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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일반

    반란의 음험한 그림자-신무문(神武門)

    고궁 전각에 얽힌 재미있는 뒷 얘기 시리즈③

    권력의 흥망성쇠를 5백년동안 묵묵히 지켜봐온 경복궁의 북문 신무문. (자료제공=문화재청)

     

    ▲장면 #1 1979년 12월 12일 신군부의 권력찬탈
    79년 12월 12일 저녁 6시경. 경복궁 내밀한 곳, 신무문 바로 앞에 자리잡은 30경비단 단장실에 군 요직을 맡은 장성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해 차규헌 수도군단장, 유학성 국방부 군수차관보, 황영시 1군단장, 노태우 9사단장, 박준병 20사단장,박희도 1공수여단장등이다.

    이들은 심각한 모습으로 대책을 숙의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굳이 30경비단을 택한 이유는 상대의 공격에 대비할 수 있는 난공불락의 요새인데다, 첨단 통신설비까지 갖춰져 있어, 어느 부대와도 연락이 가능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 30경비단에 모인 하나회 군인들은 대통령의 재가도 없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하고, 사실상 군을 장악했다.

    이후 신군부세력은 청와대와 맞닿아 있는 신무문을 통해 청와대를 드나들며, 최규하 대통령을 압박해 결국 권력을 찬탈했다.

    군부 반란의 산실이 된 30경비단의 출범 또한 군부쿠데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5.16 군사쿠데타를 성공시킨 군부세력은 30사단 1개대대를 서울로 불러 경복궁에 주둔시켰고, 이후 이 부대는 그대로 눌러앉아 수경사 30대대로 이름을 바꿔 청와대 경비를 전담했다.

    차지철 경호실장 시절 30경비단의 위세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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