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홈페이지 캡처윤석열 정부 집권 이후 대일외교가 '관계 복원'이라는 방향성과 '굴욕'이라는 비판 사이를 오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일제 강제동원 배상판결 문제에 대한 '제3자 변제'로 12년 동안 멈춰 있던 정상 '셔틀 외교'를 재개했고, 이는 북한과 중국의 위협에 대처하는 한미일 안보협력의 강화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 대가로 과거사 문제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그에 따른 리스크도 상존하는 현실 속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할 필요성 또한 제기된다.
한일관계 물꼬 튼 '제3자 변제'…한미일 안보협력 공고해졌지만 '과거사 도외시' 비판 상존
정부는 한일관계의 가장 큰 쟁점 중 하나였던 우리 대법원의 일제 강제동원 가해 기업 배상판결 문제에 대해 지난해 3월 '제3자 변제' 해법으로 물꼬를 텄다. 이는 윤 대통령의 방일과 함께 그해 5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서울 답방, 8월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사상 첫 한미일 단독 정상회의 그리고 3국 공동의 위협에 대해 신속한 협의를 강조하는 '협의에 대한 공약(Commitment to Consult)' 채택으로 이어진다.
한미일 3국은 미국의 중국 견제 전략에 따라 이같은 움직임에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지난달에는 한미일 국방장관이 일본 도쿄에서 만나 3자 다영역 훈련 '프리덤 에지(Freedom Edge)' 정례 시행 등을 중심으로 안보협력 시스템을 제도화하는 내용의 '한미일 안보협력 프레임워크(TSCF)' 각서에도 서명했다. 당시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북한의 핵 능력이 고도화될수록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이 강화되면, 북한의 전략적 이점도 상쇄된다"며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렇듯 한일관계가 회복되면서 한미일 3국의 결속은 공고해진 반면, 이를 추진하기 위해 윤석열 정부가 역사 문제를 도외시하고 있다는 비판 역시 계속되고 있다. 한일관계 회복의 물꼬를 튼 제3자 변제 '해법'에 대해 생존해 있는 원고와 유족들이 일본 가해 기업의 강제 현금화를 요구하며 반발하고 있고, 이를 집행하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대한 한일 기업들의 기부는 거의 끊긴 상황이다.
최근에는 강제동원 현장이었던 니가타현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전시물에 '강제노동(forced to work)' 표현을 담는 것을 거부했는데도 우리 정부가 등재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져 또 다시 과거사 문제를 놓고 파문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앞에서 열린 '일제 강제동원 부정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관련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미중러 대립, 북한…국제정세 변수 속 대일 외교가 추구할 방향은?
일련의 상황은 미국과 중국·러시아 등이 대립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형성된 측면도 적지 않다. 때문에 미국과의 밀착과 한미일 안보협력을 중시하는 방향 자체는 어쩔 수 없더라도, 그 과정에서 우리의 국익을 면밀히 생각해야 한다는 지적이 최근 커지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에 대한 전면적 견제를 위해 2010년대부터 한미일 안보협력의 공고화와 제도화를 바라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북미 비핵화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고 북한이 남북관계에 대해 '우리 민족끼리' 대신 '전쟁 중인 두 개의 적대국' 기조를 분명하게 하면서, 그만큼 우리 입장에서는 안보협력을 통한 북한 견제의 필요성을 간과하기가 어려워졌다.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추구한다는 명분적 측면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측면도 존재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향이 마치 정부의 절대적 명제처럼 작용하면서 과거사 문제에 대한 미온적 대처가 계속되고, 국내 여론의 반발과 대일 협상력·국익의 저해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점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성공회대 일본학과 양기호 교수(전 주고베 총영사)는 저서 '문재인 정부와 한일관계'에서 "표면적이고 일시적인 한일관계 개선은 한일 정부 간 교섭과 사법부의 피해자 구제의 축적된 성과를 희생시켰다. 일본의 한반도 침략에 따른 역사적 트라우마와 피해자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탓에 윤석열 정부의 돌발적이고 일방적인 외교에 대한 반발과 비판이 높아졌다"며 "한국 외교는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을 담보하기 위해 일본 정부의 결정을 지지해야 하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노선에 대한 반발이 커지면 그만큼 국내정치에도 악영향을 미쳐 정책의 동력을 떨어뜨리기 쉽고, 연속성을 담보하기도 어려워진다. 북한대학원대 조성렬 초빙교수(전 주오사카 총영사)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중국의 '굴기'에 대응하고 북중러의 삼각연대를 견제하기 위한 세력균형의 필요성은 분명히 있다"면서도 "각국은 각자의 이익을 위해 그 속에서도 우선순위와 속도 등을 조절하는 '이익균형'을 추구하는데, 윤석열 정부는 이 부분을 간과하며 둘을 섞어서 이익균형 쪽을 소홀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정적인 한미일 관계를 추구하면서도 그 속에서 우리가 얻어내야 할 것들이 존재한다는 맥락이다.
다만 외교안보 분야는 일관성이 중요하고 특히 북한이라는 문제가 있기에, 급격한 방향 전환보다는 '현실적' 측면을 잘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산정책연구원 최은미 연구위원은 "역사 문제로 인한 한일간 인식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정부 뿐만 아니라 전문가·학자·오피니언 리더 간 전략대화 등을 통해 노력하고, 일본 스스로도 공공외교 등 측면에서 현재까지 우리나라에 어떤 방식을 취했는지 반성과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우리의 현실상 견고한 한미일 관계 위에서, 북한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잘 설명해 가면서 중국과 러시아 등과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