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서 갈랍니다' 17일 LG와 2014시즌 최종전을 앞두고 사퇴 의사를 밝힌 김시진 롯데 감독.(자료사진=롯데 자이언츠)
드디어 '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정규리그가 마무리됐습니다. 인천아시안게임 기간 리그 중단으로 예년 같으면 플레이오프(PO)가 끝났어야 할 시기지만 일단 가을야구를 맞을 채비를 마쳤습니다.
9개 팀의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일찌감치 포스트시즌(PS) 진출을 확정한 삼성, 넥센, NC 외에 LG가 막차를 탔습니다. 17일 최종일에서 졌지만 경쟁자인 5위 SK도 지면서 올해 꼴찌에서 4위가 되는 감격을 누렸습니다. SK와 두산, 롯데, KIA, 한화는 내년을 기약해야 했습니다.
가슴 아픈 소식도 들렸습니다. 바로 김시진 롯데 감독(56)의 사퇴입니다. 17일 LG와 홈 최종전을 앞두고 김 감독은 물러날 뜻을 밝혔습니다. 내년까지 임기가 남아 있었지만 채우지 못했습니다.
그 사연을 놓고 논란이 뜨겁습니다. 구단이 감독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예우마저 제대로 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비판에 날이 섰습니다. 구단 운영의 중심이 감독에서 프런트로 옮겨가는 과도기적 사건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과연 김 감독의 사퇴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김시진 사퇴의 재구성 '더 이상 못 참겠다'김 감독 사퇴의 핵심은 구단이 더 이상 감독이 지휘봉을 잡을 수 없을 정도의 환경을 만들었다는 겁니다. 수족이라고 볼 수 있는 코치들의 인선을 구단이 좌우한 상황. 김 감독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게 야구계의 공통된 시각입니다.
김 감독이 팀을 맡은 첫 시즌인 지난해 롯데는 5위에 그쳐 6년 연속 PS 진출이 좌절됐습니다. 전력을 감안하면 이해할 만한 대목이었습니다. 롯데는 2011시즌 뒤 이대호(소프트뱅크)에 이어 2012시즌 뒤 홍성흔(두산), 김주찬(KIA) 등 주축 타자들이 팀을 떠났습니다.
2012년 팀 타율 2위였던 롯데는 지난해 공동 6위로 떨어졌습니다. 반면 팀 평균자책점은 2위였습니다. 그럼에도 김 감독의 측근인 권영호 수석코치는 지난해 말 물러나야 했습니다. 불균형한 전력에도 나름 잘 꾸려갔지만 책임을 물은 겁니다.
올 시즌을 앞두고 롯데는 의욕적으로 스토브리그를 보냈습니다. 역대 FA(자유계약선수) 최고액인 75억 원에 포수 강민호를 잡았고, 두산에 가 있던 최준석을 35억 원에 친정팀으로 불렀습니다. 왼손 토종 에이스 장원준의 제대 복귀에, 외국인 좌우 에이스 유먼과 옥스프링, 거포 히메네스까지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었습니다.
하지만 롯데는 영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근근히 4위권을 유지하다 8월 하순 6위로 떨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권두조 수석코치가 훈련 방식에 반발한 선수들의 집단 항명에 무러났고, 8월에는 김 감독의 또 다른 측근인 정민태 투수코치가 3군으로 내려가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졌습니다.
이에 김 감독이 사퇴 의사를 구단에 전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왔습니다. 수족이 잘려나가는 상황에서 더 이상 감독직을 수행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구단도 이를 받아들였지만 그룹 고위층의 재가가 떨어지지 않아 어물쩍 넘어가는 해프닝이 벌어졌다는 소식도 들렸습니다.
▲韓 야구, 감독에서 프런트 시대로 전환하나한국 프로야구는 바야흐로 '감독 야구'에서 '프런트 야구' 시대로 전환기에 놓여 있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그동안은 일본처럼 감독이 전권을 쥐었지만 이제는 프런트가 선수단 구성과 운영 등을 맡는 메이저리그식으로 변하고 있다는 겁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구단이 두산입니다. 프런트로 잔뼈가 굵은 사장과 선수 출신 단장이 모인 두산은 지난해 KS 준우승을 이룬 김진욱 감독을 경질했습니다. 물론 김 감독은 삼성과 KS에서 3승1패로 앞선 뒤 내리 3연패하는 등 난해한 경기 운영에 질타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임기가 1년이 남아 있었고, KS 준우승을 이룬 공적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두산은 김 감독을 내치고, 한국 프로야구에서 무명에 가까운 송일수 감독을 앉혔습니다.
