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직장인들에게 여름휴가는 1년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다. 일에 치여 함께 하지 못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재충전을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한 조사에 따르면 29일부터 다음달 9일까지 직장인의 80%가 올해 하계휴가를 계획하고 있다. 모두들 당연시 누리는 여름휴가가 그야말로 남의 일 같은 사람들이 있다. [편집자 주]
서울의 한 구청에서 주차단속요원으로 일하는 이모(45) 씨는 나름 '공무원'이다. 하지만 시간제 근무를 하다 보니 복지는 공무원에 비할 것 없이 형편없다.
이 씨에 지급되는 연차는 고작 3~4일에 불과하기 때문에 여름휴가는 아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얼마 안 되는 연차라도 휴가로 쓰고 싶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다.
3명이 한 조가 되어 지역과 시간에 따라 업무를 분담해 불법주정차 단속을 해야 한다. 한 사람당 30건의 단속 건수를 채워야 하는데 만약 한 명이 쉬게 되면 나머지 2명이 한 명의 업무까지 떠맡아야 한다.
대형 마트에서 일하는 김모(32) 씨도 여름휴가를 포기했다. 특히 요즘처럼 휴가철, 마트에 고객들이 몰릴 때는 몸이 힘들기도 하지만 마음도 편치는 않다.
"휴가기간에 카트 2~3개에 숯이랑 고기 등 가득 장 보는 분들 보면 진짜 부럽다. 남들 쉴 때 조카들이랑 남편이랑 같이 물놀이라도 갔다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휴가철 가장 바쁜 시기다 보니 경력이 오래된 캐셔들도 휴가를 쓰지 않는 것이 마치 관행처럼 굳어졌다. 김 씨도 휴가를 다녀올 생각은 접은 지 오래다. 남편과 일정 맞추기도 어렵다 보니 결혼 후 한 번도 여름휴가를 간 적이 없다.
사실 여행 경비도 발목을 잡는다. 마트 캐셔로 일해 받는 돈은 한 달에 140만 원 정도로 세금, 보험료 떼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은 100만원이 고작이다 보니 휴가를 위해 돈을 쓰기가 쉽지는 않다.
"아무리 싸게 국내로 휴가를 가려고 해도 교통비, 숙박비 생각하면 100만원은 잡아야 할 텐데…한 달 꼬박 일해야 버는 돈이니까 '그냥 집에서 쉬지'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접게 된다"고 말했다.
여름휴가는 법에서 보장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여름휴가를 부여해야 한다'는 강제력은 없다. 큰 노조가 있는 기업의 경우 단체협약이나 회사 내규에 의해 여름휴가를 보장하거나 관례상 휴가를 보내주기도 한다.
여름휴가가 따로 부여되지 않더라도 연차 등을 이용해 휴가를 갈 수 있지만 김 씨와 이 씨, 앞서 소개한 지하철 택배 할아버지와 학교 야간당직 경비 등 휴가가 없는 근로자의 대부분은 계약직, 특수고용직 등 비정규직으로 연차 휴가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
또 상대적으로 노동공급은 많은 반면 일자리는 부족한 여성과 어르신들이 종사하는 업무에서 이런 특징이 두드러진다.
이들 대부분 영세 사업장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연차 휴가 지급 등 근로기준법의 준수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휴가를 사용하고 싶지만 파견계약직이거나 매년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등 고용 형태가 불안하기 때문에 휴가를 주장하기도 어렵다. 또 대부분 노조가 없기 때문에 휴가를 주장할 창구도 없다.
민주노총의 김태현 연구원장은 "비정규직 대부분 노조가 없기 때문에 대변해 목소리를 내 줄 대변자가 없다. 또 고용이 불안하다보니까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휴식의 권리에 대한 사용자의 인식 부족도 한 몫 하고 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사용자는 근로자가 연차 휴가 사용할 수 있도록 대체휴무가 가능한 인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대부분 적은 숫자로만 일을 시키려고 한다"며 "대체 인력 등의 확보 등 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