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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전시

    광해군과 돈화문

    고궁 전각에 얽힌 재미있는 뒷 얘기 시리즈⑧

    창덕궁의 정문 돈화문. 광해군에 의해 새롭게 지어졌지만, 이 문을 지키던 훈련도감 대장의 배반으로 결국 왕위에서 쫒겨나고 말았다. (자료제공=문화재청)

     

    ▲조선 최고의 군대, 궐문을 열어 젖히다

    1623년 3월 12일 밤. 창덕궁을 향해 반정군이 들이 닥치고 있었다. 왜란을 겪으면서 새로운 군사와 무기체계가 절실히 필요했던 조선은 총포와 같은 무기를 도입해 훈련도감을 설치했다.

    반란군이 규모가 크다고는 하지만, 훈련도감의 잘 훈련된 군사들과 무기 앞에서는 사실 견줘볼 상대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훈련도감 대장 이홍립은 반정군이 돈화문 앞까지 왔다는 급한 전갈을 받고도 부대에 아무런 명을 내리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창덕궁의 정문을 열어 젖히라는 엉뚱한 명령을 내린 것이다. 서인과 내통한 이홍립은 반정군에 투항하고 말았고, 아무런 저항없이 궁궐에 들어온 반정군들은 순식간에 궐을 점령했다.

    젊은 내시의 안내를 받은 광해군은 후원의 담을 넘어 창덕궁 근처 내의원 안국신의 집에 간신히 몸을 피했다. 그러나 안국신 아내의 밀고로 결국 반군에 붙잡히고 말았다.

    명민하고 군왕의 자질을 갖췄지만, 아버지 선조에게서 질투와 미움을 받아 어렵사리 왕위를 물려받은 광해군은 결국 당쟁의 희생양이 되면서 왕위를 뺏기고 말았다.

    ▲왕의 이상한 밀지 ‘전쟁에 나가거든 반드시 져라!’

    임금은 파병대장 강홍립을 은밀히 불러들었다. 그리고 강홍립에게 은밀한 밀지를 내렸다. ‘전쟁에서 절대로 이기지 말고, 때를 보아 투항하라!’ 전쟁에서 패하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밀지를 받아든 강홍립은 결국 변변한 싸움 한번 하지 않고, 후금에 항복을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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