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살이 詩집살이'는 곡성 할머니들이 삶의 애환을 노래한 시집이다. 이 시집 제목은 할머니들이 며느리로서 살아온 '시집살이'와 뒤늦게 한글을 배우고 시작한 '詩집살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
곡성의 아홉 시인들은 124편의 시를 통해 삶의 애환을 때론 담담하게, 때론 애절하게 노래한다. 이영광 시인은 할머니들의 시를 보고 '놀랍고 감동스럽다'며, 단순히 한글을 배운 할머니들의 시 모음집이 아니라, 빼어난 시집이라고 극찬했다.
곡성 할머니들이 시를 쓸 수 있게 된 것은 '길작은도서관' 김선자 관장 덕분이다. 김 관장은 곡성군 순환사서로 근무하면서 자신이 사는 서봉 마을에 '길작은도서관'을 열었고 곧 도서관은 마을의 사랑방이 되었다. 아이들이 도서관으로 놀러 왔고 할머니들은 도서관의 책 정리를 도와주었다. 그런데 할머니들은 자꾸 책을 거꾸로 꽂았다. 잘못 꽂혔다고 말씀드리면 엉뚱한 책을 빼내기도 했다. 그렇게 김선자 관장은 할머니들이 글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곧 한글 교실을 열었다. 동시와 그림책을 보며 시 공부도 하고 그림도 그렸다. 늦게 글을 배우니 돌아서면 잊어버리기 일쑤였지만, 배우려는 열정만큼은 어린아이 못지않았다. 할머니들은 일하다가 생각나서 적어봤다며 이면지에 시를 써오기도 하고, 달력 뒷장에 그림을 그려오기도 했다.
할머니들은 한글을 배우고 나니 '눈을 뜬 것처럼 딴 세상을 사는 것 같다'고 했다. 한글을 배우고 나니 상점 간판이 무슨 글자인지 알 수 있어서 좋고, 전화도 스스로 번호를 누를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했다. 김 관장은 할머니들에게 제2의 삶을 선물한 것이다.
김선자 관장이 할머니들의 시집을 내겠다고 마음먹게 된 것은 2013년에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상을 받고 나서부터였다. 할머니 몇 분의 시를 제출했는데 두 분 할머니의 시가 장려상을 받았던 것이다. 2015년에는 곡성 군민을 대상으로 한 곡성문학상에서 네 분의 할머니가 일반부로 응모해 장려상을 받았다.
본문 중에서남편이 죽으믄 땅에 묻고 / 자식이 죽으믄 가슴에 묻는다.
― 『의미』 김막동
어렸을 때 만들어 본 / 눈사람 / 크게 만들고 / 작게 만들고 / 숯뎅이로 껌정 박고 / 버선 씌워 모자 만들고 / 손도 없고 발도 없어 / 도망도 못 가는 눈사람 / 지천듣고 시무룩 / 벌서는 눈사람.
― 『눈사람』 김막동
눈이 사뿐사뿐 오네 / 시아버지 시어머니 어려와서 / 사뿐사뿐 걸어오네.
― 『눈』 김점순
늙은께 삐다구가 다 아픈지 / 한 발짝이라도 덜 걸어올라고 / 왈칵 밤이 내려와 앉는갑다.
― 『산중의 밤』 도귀례
젖 떨어진 동생에게 준 / 흰 밥이 / 어찌 맛나 보여 먹고 잡던지.
― 『가난』 박점례
애기 젖 먹여 놓고 / 오장 상한께 / 날마다 산으로 갔지 / 한 단 한 단 해 놓은 나뭇단이 / 설움만큼 높게도 / 뒷담에 쭈르라니 쟁여졌지.
― 『그대 이름은 바람』 안기임
인자 허리 아프고 / 몸이 아프고 / 몸이 마음대로 안된께 / 마음이 쎄하다 / 저 사람은 저렇게 빤듯이 / 걸어가니 좋것다 / 나는 언제 저 사람처럼 / 잘 걸어 갈끄나.
― 『좋겠다』 양양금
사박사박 / 장독에도 / 지붕에도 / 대나무에도 / 걸어가는 내 머리위에도 / 잘 살았다 / 잘 견뎠다 / 사박사박
― 『눈』 윤금순
뇌성이 때글때글해서 / 고양이만기로 / 가만히 앉어 있었어 / 어찌나 무섭던지.
― 『뇌성』 조남순
이날 평생 길쌈해서 / 적삼 하나 얻었더니 / 남을 줘 버렸네.
― 『큰동서2』 최영자