'감독들 목 조심해야 해' 2011시즌 도중 사퇴한 SK 김성근 감독(왼쪽)과 지난해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이끌고도 경질된 김진욱 두산 감독.(자료사진=황진환 기자)
이런 사례는 2011년에도 있었습니다. 2010년 KS 우승을 이룬 김성근 감독이 2011시즌 중 사퇴한 SK입니다. 김 감독은 2007년부터 4회 KS 진출과 3회 우승을 이룬 명장이었지만 프런트와 갈등으로 물러나야 했습니다.
재일교포 출신인 김 감독은 일본식 야구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 폭넓게 구단 운영에 관여했던 김 감독은 프런트와 부딪히는 일이 잦았고, 결국 메이저리그에서 10년 동안 코치 경험을 쌓은 이만수 감독에게 자리를 물려줘야 했습니다. 올해 롯데 역시 감독보다는 프런트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구단이었습니다.
▲2년 연속 실패 LA 다저스, 감독 대신 단장 교체하지만 과연 한국 프로야구에 메이저리그식 구단 운영이 가능한 것일까요? 여건과 환경이 달라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적잖습니다.
송재우 메이저리그 전문 해설위원은 "한국과 미국은 구단 환경이 많이 다르다"고 전제했습니다. 특히 미국은 단장이 선수단 구성과 운영에 전권을 쥐고 있지만 그만큼 책임도 따른다는 겁니다.
송 위원은 "미국은 단장이 만들어 놓은 선수단을 갖고 감독이 경기를 치르는 구조"라면서 "그러나 성적이 나지 않으면 단장도 감독처럼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경기 운영이 아닌 선수단 구성에 문제가 있다면 감독보다 단장 책임이라는 겁니다.
단적인 예가 국내 팬들에게도 친숙한 LA 다저스입니다. 다저스는 올해 연봉 2억3500만 달러, 약 2500억 원의 천문학적인 액수를 찍었습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액입니다. 그러나 2년 연속 비원이던 월드시리즈(WS) 우승은커녕 진출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내셔널리그(NL) 챔피언십시리즈에 이어 올해 NL 디비전시리즈에서 세인트루이스에 덜미를 잡혔습니다.
돈 매팅리 감독의 지도력이 당연히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류현진을 비롯해 클레이튼 커쇼, 잭 그레인키 최강 선발진에 평균 연봉 2000만 달러짜리 타자들 애드리언 곤잘레스, 맷 켐프, 칼 크로포드 등을 보유하고도 우승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매팅리 감독은 살아남았습니다. 대신 네드 콜레티 단장이 책임을 졌습니다. 스탠 카스텐 사장의 자문으로 옮기면서 구단 운영 전면에서 물러난 겁니다. 이게 메이저리그입니다. 비싼 돈을 들여 선수단을 구성했지만 우승 무산의 요인으로 꼽힌 불펜 강화를 이루지 못한 책임은 단장에게 있다는 겁니다.
▲MLB처럼 하려면 책임 소재부터 분명히
'휴, 내년까지는 버티겠네' 올 시즌 세인트루이스와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에서 패퇴해 2년 연속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했으나 신임을 받은 LA 다저스 돈 매팅리 감독.(자료사진)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요? 성적 부진 등의 책임은 거의 대부분 감독이 집니다. 단장은 구단의 직원인 경우가 많아 그대로 자리를 보전합니다.
최근만 봐도 단장이 바뀐 경우는 개인 사유로 물러난 삼성 정도입니다. 전문가들은 "프런트 야구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책임 소재가 분명하게 갈리는 풍토가 먼저 조성돼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롯데의 경우 의욕적으로 성사시킨 대형 FA의 활약은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특히 역대 최고 몸값을 찍은 강민호는 98경기 타율 2할2푼9리, 16홈런 40타점에 머물렀습니다. 물론 선수 본인은 시즌 내내 부담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최고 공수 겸비 포수라면 적잖게 실망스러운 성적입니다.
권리와 의무는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다니는 말입니다. 하지만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다른 것 같습니다. 감독은 의무, 프런트는 권리만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니 말입니다. 정말로 야구 선진국인 미국처럼 가려면 어떤 게 먼저 이뤄져야 하겠습니까? 다저스는 단장의 목이 먼저 날아갔습니다.
p.s-염경엽 넥센 감독은 17일 정규리그 최종전을 승리로 마무리한 뒤 선수와 코칭스태프에 공을 돌렸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낌없이 지원을 해준 구단과 프런트에 감사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날 경기 전 염 감독은 2012년 넥센에서 코치로 보필했던 김시진 감독의 사퇴에 대해 "김 감독님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게는 솔직하게 말씀하셔서 저간의 사정을 다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정규리그 2위와 7위를 차지한 넥센과 롯데, 성적 차이의 해답은 염 감독의 말에 담겨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