면제받았다. 하지만 이번 잼버리 참가자들이 이용했어야 할 새만금 신공항은 2028년 완공을 앞두고 있고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한 상태다.
'2030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에 참가했지만 폭염으로 인해 조기 퇴영한 한 영국 스카우트 단원의 벌레 물림 흔적. 황진환 기자더욱이 조성된 지 몇년밖에 안 된 간척지다 보니 야영지로서 부적합한 요소들이 적지 않았다. 전북도는 "간척지에서 가장 잘 자라는 나무를 행사장 곳곳에 심어 2023년에는 풍성한 숲 공간이 조성될 것"이라고 했지만 공염불이 됐다.
염분농도가 높다 보니 나무를 심기가 불가능해서다. 부지에 상당 부분이 풀이 없는 불모지인 데다가, 그늘을 드리워 줄 나무들이 거의 없는 게 그 이유다. 곳곳에 파인 물웅덩이는 벌레들의 번식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었고, 참가자들은 폭염에 더해 해충에 시달렸다.
일명 화상 벌레로 불리는 청딱지개미반날개는 덥고 습한 잼버리 부지에서 더 들끊었다.
김윤덕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비공개 간담회에서 환경단체가 그런 제안을 했다는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당시 5만 명 잼버리 참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매립지가 없었다"고 답했다. 김 전 청장에게 해명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