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축출로 내분을 겪는 이집트에서 미국이 '공공의 적' 신세가 됐다.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을 내쫓은 군부와 시민세력에 미국이 친화적 태도를 보였지만 정작 군부 측의 반응이 싸늘한 것이다.
무르시 지지파도 '미국이 우리를 배신했다'면서 이를 갈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입장만 난처해졌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이집트에서 미국에 대한 불만은 공통적인 화제"라는 10일자 기사에서 이런 상황을 전했다.
무르시 축출을 지지하는 시민 보리스 빅터(31)는 WP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오바마와 앤 패터슨(주이집트 미국대사)이 싫다"고 잘라 말했다.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 보리스 주변에 모인 다른 시민들도 그의 성토에 고개를 끄떡였다. 이들 위에는 '오바마는 테러리스트를 좋아한다'는 현수막이 펄럭였다.
테러리스트는 무르시의 핵심 지지세력인 무슬림형제단을 뜻하는 말이다.
◇ 反무르시파 "미국 여전히 못 믿겠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미국은 작년 이집트 혁명으로 무르시가 집권하자 '첫 민주화 정권'이라며 지지 정책을 폈다.
이 때문에 반무르시파에 미국은 그저 '못 믿을 상대'다. 오바마 행정부가 군부개입에 대해 비판을 피하고 원조를 계속하지만 불신은 여전하다.
패터슨 대사는 반미감정의 핵심 표적이다. 무르시 실각 며칠 전에 시민봉기가 극에 달하자 이를 '부질없는 행동'이라고 맹비난했기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정권축출 뒤에도 패터슨 대사를 유임시키기로 해 반발이 더 커졌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10일 언론 브리핑에서 패터슨 대사가 미국의 대(對)이집트 정책을 효과적으로 옹호한다며 호평했다.
◇ 무르시파 '부글부글'…"쿠데타 인정하라"
무르시 지지파는 이번 사태가 민주정부를 전복한 쿠데타라면서 국외 여론전에 나섰지만 미국의 반응에 크게 실망한 상태다.
백악관이 쿠데타 판단 여부에 대해 '사안이 복잡하다'며 결정을 잇달아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법에서는 쿠데타 발생국에 대한 원조가 금지대상이다. 이집트를 대상으로 한 미국의 군사·경제 원조는 연간 15억 달러 규모로 이가 끊기면 새 정부에 큰 타격이 된다.
미국 국방부는 이집트군에 F-16 등 첨단무기 지원도 계속한다고 AP통신이 10일 보도했다. 수주 내에 F-16 4대를 넘길 예정이고 올해 내에 8대를 추가 지원한다.
◇양 진영, 나란히 반미감정 악용도
이런 상황에서 무르시 반대파와 지지파 모두 반미 감정을 정치적으로 악용한다는 분석도 있다.
카이로의 알아즈하르대 강사인 이드 이스마일은 "군부는 미국이 무르시를 지지한다는 말을 퍼뜨린다"고 지적했다.
무르시 반대층을 집결하는 데 반미가 요긴한 명분이라는 것이다.
무르시 복권을 촉구하는 시민들도 군부 핵심 인사인 압델 파타 엘시시 국방장관을 흠집 내려고 '시시는 미국의 첩자'라는 구호를 외친다.
이집트는 중동에서 미국의 핵심 동맹국으로 꼽히지만 전통적으로 미국에 대한 앙심이 컸다고 WP는 설명했다.
자국 영토인 시나이반도를 줄곧 침탈한 이스라엘의 후견국이라 아예 신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